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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0

20. Missing You 中

차례차례로 이름이 불렸다.


순위는 크게 변동이 없는 듯, 늘 불리던 그 이름이 불리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등락이 있었다. 10위권 내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간 사람이 네 명이나 있었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불릴 때마다 모두는 박수를 쳤고, 더러는 껴안거나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게, 무대 위에 세팅된 20개의 의자는 하나씩 제 주인을 찾아갔다.

3위까지의 발표가 끝나고, 비어있는 의자는 세 개가 되었다.


“1등 후보, 두 명의 연습생은 무대 위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지훈은 일어났다. 주변에 앉아있던 연습생들이 제각기 손을 뻗어 지훈의 어깨와 팔을 두드렸다. 지훈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무대를 향해 뻗은 가늘고 좁은 길을 지나,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반대편 길에서는 다니엘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커다랗게 숨을 몰아쉬었다.


무대 앞으로 불려 나간 두 사람은 사회자 옆에 마련된, 단상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단상 같아 보이지는 않는 좁은 구조물 위에 올라섰다. 죽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도 방송을 탈 것 같은, 짙은 침묵이었다.


이런 날이, 결국 오는구나. 형.


흘끗 눈을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떨리지 않는 1위 후보는 처음이었다. 지금 떨리는 것은 1위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 아니라, 여기 이 자리에 다니엘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압박감일 터였다. 손바닥으로 축축하게 땀이 배어들었다.


“국민 프로듀서님, 과연 두 연습생중 세 번째 순위발표식 왕좌에 오를 연습생은 누가 될까요.”


사회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지훈의 귓전을 때렸다.


“마루기획 박지훈 연습생.‘

“네.”

“두 번째로 단상에 오르게 됐는데 어때요 오늘은 예감이 좋은가요?”


지훈은 미소를 지었다. 1위 발표의 순간, 이렇게나 마음이 편했던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었다.


“일단은 1위 후보에 올라갈 수 있게 돼서 일단 정말 감사드리고, 자신감이 좀 부족해진 거 같아요. 다니엘 형이 베네핏도 많이 받았고.”


옆에서 웃는 기척이 났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다니엘은 웃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단추를 꽉 채워 잠근 가쿠란은 살짝 답답해 보였다. 빨리 1위 발표가 끝나야 저 단추 좀 풀고 있을 텐데.


“그리고 워낙 인기도 있으신 형이니까 제가 조금은 위축되는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MMO 강다니엘 연습생.”

“네.”

“최고 2등까지 해봤는데 첫 1등 가능할까요?”


가만히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옆에 선 지훈의 귀에까지 들렸다.


“단상 올라온 것도 아직 어색하긴 한데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사회자는 두 사람 모두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프로듀스 101 세 번째 순위발표식 1등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1등 연습생은.”


이미 마음에서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런 순간에 마음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팽팽한 긴장의 순간, 다니엘은 주먹으로 가슴을 툭 치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국민 프로듀서님, 잠시 후에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의 편집점 후, 녹화는 재개되었다.


별로 오래 서 있지도 않았는데 무릎이 뻣뻣해진 느낌이어서, 지훈은 제 자리에서 몇 번 앉았다 일어났다. 곁에 선 다니엘은 언제나처럼 뒷짐을 진 자세로 그 자리에 버티고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긴장해서, 다리가 굳어지는 느낌조차도 못 느끼는 것을 터였다.


“매 무대마다 화려한 춤실력으로 국민프로듀서님들의 마음을 저격해온 연습생입니다.”


곁눈질로 쳐다보다, 다니엘의 시선이 돌아오려 할 때쯤 눈을 피했다.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마주보면 웃어버리거나, 울어버릴 것 같았다.


“매 평가마다 끈기 있고 성실한 모습으로 연습에 임하며 무대 위 완벽한 모습을 이끌어내는 연습생입니다.”


다니엘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가 너무나 생생히 전혀져 되레 웃음이 나왔다. 뭘 그렇게 답지 않게 쫄아 있냐고, 어깨라도 툭 치며 웃어버리고 싶었다.


“이 두 연습생 중 국민 프로듀서님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연습생은 누구일까요? 1등 연습생은.”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자는 자신의 이름을, 혹자는 다니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의 입에서 다니엘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말로 무사히,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다니엘은 잠시 휘청거리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붙들었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화면에 뜬 1위 화면을 바라보았다. 지훈 또한 고개를 들어, 그 화면을 함께 바라보았다.


축하해요.

이게 형의 결과구나.


“1등을 한 기분이 어떤지 소감 들어볼게요.”

“믿어주시고 투표해주신 국민 프로듀서님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이렇게 베네핏을 받고 한층 더 올라갈 수 있게 계기를 준 우리 열어줘 팀원들, 다 너무 고맙고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어 주셔서 제 삶에서 너무 감사하고.”


여기까지는 매우 일반적인 1위 소감이었다. 무대 아래서, 뒤에서 유독 커다랗게 손뼉을 치는 다니엘의 조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충분히 할 만한 인사였고, 받을 만한 환호였다.


“지훈이를.”


나?


제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지훈은 움찔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제가 라이벌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잘생긴 애랑 또 이렇게 붙어도 보고 그래서 오히려 제가 더 기분이 좋고.”


영광이다. 니같이 이쁜 놈이, 내한테 꼴려 주서.


도대체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지훈은 당혹스런 웃음을 흘렸다. 하지 마. 하지 마. 저도 모르게 손을 허공에 내저을 뻔 했다. 그러나 그런 지훈의 낌새를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 다니엘은 꿋꿋이 제 할 말을 계속했다.


“겟 어글리 할 때 너무 좋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그만 해요. 뭘 어디까지 말해버릴 생각인데. 대놓고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할 생각이야?


그러나 다음 순간.


“사랑해.”


웃음에 섞여 그 끝이 흐릿해졌나마,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말 끝에 웃으며 고개를 숙였을지언정.


잠시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지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 웃는 얼굴을. 저런 소리를 방송에서 대놓고 말해버리는 그 입술을. 물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순간 나도 하고 대꾸할 뻔 했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소감을 마친 다니엘은 허리를 숙여, 모두에게 인사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박수를 쳤다. 지훈 또한, 지금껏 한 번도 1위의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는 그를 위해 손뼉을 쳤다.


무대 중앙에 마련된 긴 층계를 올라, 두 사람은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내내, 양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연습생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축하 인사를 건넸다. 지훈이 자리에 앉는 동안 다니엘은 조금 더 올라가 가장 높은 자리에 마련된 1위 자리까지 올라갔다.


“되게 부담스럽다, 이 자리.”


다니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니는 여기 어떻게 앉았노.”


지훈은 허리를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한동안 자신의 자리였고 또 한동안 종현의 자리였던 그 자리는, 오늘부로 새로운 주인을 갖게 되었다.


“잘.”


지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멋있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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