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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년] 소나기

열린 창문으로, 빗발이 들이치고 있었다.


올해 장마는 참 이상하다고 민현은 생각했다. 하루 종일 찌는 듯이 덥다가, 어두워지면 소리 소문도 없이 소나기가 퍼붓고, 돌아보면 어느새 멀쩡하게 개어 있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스토커에게 뒤를 밟히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좀 비슷할까.


문이 많이 열려 있지도 않았는데 그리로 들이친 빗발에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마른 걸레를 가져다 바닥을 닦고, 민현은 닫힌 창문에 걸음쇠를 걸려다가 문득 손을 멈추고, 유리창 너머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밤이 내린 데다 기승스런 빗발이 쏟아지는 바깥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8시 4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오늘은, 안 오는 건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민현은 흠칫 놀라 고개를 저었다. 설마 기다리기라도 하고 있었던 거냐고, 그래서 또 괜한 실랑이나 한 바탕 벌이고 쫓아내는 게 재미있기라도 한 거냐고, 민현은 습기를 먹어 눅눅해진 종이처럼 물러져 버린 자신의 마음을 새삼 한 번 채근했다.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빠르면 8시 5분, 늦으면 8시 10분, 간혹 가다 15분 전후일 때도 있긴 했지만, 아무튼 그 무렵 어김없이 벨을 눌러대는 인기척이 있었다. 누구인지 알면서도, 여상스레 인터폰을 받는다. 전데요. 왜 왔어. 형 보고 싶어서요. 난 너 별로 안 보고 싶어. 가. 이 쯤에서 인터폰을 끊는다. 벨은 다시 울린다. 왜. 문 좀 열어주죠. 싫은데. 다리 아픈데요. 아무도 너더러 여기 오라고 안 했어. 가. 좀 있으면 차 끊겨.


대충 여기까지가, 돌림 노래의 한 단락이다.


두 사람의 컨디션에 따라, 이 돌림 노래는 한 번도 좋고 두 번도 좋고 세 번 네 번도 좋다는 기세로 반복된다. 오가는 말들은 크게 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실랑이는 으레, 알았어요, 갈게요. 근데 내일도 또 올 거예요 하는 그의 선전포고 아닌 선전포고로 끝을 맺곤 했다.


오늘따라 조용한 바깥이 신경 쓰이는 건 아마도, 근 한 달이나 계속되어온 그 실없는 실랑이가 오늘은 잠잠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에 대한 민현의 응대가 이렇게 박절했던 것은 아니었다.


불과 서너달 전만 해도 그는 이 집의 가장 반가운 손님 중의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손님이 아니라 또 다른 주인이라고 해도 옳았다. 그가 입는 것이 그의 옷이었고 그가 눕는 곳이 그의 자리였다. 집 안의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에게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녀석이 좀 제멋대로야. 그렇게, 희건은 말했었다. 뭐 어때. 귀엽잖아.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 것은 오히려 민현 쪽이었다. 나는 워낙에 낯가림도 심하고 숫기도 없어서 그런가, 걔 그러는 거 귀엽고 좋더라. 놔 둬. 난 괜찮으니까.


그는, 연인의 한 살 터울 지는 동생이었다.


형은 도대체, 우리 형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라고 그가 불쑥 물어온 적이 있었다. 형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우리 형 존나 못됐어요. 그 투덜거리는 말투가 귀여워 웃었다. 웃지 마요. 진짜예요. 그 새끼 자기밖에 몰라요. 집에서도 늘 그랬어요.


언젠가, 그 새끼가, 형을 엄청나게 마음 아프게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어쩐지 섬뜩하던 그 말투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이 단순한 투덜거림이나 흉 정도로 들리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부터 자신 또한 그에게서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민현은 생각했다. 좋은 사람. 그러나, 지나치게 좋은 사람.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어서,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네가 이해해 달라며 웃어버리는 그런 사람. 어쩌면 그 무렵부터, 민현 또한 희건의 그런 면을 어스름하게나마 눈치채기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의료봉사라니.


어느 날 희건은 민현에게 비행기 티켓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내전 중인 어느 아프리카의 소국이 행선지로 찍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걸 결정하면서, 나한테 말 한 마디도 안 한 거야?

말하면 하지 말라고 했을 거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차디차게 식었다. 내가 만류할 것을 미리 알고, 그래서 나를 노골적으로 따돌리고, 이런 결정을 마음대로 내려버린 그의 태도에 대해.


괜찮아. 별 일 없을 거야. 지금까지도 늘 그래왔잖아.

그런 걸 도박사의 오류라고 해, 희건아.


이전 사건은 독립된 개별사건의 확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법칙. 그러니까, 전혀 관계가 없는 사건을 억지로 연관지어 생각하려는 오류.


