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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4

24. 아름다워 下

굳게 다문 입술에 입술을 댔다. 아랫입술을 핥다가, 살짝 깨물었다. 약간 틈이 벌어지자 그 틈을 밀고 들어가 혀를 얽었다. 순식간에 엉켜드는 들숨과 날숨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어깨를, 등을 감싼 사람의 온기가 온 몸으로 밀려들어 주위를 둘러쌌다.


“니는, 임마.”


다니엘은 일부러 그러듯, 지훈의 이마에 이마를 살짝 부딪혀왔다. 들이받듯이.


“내를 도대체 어디까지 개새끼로 만들 생각인데.”

“뭐가.”

“경연 날 새벽에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한테 손대게 만든 거로 모자라서.”


천천히 깜박여지는 초리가 긴 눈이 눈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은자는 아픈 아한테까지 손대게 만들 생각이가.”

“응. 그렇게 만들 생각인데.”


무서웠고, 외로웠고, 누구라도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제일 컸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솔직히 말해버릴 수는 없었다. 콧잔등을 찌푸리며 웃었다. 장난처럼 보이도록.


“그냥 개새끼 해주라.”

“야.”

“한 번만.”


후-하고, 다니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호흡의 기척에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 몇 가닥이 불려 올라가 흔들렸다. 역시나 이 사람이 약한 건 이런 방향이구나 싶은 생각에 지훈은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그래 쳐다보지 마라.”


다니엘은 커다란 손으로 지훈의 얼굴을 덮어 버렸다.


“마음 약해진다.”


혀 끝으로 얼굴을 덮은 손바닥을 간질였다. 손끝에 입술을 대었다가, 살짝 핥았다.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눈을 맞추었다. 그 날, 그 새벽처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마음 안 약해지면 나 섭섭한데.”


옷 위로 다니엘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가만히 찌푸려지는 미간과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탄식 같은 거친 호흡이 좋았다. 자신에게 흔들리는 그를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걸지도.


“미치겠네.”


다니엘은 지훈의 허리로 팔을 둘러 껴안더니 순식간에 지훈을 들어 자신의 몸 위로 얹었다. 지훈은 손을 뻗어 다니엘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끌려 올라간 채 내려다보는 다니엘의 눈은 또 좀 생경한 빛으로 빛났다.


“지훈아.”


은근하게 부르는 목소리는 낮고 짙어서, 아직도 처음인 양 가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는 있다 아이가.”


뺨을 만지고, 콧날을 쓸어보는 손은 조심스럽고, 여전히 다정했다.


“가끔은 니가 너무 이뻐가,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 말은, 너무도 에두르지 않은 직구 승부여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경상도 사람은 무뚝뚝하다더니, 서울 사람도 대놓고 하기 힘든 저런 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놓고 해버리는 건 도대체 어째서 그런 걸까.


“그래서, 니 아플 짓은 진짜 요만큼도 안하고 싶은데.”


그 말은, 어떻게 의심해 볼 수도 없을 만큼 진심이었다.


지훈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올려다보는 시선에 어색하게 눈을 맞추다가, 그는 문득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다니엘을 내려다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이 아파서 그래.”


입은 더디고 힘들게 열렸다.


“지금 아픈 거, 마음일까. 아님 몸일까. 나 그걸 잘 모르겠어서.”


삐끗, 다니엘의 시선이 찡그려졌다. 그는 아주 천천히 지훈의 얼굴 곳곳을 뚫어지게 훑어보았다. 천천히 깜박여지는 그 초리가 긴 눈은, 언제나처럼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게 오랫동안 지훈을 보고 있었다.


“맞나.”


느리고 둔하게 묻는 그 음성은, 너무나 한결같아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느릿하게 뒤통수를 쓰다듬는 그 손끝에서, 지훈은 다니엘이 결국 자신에게 져 주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대충이나마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래서.”


뺨을 쓸고 지나가는 손 끝이 간지러웠다.


“니 하자는 대로 하믄, 마음 좀 덜 아프겠나.”

“응.”


다니엘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 위에 얹힌 지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숨이 달떠 턱이 들렸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가냘프게 들먹거리는 목덜미를, 다니엘이 살짝 깨물었다. 그윽한 통증에 온 몸이 굳어졌다.


“아프지 마라.”


목덜미에 입술을 댄 채 말하는 그 목소리는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누구 허락받고 아프고 난리고.”

“잘못했어.”

“잘못한 거 알기는 아나.”

“응.”


몸에 내린 근육통까지 거짓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경을 달리는 묘한 감각에, 굳어져 반응이 둔해진 몸 곳곳의 근육들이 일일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 속이 텅 비는 것 같은 아찔하고 나른한 감각이 느릿하게 온 몸을 휘어감을 뿐이었다. 등줄기를 쓸어내리는 손에, 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파묻었다.


“지훈아.”

“응.”

“변하는 거, 아무 것도 없다.”


굳이 귓전에 대고 속삭이는 톤이 낮은 목소리는 아찔했다.


“마지막 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는 니 꺼다.”


눈을 감았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라진 입술을 열어, 간신히 대답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형 거야.”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붉어진 뺨을, 지훈은 다니엘의 목덜미에 고개를 대어 숨겼다. 숨이 가빠졌다. 가슴이 들먹거렸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멎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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