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연성][녤윙] Time Light 20

20. Missing You 下

20위 생존자의 발표와, 다니엘의 구령에 맞춘 20명의 인사를 끝으로 순위발표식은 모두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 이 세리머니의 끝은 무대 위로 건져 올려진 생존자들과 그 아래 남아있는 탈락자들이 서로 끌어안고 울먹이고, 격려하고 미안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늘도 다르지는 않았다. 몇 개월간, 축자적인 의미 그대로 생사고락을 같이 한 이들을 떠나보내는 자리는 언제나 애틋했다. 코 끝이 시려오는 이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울먹이는 소리에, 지훈은 뒤를 돌아보았다. 우진이었다. 유난히 다니엘을 잘 따랐던 그는, 한참이나 키가 큰 다니엘의 품에 푹 싸이다시피 안겨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아무렇지 않더니, 결국은 울음이 터지고 만 모양이었다.


끝까지 같이 가고 싶었는데, 맞제.


그렇게 다독이는 다니엘의 목소리를 들은 듯도 싶었다.

새삼, 여기서 돌아서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순위가, 다니엘의 순위가 고마웠다.






다니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위를 한 사람 답지 않았다. 가쿠란의 단추를 다 열어 헤치고 합숙소 계단 층계참에 주저앉은 채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나 으쓱함 같은 감정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1등 앉아보니까 좋아?”

“아니.”


대답은 참 빨리도 나왔다.


“내가 아까 안 그라드나. 니는 그 바늘방석에, 몇 주나 우째 견디고 있었노.”

“그게 열아홉 살 먹는 어린애한테 할 소리냐, 어른이.”

“그라니까 더 묻는기다.”


돌아보는 눈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명색이 어른인 내도 그래 부담스러운 자리를, 니는 어째 그래 티 안 나게 잘 버티고 있었노.”


대답 대신, 손가락 두 개를 펴 브이 사인을 그려 보였다. 다니엘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그런 지훈의 머리칼을 흐트러 놓았다.


“엠카 찍으러 가야 되는데.”


지훈이 미처 입을 열어 묻기도 전에, 그는 한숨을 섞어 그렇게 대답했다.


“다 붙었으믄 진짜 좋았을 건데.”


그래서였구나.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팀 일곱 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다섯 명. 2만 표의 베네핏을 안고도, 두 사람은 결국 잔류에 실패했다. 그 중 한 사람은 20위 생존자 발표 경합까지 갔었기에 더더욱 그의 아쉬움은 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뭐. 형은 할 만큼 했잖아.”


그 이상, 뭘 어떻게.

두 번을 물어도 대답은 같을 것이었다. 그 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지.


“켄타 형이랑 용국이랑, 아까워 죽겠다. 다 같이 고생했는데.”


그것은 욕심이라기보다는 사무치는 진심이었다. 흔하지 않은 음방 무대, 이왕 그 곳에 가게 될 거라면 생존한 채로, 다같이 가고 싶었을 그 마음이 너무나 손에 잡혀서, 그것조차 결국은 욕심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이 생존했다면, 그들 대신 다른 누군가가 떨어졌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말이 났으니 말인데.”


결국 화제도 돌릴 겸, 지훈은 슬그머니 물었다.


“형은 우진이가 그렇게 좋냐.”

“귀엽다 아이가.”

“그냥 귀여워하는 게 아니던데. 오늘 보니까.”


형이 1등 했으면 좋겠다던가, 우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 다니엘이 대답하는 말을 들었다. 뭐래는 거야, 꼬맹아 하고, 순간 울컥 샘이 날만큼 다정하게. 우진에 대한 그의 감정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슬그머니, 듣는 내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티를 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 말이었다.


“우진이가 열다섯 살이제.”

“그럴 거야. 선호보다 한 살 어리니까.”


다니엘은 손을 들어 뒷목덜미를 주무르더니 길게 기지개를 켰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지금 우진이보다도 작았다.”

“진짜야?”

“진짜다.”


우진의 키는 160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우진보다도 작았다면. 지훈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다니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았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럼 그 키는 언제 다 큰 건데.”

“고등학교 가니까 좀씩 크드라. 춤 안 했으믄 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카던데, 뭐 이 정도믄 됐지.”


키가 160 남짓한 다니엘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귀여웠을까.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키도 작고, 마르고, 그래서 뭐 완전 동네북이었다. 여 치이고 저 치이고. 우진이 보믄 그 때 생각이 마이 난다.”

“아깝네. 못 봐서.”

“보믄 우짜게.”

“귀여워해 주게.”

“혼난다.”


가늘게 떠진 눈초리가 흘끗,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로서는 흔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라는 니는. 민현이 형이 그래 좋나.”

“잘 생겼잖아.”


지훈은 입술을 삐죽거리다 히죽 웃었다.


“나는 그 형같이 좀 싸늘하게 생긴 사람이 멋있더라.”


사실 생긴 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차분하고, 날카롭고, 지킬 건 지키고, 그러면서도 너그러운 민현은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지훈에게는 하나가 더 있었다. 조별 경연 때 민현이 짠 팀에 다니엘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 춤을 보고 저 사람은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와 자신은 여기까지, 이렇게 떠밀려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까지를 전부 다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있잖아.”


다니엘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먼 하늘로 눈길을 옮기며 지훈은 말했다.


“서늘한 사람은 멋있는데, 그런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오래 가더라.”


꼭 누구를 집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다 보니 깨닫게 된, 아주 작은 사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형은 안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navyrain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4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