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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1

21. 소나기 上

11주의 일정동안, 101명을 추려서 11명으로 만들겠다는 일정 자체가, 사실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시간은 모자랐고, 생방 준비에 돌입해야 했다. 보컬 위주의 곡 하나와, 랩 위주의 곡 한 곡이 주어졌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연습생들은 순위 역순으로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곡과 파트를 직접 고를 수가 있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촬영 전에, 연습생들에게 적당한 선에서 어느 정도 귀띔이 있었다.


그것만도 쉽지 않을 판에, 다니엘의 경우는 더욱 피곤한 일정이었다. 남들이 편하게 생방송 경연곡 준비에 몰두할 동안, 그는 자신의 조를 이끌고 음악방송 무대 준비를 해야 했다. 그 중 두 사람은 이미 20위 컷에서 탈락한 후여서 더욱 마음이 쓰일 테였고, 지난 번 방송으로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의 한 가운데 내몰린 학년은 방송에서라도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터라 그것도 만만치 않은 치다꺼리가 필요했다. 덕분에 다니엘은 남들은 이제 쳐다도 보지 않는 지난 경연 무대 영상을 짬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고쳐야 할 부분을 체크하고 동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생방송 연습곡과는 별도의 일정을 잡아 따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엠카 준비는 잘 돼 가요?”

“모르겠다.”


다니엘은 커다란 손 안에 얼굴을 묻고 몇 번 도리질을 쳤다.


“경연 때는 그만하믄 무대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엉망이다. 다시 손 봐야 될 데도 너무 많고, 시간은 없고... 미치겠다.”

“엠카도 엠카인데, 생방 준비도 신경 써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다니엘은 멍한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아, 내 좀 살리도.”

“어쩌면 되는데.”


지훈은 장난스레 웃다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다니엘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이러면 되나?”

“좀 낫네.”


그러나 여전히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다니엘은 손등으로 몇 번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눈자위를 비볐다.


“같은 곡 되면 좋겠는데.”

“되면야 좋겠지만.”

“포지션 잘 받아야 될 텐데 말예요.”

“그러니까.”






곡배정과 파트 분배 분량을 촬영하는 날이 되었다.


스무명의 연습생들은 순위 역순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파트를 정했다. 상위 연습생은 하위 연습생이 정한 파트를 무시하고 자신이 파트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지난 시즌부터도 그랬다지만 다분히 비인간적인 룰이었다.


구설에 올라 패널티를 받은 영민이 제일 먼저 파트를 골랐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20위부터 차례로, 각자가 맡고 싶은 파트를 정해 나갔다. 그렇게 역순으로 파트를 정하다가, 지훈과 다니엘 두 사람이 남았을 무렵에는 거의 남은 파트는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순위가 낮은 지훈은 비어 있던 래퍼 2번 파트를 정했다. 다니엘이 문제였다. 모든 포지션이 다 차버린 그가 남을 밀어내지 않고 받을 수 있는 파트는 메인보컬 자리 뿐이었다. 지난 번 경연 때 다니엘에게 의외로 보컬 쪽 소질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 곡의 메인보컬을 통째로 맡을 수 있느냐로 이야기가 비화되면 자신은 없었다.


결국 다니엘은 서브보컬 1에 들어있던 성운을 메인보컬 자리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껏 정해놓은 포지션이 크게 망가지지 않아서 다들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심지어는 다니엘조차도 그랬다. 그러나 지훈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소매를 잡아당겨 다니엘을 연습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다니엘은 순순히 지훈이 이끄는 대로 끌려 나왔다.


“형 왜 랩 안 들어왔어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지훈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일부러 반말을 하지 않았다. 다니엘도 심각성을 느끼기를 바라서.


“자리가 좀 애매하더라 아이가.”


다니엘은 가만히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내가 억지로 랩에 비집고 드가믄 성운이 형 위치 애매해지고. 내가 또 제일 마지막인데, 거서 포지션 엉키믄 수습도 안 되고.”

“그게.”


지훈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형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제야 지훈이 하려는 말을 알아들은 듯, 다니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가만히 찌푸려진 시선이 지훈을 향했다.


“형 되게 여유 있네요?”

“지훈아.”

“그렇게 남의 사정 다 봐주고, 형은 누가 챙기는데요? 아이돌이면, 랩퍼도 노래할 줄 알아야 되고, 그렇게 말한 게, 형 아니었어요? 성운이 형, 형보다 나이 많고 경력 빵빵해. 지금 누가 누굴 봐 주는 거야.”


왜 그렇게, 자꾸 이 것 저 것 물러나 주기만 하는 건데.


지훈이 보기로, 다니엘은 쭉 그랬다. 방송의 중반 이후로 자기 연습을 할 시간도 모자란 판에, 리더니 뭐니 이런 저런 것들을 떠맡아 연습 시간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음악방송 일정도 다 소화하기 전이다. 이런 일정에, 본인 주종목도 아닌 보컬 파트로 대뜸 들어가서 뭘 어쩌겠다는 생각인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지훈은 치를 떨며 말했다.


“여기서 잘못 되면.”


물론 다니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의 일면 중에는 분명 이런 부분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여기까지 다 왔는데, 이제 마무리만 남았는데, 왜 저렇게.


“우리 같이 데뷔 못해.”


말해 놓고도, 그 말의 무게에 스스로가 짓눌렸다. 두 사람 모두 잠시 입을 다문 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요?”


딱 한 번인데. 딱 한 번 남았는데. 그거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자기 편할 생각만 하는 게, 그게 그렇게 힘들어?


“나만 간절해? 그런 거야?”


벌컥 높아지는 음성이 흔들렸다.


“나만 형이랑 떨어지기 싫은 거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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