지금까지 무사했다고, 이번에도 무사할 거라니. 네 식으로 말하자면 지금것 무사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런 말이 아니면.


그 때, 분명히 생각났었다. 그의 말이. 언젠가, 그 새끼가, 형을 엄청나게 마음 아프게 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다툼은 길지 않았다. 그것은 순전히, 민현이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 번 결정한 일에는 그 누구의 어떤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캐리어 두 개에 짐을 챙겨 그가 공항으로 떠나던 날, 민현은 방 밖으로 한 번 나와 보지도 않았다. 그것으로 자신의 항의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두 달 쯤 후, 희건은 분쟁 지역에서 총탄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세상에 그들의 사이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그의 동생 뿐이었다. 민현은 단순한 희건의 ‘친구’ 자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했고, 빈소를 지켰다. 지나치게 과한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 3일간은 지옥이었다. 시시때때로 멀미처럼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고, 그렇게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고 붉어진 얼굴로 화장실 밖으로 나오면, 어김없이 그 입구에는 담배 한 대를 꼬나 문 그가 버티고 서 있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물어오는 음성은, 낮고 서늘했다. 조용히 그 어깨를 두드려 주며, 휘청거리는 걸음을 수습해 빈소 안으로 발을 옮기던 그 며칠간의 기억은, 아직도 끔찍했다.


그러니까, 그 바로 다음날이었는지 다음다음 날이었는지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저녁 8시 전후, 그가 집으로 찾아와 벨을 눌러대기 시작한 것이. 처음에는 집 안으로 들였다. 같이 밥을 먹기도 했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형의 연인이 혼자 남겨진 것이 눈에 밟힌 것이리라, 그 마음씀이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매일 같이 집에 찾아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던 날, 그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나 형 좋아해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말없이 현관문을 가리켰다. 그는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순순히 집을 나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거의 한달 째.


그는 형인 희건과는 좀 다른 사람이었다. 밝고 구김살 없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잘 웃는 점은 비슷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형과는 정 반대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건이라는 본래 이름조차 형의 이름과 비슷한 게 싫어서, 개명했다더라는 말을 들었다.


다니엘.


민현은 문득, 아주 낯설어져 버린 그 이름을 입 속으로 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시간은 9시 3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굳이 집 밖에 나갈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기승스레 비가 내리는 날, 굳이 바지 아랫단을 흙탕물에 버리는 수고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나가야 할 일 같은 건, 기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집 밖이 신경 쓰였다. 저 문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쉽사리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민현은 우산을 챙겨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한 핑계는 집 앞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찾아오기로 했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니 아이스크림도 좋겠고, 네 캔에 만원이라는 수입맥주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그런 게 아니라면, 다른 그 무엇이라도. 그냥, 이 기승스레 내리는 비 속을 걸어 한 바퀴 돌아, 저 문 바깥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줄 핑계거리라면 무엇이든 충분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심장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굳어졌다. 대문과 담벼락 사이의 그 좁디좁은 공간에, 무언가가 잔뜩 구겨박힌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 시커먼 인영을 보는 순간 이미 철렁,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게, 설마.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 곁으로 다가섰다. 결국, 그랬다. 세운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그 쏟아지는 비를 등으로 다 맞고 있는 것은, 역시나 그 녀석이었다.


“야.”


몸을 숙였다. 그 서슬에 우산이 드리워졌다. 흠칫거리며 떨리는 어깨는, 이미 비에 흠씬 젖어 차디차게 식어 있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렸다더니, 오늘따라 이 비는 길게도 왔다. 보통 이 녀석이 오는 시간을 가늠해 본다면, 벌써 한 시간 반쯤이나 여기서 비를 맞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너 도대체, 여기서 뭘.”

“...”


말없이 고개를 드는 눈동자가 이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비를 맞은 머리칼을 따라 방울방울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민현은 뒤늦게나마 우산을 기울여 그의 몸을 덮었다.


“들어가자.”


손을 뻗어, 주저앉은 사람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너 이러다가 감기 걸려.”

“됐어요.”


퉁명스럽게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그러나 이미 끝이 떨리고 있었다.


“어차피 내 같은 거 어찌 되든 관심도 없잖아요.”

“야, 너 진짜.”

“들어가요.”


고집스레 앙 다물어지는 입술에 푸른 기가 돌고 있었다.


“비 맞지 말고.”


멀리서 천둥 소리가 났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일까.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민현은 어두워진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았다.


“들어가자.”


고집스레 입을 다문 그를 향해, 민현은 덧붙였다.


“무릎이라도, 꿇을까?”






