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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4

24. 아름다워 上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겨우 자는 마지막 합숙이었다.


준비해야 하는 곡만 세 곡이었다. ‘나야나’ 같은 경우는 이미 동작과 대형 숙지가 끝난 상태여서 맞춰보는 것 정도로 끝낼 수 있었지만, 경연곡과 파이널곡 두 곡은 노래부터 춤, 대형까지를 전부 새로 연습해야 했다.


자연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세수를 하다가 코피를 쏟은 사람도 있었고 급격한 스트레스에 속탈이 나서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이런저런 약을 챙겨먹느라 정신이 없는 연습생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나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으으윽 하는 비명소리만이 목을 질러 밖으로 새어나올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손 끝에, 발 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도 잘 알 수 없을 만큼 온 몸이 뻐근했다.


“야, 지훈아.”


끙끙거리고 있는 지훈을 발견한 것은 성우였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침대 머리 맡에 서서 지훈을 들여다보았다. 눈만이 연신 깜빡여질 뿐, 대답도 잘 나오지 않았다.


“너 왜 그래?”

“안 움직여져요.”

“뭐?”

“아 막... 몸이 뻣뻣해서...”


성우는 손을 뻗어 지훈의 종아리 쪽을 몇 번 주물렀다. 그제야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별로 세게 주무른 것 같지도 않은데 살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들었다.


“근육통인가보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방문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잠깐 있어 봐. 다니엘 좀 오라 그럴게.”

“아, 아니.”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와중에도 손을 내저으며 지훈은 당황해서 말했다.


“저는 그냥.”

“있어 봐. 걔가 그런 거 잘 봐. 예전에 비보이하고 다녀서.”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형도 예전에 비보이 한 적 있지 않았어요?


그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지훈은 물끄러미 성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지훈은 성우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억지로 일어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꼼짝도 못하고 누운 지훈을 쳐다보다가 다니엘은 몇 번 혀를 찼다. 다리 쪽에 걸터앉아 커다란 손으로 종아리와 발목을 꼼꼼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 비명이 절로 나와, 결국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깁스 풀어가 다행이다 했더마는, 이런 일 있을라고 그랬는갑다.”


며칠간 오른손에 감겨 있던 붕대를, 다니엘은 드디어 풀었다. 속이 다 시원하다고 웃었는데, 결국 그 손을 이런 데 써먹게 생긴 것이 지훈은 못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미안.”

“미안은 무슨. 연습 무리하게 하다 보믄 이런 일도 있고, 그렇지. 요새 하도 욕을 보니까.”


조곤조곤 타이르듯 말하는 다니엘의 목소리에는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의 손에 굳어진 다리를 내맡기고, 지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 가슴 속에, 질기고 단단한 응어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미처 알지도 못했던 어떤 것이.


“형.”


지훈은 잠긴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다.


“나 어제, 꿈꿨어요.”

“꿈꿀 정신도 있나. 내는 요새 머리 어데 대기만 하믄 자는데.”

“꿈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 무리한 연습이 처음도 아닌데, 왜 갑자기 오늘 아침에 온 몸이 안간힘을 다 써 가며 버틴 다음날처럼 굳어졌는지. 지난 밤, 그 고된 일정 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꿈 때문에.


“나, 떨어졌어.”

“아직도 어데서 떨어지는 꿈 같은 거 꾸고 그라나. 키 클라고 그라는 모양이제.”


다니엘의 대꾸는 너무 범상해서, 화가 나기까지 했다.


“내 친구 중에도, 스무 살 넘어가 키 큰 아들도 있더라.”

“그런 거 말고.”


울컥,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제야 다니엘은 종아리를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지훈을 바라보았다.


“11등 안에 못 드는 꿈 꿨다고.”


멈칫, 다니엘의 손이 멎었다. 바라보는 눈이, 잠시 흔들리고 있었다.


“개꿈이네.”


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기 말이가.”


되묻는 다니엘의 목소리에는, 그가 화가 났을 때 섞이는 특유의 갈리는 듯한 쇳소리가 들어가 있었다.


“딴 사람도 아이고, 니가 11등 안에 못 든다 하는 기 말이냐고.”

“형이 1등이었어.”


하나하나 기억이 떠올랐다. 깨진 유리조각처럼 의식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악몽의 파편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래서였다. 이 느닷없는 근육통은.


“3등까지를 부르고, 두 사람을 앞으로 부르는데.”


3등까지가 결정되고 남은 자리가 두 개.

지난번에 그랬듯, 앞으로 불려나가 1위가 호명될 때까지의 그 몇 분 동안만 잘 견디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없었어.”

“지훈아.”

“나는, 무대에 남아서, 박수를 쳤어.”


순간, 다니엘이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몇 발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있는데,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저만치로 멀어졌다. 그 웃는 얼굴, 그 눈빛, 그 목소리,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형이 1등하고, 인사를 하고, 저기 위로, 올라가는데.”


그리고 그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1위 자리까지 이어진 중간 층계를 성큼성큼 올라, 이제는 닿을 수도 없는 곳까지 멀어져 버리는 그의 뒷모습과, 뒤에 남겨진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순식간에 온 몸에 배어들던 기억. 그 와중에도 정말로 화가 났던 건,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 때문에, 울 수도 없고 무어라 말을 할 수도 없었던 것. 이 와중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미워서.


“나는, 뒤에, 남아서.”


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숨이 막혀서.


“쳐다만, 보고 있었어.”

“지훈아.”

“형.”


지훈은 눈을 감았다.


“나,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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