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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2

22. 나를 돌아봐

순위발표식 녹화 직전에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컨셉트 평가 당일에 녹화했던 ‘2배속 댄스’ 시연이었다. 그날 그런 것을 찍기는 했었지만, 잠시 후 시작될 평가의 부담감에 다른 사람의 무대는 보는 둥 마는 둥 했었다.


‘2배속 댄스’는 한 케이블 예능방송의 유명 코너로, 인기 있는 아이돌의 필수 코스라고도 불리우는 코너였다. 자연히 연습생들이라면 누구나 그 코너를 동경했다. 그래서 경연 평가 때 ‘2배속 댄스’를 한다는 말을 듣고 모두의 눈이 한결같이 반짝거리던 것을 지훈은 기억했다. 결국 그들 모두는, 무대에 목이 말라 있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공개된 ‘2배속 댄스’는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모든 연습생들은 이를 악물고,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춤에 임했다. 그래서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그 영상들은 그들이 얼마나 피땀을 흘려가며 이 노래 연습에 매진했는가의 증거자료로나 남을 뿐이었다.


물론, 어디에나 그렇듯 예외는 있었지만.


“재밌나.”


태블릿으로 다니엘의 2배속 댄스를 쳐다보며 연신 킥킥거리는 지훈을 향해 다니엘이 물었다.


“응.”

“뭐가.”

“웃기잖아.”


2배속으로 빨라진 ‘열어줘’는 어딘가 살짝 트로트 느낌이 나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구수해진 느낌을 주었다. 제 속도에서는 한없이 섹시했던 스텝과 손 디테일 또한 어딘가 신명이 잔뜩 들어간 춤사위쯤으로 보였다. 1절 중간 부분 영민이 랩을 할 때, 일사불란하게 뛰어들어 원을 그리는 윤무 장면은 2배속으로 올려놓고 보니 그냥 운동회 때나 하던 꼬리잡기일 뿐이어서, 그 영상을 보고 있던 연습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소를 터뜨렸었다.


“본 무대에서는 그렇게 간지폭발 해놓고 2배속 돌리니까 완전 개그야.”

“맞나.”


아직도 어색한 듯, 다니엘은 돌려쓴 스냅백 아래로 눌린 머리칼을 슬쩍 긁적였다.


“뭐, 그라믄 됐다.”

“뭐가?”

“니 재밌으믄 됐다고.”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다른 조는 다 잘했는데 우리만 코메디다 아이가.”


잘했다며? 라고 지성이 물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잘했어 하고 대답하던 다니엘의 목소리를 지훈도 들었다. 그리고 남들이 다 저게 뭐냐며 웃음을 터뜨릴 때 지훈은 혼자 다니엘의 춤선을 쫓다가, 웃느라 표정이 잡히지 않았을 뿐 그의 춤선은 무대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걸 깨닫고 혼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거야.”


지훈은 되레 변명하듯 말했다.


“사실 연습 많이 못했잖아.”


사실은, 웃으며 그 춤을 추는 다니엘이 좋았다.


그 날 그 무대에서 본 다니엘은, 아직도 자신이 아는 그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어딘가 낯설었고,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늘 보던 그 얼굴 그대로 웃음을 흘리며 스텝을 밟고 동작을 맞추는 그는 비로소 자신이 알던 그 다니엘처럼 보여 안심이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그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그거는 핑계다.”


그러나 다니엘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핑계라고. 가장 많은 탈락자가 있었고, 가장 많은 멤버 교체가 있었고, 중간에 센터도 한 번 바뀌었고, 덕분에 가장 연습시간이 짧았는데도, 그는 그 모든 것이 그저 핑계라고, 그렇게 말했다.


“우리끼리니까 그래 말하지. 방송 보는 사람들이 누가 그래 생각해 주겠나.”

“그렇지만.”

“임마 니 전에 내보고 뭐라 했노. 우리 그냥 연습생이라고, 벌써 뭐라고 된 거 같냐고, 니가 그래 말했다 아이가.”


지훈은 뜨끔해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 뱉은 입술이 이미 따갑던 그 칼날 같던 말들은, 아직도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 녹지 않은 얼음조각처럼 박혀 있는 것일까. 저도 모르게 머쓱해져 지훈은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형 그건 그런 뜻이 아니고.”

“됐다. 인상 그리지 마라. 틀린 말 한 거도 아이고.”

“그렇지만.”

“무대 준비하면서 뭔 일이 있었든, 그거 다 듣고 아 맞나, 욕봤겠네 하고 이해해 주는 팬이 어데 있노. 이해해 주믄 고맙고, 이해 안 해주도 할 수 없는 거고.”


무어라 대답을 하려다 말고, 지훈은 멍하니 다니엘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아마도, 정말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2절로 접어들면서, 그래도 조금은 적응이 되었는지 모두의 동작은 조금씩 제 박자를 찾고 있었다. 동호 정도를 제외하면.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잔동작을 날리는 동호를 쳐다보다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 형 진짜 은근히 개그다. 생긴 거는 소도 때리잡게 생기가.”


어깨를 젖히고 으쓱거리며, 다니엘은 다시 동호의 ‘상남자’ 포즈를 건들건들 따라했다. 다시금 웃음이 터져 지훈은 다니엘의 팔뚝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됐다. 딴 거 보자.”


다니엘은 힘이 빠진 지훈의 손에서 태블릿을 낚아채어 다른 영상을 틀었다. 익숙한 전주에 절로 어깨가 움츠려들었다. 이거 보자고 할 줄 알았다니까.


어떡해 마법이 풀리질 않아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암튼 잘한다.”

“뭐 누구네보다는?”


말 끝에 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템포 자체가, 우리 노래는 조금 느리니까.”

“그래도 이래 동작 안 무너지고 이쁘게 추기가 쉽나. 노래 잘 골랐다.”

“1등한 사람이 2등한 사람더러 노래 잘 골랐다는 건, 놀리는 건가.”

“내는 솔직히 안무빨이고. 니가 진짜 잘했다.”


그 안무빨은, 뭐 아무나 서나.


“말이 났으니 말인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문득 장난기가 발동해, 지훈은 재킷 자락을 젖히고 허벅지를 쓸어 올리는 포인트 안무를 슬쩍 따라했다. 요즘 그 포즈는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화제여서, 순위발표식 때만 해도 여러 명이 그 안무를 따라하며 입장했다. 그때마다 쑥스러운 듯 눈을 피하거나 시선을 떨구는 다니엘은, 아무리 봐도 그 때 그 사람 같지 않았다.


“뭐 이렇게?”

“그래 하는 기 아이고.”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문득 다음 순간, 그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지훈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다. 안 가르쳐 줄란다.”

“왜애.”

“배워가 써묵고 댕기믄 우짜노.”


순식간에 코 앞으로 가까워진 다니엘의 긴 눈초리가, 무심하게 웃었다.


“아무데서나 하고 댕기지 마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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