바지단 끝으로, 옷깃 끝으로, 그간 맞은 비가 방울져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비를 맞은 머리칼을 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는 목석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고스란히 앉아 있었다. 본래는 블루 그레이쯤 되었을 것 같은 티셔츠는 비에 흠뻑 젖어 짙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어.”

“...”

“정말로 한 시간 넘게 그러고 있었던 거야?”

“...”

“우산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지.”

“...”


아무리 말을 붙여도 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 앞에, 점점 할 말이 말라 갔다.


“따뜻한 물에 좀 씻어. 옷 내줄게.”

"..."

“그대로 있으면 감기 걸린다.”


더 이상 그를 쳐다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던 찰나였다.


“이렇게라도 해야, 사람 취급 해주네요.”


등 뒤에서,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멈칫, 걸음이 멈추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변명부터가 이미 헤먹었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이미 비에 젖어버린 네 귀에 그 말이 들릴까.


“내는, 왜 안 되는데요?”


의외로 차분하게, 그는 그렇게 물었다.


“형은 그 일 가지고, 내를 한 번도 납득시켜 준 적이 없어요.”

“...”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내가 싫어서 안 되는 건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지.”


그 음성은 흐릿하게 떨리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런 거라도 말해 줘야.”

“...”

“떨어져나가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그 말은 어째서인지, 심장을 베어내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차마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일단 씻고 옷이나 갈아입어. 감기 든다.”

“지금 그까짓 감기가 중요해요?”


음성이 울컥 높아지자, 그 끝은 차마 숨길 수도 없을 만큼 심하게 떨렸다.


“형, 내는요. 한 달 내내 아팠어요.”

“...”

“두 번 세 번 벨 누르고, 들은 척도 안하는 형한테 온갖 소리 다 하고 집에 가는 내내 아팠다고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몰랐던 게 아니라서. 매몰차게 인터폰을 끊어버리고, 혹시나 안 가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몇 분이나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가, 몰래 대문 밖을 내다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그 문을 닫고 돌아서며, 알 수 없이 콧잔등이 찡해 왔던 경험이 그에게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대답 좀 해 줘 봐요. 왜 내는 안 돼요?”

“...”

“안 받아줄 거면.”

“...”

“그거라도 가르쳐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격앙된 숨소리가 높아졌다. 그래도,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형은.”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무슨 말이 나올 건지를, 이미 대충 알 수가 있어서.


“내가.”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싫어요?”

“안 싫어.”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내가 너를, 왜 싫어해.”

“왜요.”


되묻는 음성은 뒤틀려 일그러졌다.


“우리 형 동생이라서?”


입술이 떨렸다. 그렇다는 말도 아니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한테 이러지 마요.”

“...”

“이럴 거면.”

“...”

“그냥 밖에서, 비 맞든지 말든지, 모른 체 하라고.”

“야.”


울컥 뭔가가 터뜨려졌다. 민현은 몸을 돌려 그의 앞까지 다가갔다. 더 이상은 듣고 있기가 힘이 들었다.


“너, 임마.”

“...”

“왜 이렇게 사람을 속상하게 해?”

“그냥.”


그러나 민현의 말꼬리는 더럭 높아진 언성에 파묻혔다.


“내 좀 좋아해 주면, 안 돼요?”


그는 손을 뻗어, 민현의 셔츠 끝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알아요. 형이 내한테 왜 이러는지... 안다고요.”

“...”

“그런데... 안 돼요.”

“...”

“내도, 내 이렇게 싫다는 형, 안 좋아하고 싶은데.”

“...”

“그게.”

“...”

“내 맘대로.”

“...”

“안 돼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고개를 숙였다. 비에 젖은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였다. 뚱한 얼굴로 자신을 보다가, 형은 도대체 우리 형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하고 묻던 그 음성 뒤로 알 수 없는 씁쓸함이 한 가득 배어나던 것이. 정말로 몰랐을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참으로 편리하게,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척 했을 뿐.


언젠가, 그 새끼가, 형을 엄청나게 마음 아프게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 말은, 실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그 때는.

내가 형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민현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그 어깨에 손을 짚었다.


“왜 울어.”

“안 울어요.”

“안 울기는. 이건 빗물이냐.”


비에 젖어 늘어진 머리칼을 걷어 뒤로 넘겼다. 반듯한 이마 아래 선이 짙은 눈썹과 곧은 눈매가 드러났다. 비에 젖어 파리해진 그 얼굴은, 예뻤다.


“씻어. 옷 갈아입고.”

“...”

“그리고.”


천천히 깜빡여지는 눈에 눈이 마주쳤다.

그치지도 않고 내리고 있는 이 비는, 이제 이쯤이면 그쳐야겠다.


“자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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