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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3

23. Hands on Me 下

센터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지훈은 반신반의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어떤 포지션에 세운다는 것이, 단순히 누가 몇 표를 얻는가 하는 문제로 정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소위 ‘국민프로듀서’들의 투표를 통해 데뷔죠 11명을 뽑는다는 이 프로그램의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지훈은 순순히 입을 다물고 제작진들의 의도대로 센터에 섰으면 하는 조원의 이름을 써서 투표함에 넣었다.


조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 센터는 진영이었다. 비워져 있던 가사지의 센터 파트에 진영의 이름을 적어 넣고, 모두는 다같이 박수를 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모든 파트 분배가 끝나고, 이제 가열찬 연습만이 남아 있었다.


“좋겠네.”


지훈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뭐가.”

“형 좋아하는 진영이가 센터 돼서.”


비주얼 센터 투표에서 다니엘이 진영을 지목했다는 것이 방송을 탄 이후 지훈이 잊을만 하면 들먹이는 오래된 꼬투리였다. 또 시작이다, 싶은 생각이라도 드는지 다니엘의 눈썹이 슬그머니 아래로 쳐졌다.


“야, 니는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힝입니당.”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눈자위 아래를 까뒤집어 혀를 내밀어 보이고 나서, 지훈은 으쓱대는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농담이에요. 나도 진영이 뽑았어.”


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다니엘은 놀란 표정으로 지훈을 쳐다보았다.


“야, 나는 니 뽑았는데.”


와, 다행이다. 0표는 아니겠구나.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니 센터하고 싶다 안했나?”

“응.”

“근데 와 마음이 바뀌었는데. 카메라 찍고 있어서 그랬나.”

“아니.”


사소한 것 하나조차도 카메라 앞에서 해야 하는 방송 환경은 의외로 스트레스이기는 했다. 센터 선발 같은 민감한 사안에, 자기가 자기 이름을 써서 투표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 수태 귀먹은 욕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형이 센터 안하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 봤어요. 난 그게 되게 궁금했거든. 춤도 잘 추고 무대장악력도 좋은데, 왜 센터를 하려고 안 할까. 딱히 욕심이 없거나, 절박하지 않거나,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니엘의 그런 태도는. 가끔은 이해가 가지 않았고 더러는 화가 나기도 했다. 센터가 아닌 자리에서도 저렇게 잘 하면, 센터에 가면 얼마나 잘 할지가 늘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센터에 서지 않았다.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이 한 무대들을 쭉 보고, 알았어. 형은 센터를 굳이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거야. 센터가 아니어도, 어디 서서도 무대를 잡아먹으니까.”


분량도 적었던 데다가 인지도도 형편없었던 조별 경연 때도, 인지도는 높아졌으나 사이드로 빠졌던 포지션 평가 때도 그랬다. 그가 센터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의 무대영상을 보고 난 후에는 언제나 다니엘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그와 자신이 보통 이상의 관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훈은 다니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순위가 높다고, 분량에 있어서 견제를 당하는 게 아니냐는 말은 심심치 않게 지훈의 귀에 들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방송을 탄 분량을 보면, 이런 것 정도는 방송에 나가겠지 싶었던 것들조차 모조리 편집돼 있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건 도저히 편집할 수 없는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얼마 전 인기몰이를 했던 ‘저장 포즈’ 같은 것들.


“지훈아.”


한참 후에야, 다니엘은 느리게 입을 열어 지훈을 불렀다.


“그래. 어느 정도는 니 말이 맞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센터가 붙이는 그 왕관 스티커. 그거 뭐, 별거가 하고. 그기 있나 없나가 그래 중요하냐고. 내가 내 자리에서 잘해가 원샷 많이 받으믄, 그게 센터지 별 게 센터가, 하고.”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있다 아이가. 그거 내한테 가르쳐 준 게, 니다.”

“뭐?”


저도 모르게 눈을 커다랗게 떴다. 둥글게 떠진 눈동자 속으로 다니엘의 얼굴이 한가득 박혔다.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다니엘은 지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에 ‘나야나’ 할 때 말이다. 니는 심지어 A도 아이고, B였다 아이가. 그런데 주변에 방송 본 사람들이 다 니 얼굴밖에 생각 안 난다 하더라. A라도, 대휘 말고는 얼굴 한 번 제대로 안 잡힌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들 니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하더라.”


거칠게 붕대를 감은 손 끝으로, 다니엘은 지훈의 뺨을 쓸었다.


“도대체 뭐꼬 싶어서, 방송을 다시 봤다. 진짜더라. 니밖에 안 보이대. 니 얼굴 밖에 기억이 안 나더라. 춤이 제대로 찍힌 거도 아니고, 오래 잡힌 거도 아인데.”


그다지 오래된 일도 아닌데, 아주 오래된 예전의 일을 떠올리듯 다니엘은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어짜믄 저게 가능하노, 하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전에 가희 샘이 그래 말한 적 있제. 무대에서는 언제 어떻게 원샷이 들어올지 모르고, 그 순간을 어떻게 내 걸로 만드느냐, 거서 모든 게 갈린다고. 아, 저게 그런 순간이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


그러니까, 어쩌면.

결국 이 사람의 센터란, 그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게 전부인 걸까.


“내는 그 사실을 니한테 배웠는데, 니는 또 내한테 그 사실을 배웠다 하고. 재미있네.”


손 끝이 머리칼을 쓸었다. 머리칼 속을 파고들어 가만히 쓰다듬는 손길은 조용했다. 뒤통수로 넘어가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는 손 끝이 간지럽다고 생각할 때 쯤, 다니엘은 몸을 숙여 지훈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니는 있제.”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내뱉는 호흡의 끝이 코 끝을 간질 듯 말 듯.

귓전에 감겨 오는 목소리가 달콤해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 순간부터, 내한테 센터였다.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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