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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재회再會

그 곳에서 지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니엘이었다.


검다 못해 짙푸른 음영이 드리운 것 같은 블랙 수트, 단추가 풀린 안 쪽으로 흘끗 보이는 은 목걸이가, 두 개.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자신이 선물한 그것이었다. 새까만 밤 하늘에 성글게 반짝거리는 별들처럼, 손가락에, 손목에 휘어감은 반지며 팔찌들이 형광등 불빛 아래 반짝거렸다.


“오랜만이네.”


미소 짓는 얼굴로, 그는 매끄럽게 인사를 건네 왔다.


경찰이라는 본분을 숨기고 조직의 말단 조직원으로 잠입한 것이 2년 전의 일이었다. 얻어터지고, 발길에 채이고, 머리채를 잡히고, 갖은 모욕과 괴롭힘 속에 발길에 채이는 돌부리처럼 살아가던 그 시간은, 내 진짜는 다른 곳에 있다는 주문에 가까운 중얼거림이 아니면 견뎌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대의 턱 아래로 주먹을 날리거나 나자빠진 상대의 명치를 구두 끝으로 밟아 뭉개고 그 얼굴에 재를 떨며, 한 번만 더 깝치면 이 정도로 안 끝날 줄 알라고 나직하고 살벌하게 말하던 다니엘 때문에, 그는 정해진 언더커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뛰던 심장은 경찰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 있었다.


“이게 몇 년 만이더라. 1년 만인가.”

“글쎄. 날짜 세는 취미는 없어서.”

“그걸 꼭 세어야만 알 수 있나. 실망인데.”

“실망시켜서 안 됐네. 내가 좀 잔정이 없는 편이라.”


누가 중간에 신호라도 낸 듯, 두 사람은 동시에 총을 들어 상대를 겨누었다. 안전장치를 푸는 차가운 금속성 소음이, 텅 빈 방 안에 싸늘하게 울렸다. 차갑게 반들거리는 지훈의 총구와, 암울하게 광택이 죽은 다니엘의 총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의 심장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형, 이러지 말자.”


지훈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형이라.”


어둠을 먹은 밤의 바다처럼, 다니엘의 낮은 목소리는 미끄럽고 음울하게 울려 나왔다.


“그 말, 언제 듣고 지금 듣는지 기억도 안 나네.”

“부탁이야. 그만 하자.”


눈 앞이 흐려졌다. 두 번 세 번,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수없이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형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

“그냥, 한 번만 모른 척 해 줘. 안 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총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 바닥에 발 담그고 사는 인간한테, 상관없는 일 같은 건 없어.”

“그래서, 어쩌자고.”


지훈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날 쏘기라도 할 거야?”

“필요하다면.”


다니엘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너도 그랬잖아.”


다니엘은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그 속으로, 총상의 흉터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이거,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오발을 가장해 쏜 것이라는 말 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한 발을 쏘아놓고, 한 동안 새벽마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이, 뺨이 익어버릴 만큼 울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는 것이, 과연 무슨 변명이 될 수 있을까.


“흰 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끝내자.”


다니엘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너하고 나는, 같이 살 수도 없고 같이 죽을 수도 없어.”

“형.”

“빨리 끝내자. 귀찮다.”


그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셋 센다. 그러고 쏠 거야.”

“...”

“너도 쏘든지 말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익은 눈물이, 기어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결국,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건가.


“하나.”


내가, 이 바닥 떠야 되겠다는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니 때문에, 마음이 변했다.


그의 고향은 남쪽의 어느 바닷가였다. 원래도 알고는 있었다. 고향이 그 정도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이 겨우 들 만큼, 그의 억양은 옅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훈은 어느 날 밤 문득 알게 되었다. 성한 곳 하나 없이 흉터가 빼곡하던 그의 등에 붕대를 감아주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렸던 그 날. 내 때문에 울지 마라-고 말하던 그 짙은 목소리에.


“둘.”


아니, 나는

더 이상은-


“셋.”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아니, 울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훈의 귀에 들린 총성은 한 발 뿐이었다.


“...”


격발시의 충격으로, 손아귀가 가볍게 떨렸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았다. 저릿해오는 손아귀만을 빼면.

그리고, 저 편에.


“...”


커다란 나무가 꺾이듯, 다니엘은 천천히 무릎을 꺾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붉은 피였다. 선혈이라고나 불러야 옳았다. 너무 붉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피의 얼룩이 바닥을 둥그렇게 퍼져 나갔다.


“형.”


지훈은 달려들어 천천히 무너지는 그를 붙들었다.


“뭐야.”


정신이 없는 와중에, 곁에 떨어진 다니엘의 총을 집었다. 틀렸다. 이미 무게부터가 다르다. 떨리는 손으로 탄창을 열어보았다. 비어 있다. 빌어먹게도.


“이거, 뭔데.”


그러니까, 늘 이런 식이다.

이 탄창은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거다. 그런 주제에, 사람을 붙들고, 그따위 블러핑을.


“왜.”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신에게.


“도대체... 왜.”

“뻔한 거 아이가.”


느리게, 입이 열렸다.

마지막 순간 저도 모르게 빗나간 조준 덕분에 즉사는 면했다지만, 이래서는.


“그렇다고.”


힘이 빠진 손이 조용히 뺨을 쓸고 지나간다.


“내가 니를 직일 수는.”


그제야 웃고 있었다. 서서히 꺼져가는 그 눈빛으로.


“없다 아이가, 훈아.”

“...”


입을 벌렸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매워진 눈 앞으로, 눈물이 거푸 맺혀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그냥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울지 마라.”


그 목소리는 평온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웠다.


“내 때문에 울지 마라.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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