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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3

23. Hands on Me 上

센터란, 말만큼 만병통치약 같은 자리는 아니라고 지훈은 늘 생각했다. 대형 변화도 많은데다 멤버별 파트 분배가 비교적 확실한 한국식 아이돌의 경우, 센터란 그냥 시작할 때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마지막 생방송 무대에서의 ‘나야나’ 무대를 준비하다 보면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간혹 들곤 했다.


프로그램 초반 이 곡의 센터를 맡았던 대휘는 몸놀림이 가볍고 산뜻한 편이었다. 그가 추는 ‘나야나’ 안무는 비현실적으로 가볍고 청량해서 공기를 밟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센터에 서서 춤을 추는 사람의 춤선은 알게 모르게 뒤에 늘어선 모든 연습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자연히 ‘나야나’ 무대는 가볍고 명랑해졌다.


그러나 다니엘이 센터에 버티고 선 ‘나야나’ 무대는 또 성격이 좀 달라졌다. 일단 삼각형 대형의 꼭대기에 버티고 선 다니엘의 뒷모습에서는 대휘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대휘의 움직임이 살랑살랑 불어가는 봄바람 같았다면 다니엘은 그 동작 하나하나가 크고 강렬한데다 몸의 선이 짙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재킷을 반쯤 젖혀 팔에 걸치고 어깨를 흔드는 동작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일일이 야했다. 이 춤이 이렇게 야했나 하는 생각에 지훈은 저도 모르게 몇 번 뒤통수를 긁적였다.


“동선이 은근히 헷갈리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니엘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형도 동선 헷갈릴 때가 있어요?”

“아예 틀리믄 안 헷갈리는데.”


다니엘은 이마 위로 배어오른 땀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냈다.


“내 원래 자리가 저 쪽 뒤였다 아이가.”


다니엘은 턱짓으로 오른쪽 뒤를 가리켜 보였다.


“아예 틀리믄 그냥 처음부터 새로 외운다 생각하믄 되는데, 애매하게 비슷해서.”

“하긴 그런가.”


지훈은 그 곁에 주저앉아 저도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나는 B 센터여서.”

“아, 그랬제.”


프로그램 초반 등급 평가 때, 지훈은 C 클래스에서, 다니엘은 B 클래스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재평가 때 지훈은 B로, 다니엘은 A로 재배정되는 바람에 처음으로 같은 조가 된 것은 포지션 평가 때나 가서였다.


“니 올 줄 알았으믄 안 올라갔을 건데.”

“그게 맘대로 되냐.”

“할라믄 못할 거는 또 뭐 있노.”


저도 모르게 다니엘의 등을 한 대 툭 때리며 지훈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그 손은 도대체 언제 낫는 거예요. 낫긴 하는 거야?”

“거의 나았다.”


다니엘은 언제나처럼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지훈의 눈 앞에 흔들어 보였다.


“설마 그러고 생방 가야 되는 거예요?”

“그 안에는 풀 거다.”

“낫거든 풀어요. 무리하지 말고.”


컨셉트 평가 때 손 쓰는 안무가 너무 많았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미련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니엘은 그 안무의 손 쓰는 부분을 단 한 동작도 스킵하지 않고 전부 해냈다. 왜 그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손 쓰는 부분을 전부 생략해 버리면 그 춤의 섹시함은 반 정도는 날아가 버릴 테니까- 보는 사람으로서는 속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병원에서 그 때쯤 되믄 풀어도 된댔다.”


다니엘은 정색을 하며 지훈에게 대답했다.


“그라고 ‘열어줘’ 때는 붕대 감고 있어도 적당히 어울리는데, ‘나야나’는 의상이 교복인데 붕대 감고 있으믄 좀 그렇다 아이가. 일진도 아이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대 아래서 봤을 때는 못 견디게 속이 상하던 그 붕대는, 무대 위에서 다시 보니 어딘가 상처받은 듯 하던 그 날의 다니엘과 맞물려 기묘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길고 큰 손등을 칭칭 감싼 붕대는 마치 그림처럼 어울렸던 것을 지훈은 기억했다.


“왜. 복장은 딱 일진 복장이잖아.”


지훈은 말 끝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딱 맞아 터지기 직전인 가쿠란에, 자락 뺀 셔츠에, 풀어헤친 단추에. 어우. 막 버스 타면 뒷자리에 다리 쩍벌하고 앉아서 턱짓으로 빵 사오라고 시킬 거 같고 막.”

“뭐라카노.”


다니엘은 다치지 않은 왼손 주먹으로 지훈의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야, 씨. 누가 들으믄 진짠 줄 알겠다.”

“진짜였을 것 같기도 한데.”

“혼난다.”


슬그머니 흘겨보는 눈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 보면, 그 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등 쪽에 클래스 명이 커다랗게 쓰여진 색깔이 다른 연습복을 입어야 했던 시절, A 클래스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생각에 A 클래스 연습생들의 영상을 일부러 모조리 찾아본 적이 있었다. 두 손을 모아 삼각형을 만드는 안무에서, 유난히 그 삼각형이 예쁜 연습생이 있었다. 손이 커서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빨리 손이 나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그 안무를 다시 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근데.”


문득 생각난 듯, 지훈은 딴청을 피우듯 물었다.


“빚은 언제 받으러 올 거야?”

“빚?”


눈이 마주쳤다. 생긋, 지훈의 눈이 먼저 웃었다.


“야, 니는.”


터지기 시작한 웃음에 말꼬리가 파묻혀 흔들렸다. 무대 아래에서의 다니엘은 워낙 웃음이 헤퍼서 옆구리만 쿡 찔러도 웃음이 터지곤 했다. 이런 사람이, 무대에서는 저 웃음을 어떻게 다 참고 무대를 하는가 싶을 정도로.


“끼어들기 할 때는 깜박이가 필수라 했제.”

“그 정도면 이젠 눈치챌 때도 되지 않았어요? 끼어들 거라는 거.”

“까분다.”


쳐다보는 긴 눈이, 천천히 깜박여졌다.


“이뻐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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