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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re:19

re:19. Oh, Little Girl +1

몇 시간에 걸쳐 달아올랐던 무대는 순식간에 차디차게 식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무대 언저리에만 흐릿하게 조명이 들어온 경연장 주변으로, 오늘 하루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낸 연습생들이 모여들어 조 별로 한 줄을 섰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위치에 서서 바라보는 무대는 낯설다. 아주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고. 어쩌면 이 자리야말로, ‘연습생’ 신분인 우리에게는 가장 알맞은 자리인지도 모르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지훈의 팀은 398표로, 3위였다. 오늘 들어온 사람이 2천명이라고 했으니까, 그 중 5분의 1 정도를 대충 얻은 셈이었다. 썩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성적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남은 팀은 두 팀이었다. 다니엘의 팀과, 성우의 팀. 그 들 중 1등이 있고, 2등이 있다. 누가 1등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대를 잘 한 두 팀이었다.


“판타지오 옹성우 연습생.”


이럴 때 사회자는 대개, 리액션이 재미있는 사람을 고른다. 성우처럼.


“1등, 정말, 레알, 헐, 자신 있습니까?”


와 하고,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성우의 개그가 아주 취향이라고는,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주변을 웃기는 그 능력은 가끔 부러울 때가 있었다. 저 비슷비슷한 단어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이 심각한 분위기를 뒤집어 놓는 지금처럼.


“진짜, 완전, 대박, 헐, 리얼, 자신...”


그러나 그런 성우조차도 얼른 뒷말을 쉽게 꺼내지 못할 만큼, 지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있습니다.”


결국 끝을 맺은 그 말에, 모여든 모든 연습생들은 박수를 쳤다. 진심으로.


“플레디스 강동호 연습생.”


다니엘의 팀에서 지명당한 것은 동호였다.


“1등, 자신 있어요?”

“진짜, 대박, 정말, 완전, 리얼, 굉장히, 상당히, 혼또니, 자신 있습니다.”


중간중간 웃음이 터졌다. 이 흐름은 마치, 비슷한 말을 한 마디씩 덧붙여 빼먹는 사람이 벌칙을 받는 게임 비슷하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듣고는 있었지만 지금 허공에 오가는 모든 말들은 공허했고 실체가 없었다. 모두가 긴장해 있었고 모두가 떨고 있었다. 지금 이 말들은, 그 떨림을 덮어 가리기 위한 허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등과 2등은 동시에 화면에 떠올랐다.


해냈구나. 입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552표를 받아 1위 자리에 오른 것은 다니엘의 팀이었다. 흘끗 눈을 돌려 옆을 돌아보았다. 상대적으로 기대를 덜 받은 팀이어서일까, 멤버들 스스로도 이 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선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고 평소 담담하던 용국도 놀라움에 얼굴이 굳어진 채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동호도, 켄타도, 학년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 끌어안거나 손을 붙잡았다. 좋지 못한 구설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한 영민도 입가로 떠오르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미동도 하지 않고 돌아선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요.


트레이너들 앞에서 평가를 받을 때나 하다못해 같은 멤버들끼리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 할 때조차도, 그는 늘 뒷짐을 지거나 앞으로 손을 모은 채 기합이라도 받는 듯한 똑바른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모두가 술렁이는 중에도, 그는 한 발 떨어진 앞에 선 채 묵묵히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슬쩍 돌려지는 옆얼굴에 동요하는 기색이 조금 엿보이긴 했지만, 그는 혼자만 다른 세계에 떨구어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숨조차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럴 수 없는 걸 알지만 한 번만 안아주고 싶었다.


“큐브 유선호 연습생, 1위한 소감 한 마디 들어볼까요?”

“1등하고 싶다고 동호 형한테 계속 얘기했었는데, 동호 형이 어떨 때는 1등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고 어떨 때는 쉽지 않다고 그러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지훈도 웃었다. 흥분한 기가 덜 가신 선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저희 연습할 때 보면 잘할 거 같다고 하고 네버 연습하는 거 한 번 보고 나면 쉽지 않다고 하고... 그랬는데 좀 전에 1등한 거 보고 심장이 멈출 뻔 했어요...”


아까 무대에서, 다니엘의 손 끝 디테일을 거의 똑같이 따라하던 선호가 생각났다. 시간도 부족했고, 아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괜히 붉게 달아오른 선호의 눈자위를 바라보며, 지훈은 그런 생각을 했다.


“1등 팀의 리더 강다니엘 연습생.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순간 지훈은 괜히 숨을 멈추었다. 저도 모르게 입이 타는 기분에, 가만히 입술을 핥아 축였다. 다니엘의 대답은 얼른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이나 뜸을 들인 후에,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인지 그것은 누가 봐도 ‘승자’의 태도는 아니었다.


“지금 어...”


그제야 다니엘은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지훈이 아닌, 자신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을 향해.


“우리 무대 한 번 더 선다...!”


붕대를 감은 손 위에, 살짝만 건드리듯 놓여지는 멤버들의 손을, 지훈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미소 비슷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을. 아주 낯선 것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이제 마지막으로, 개별 득표수가 공개되었다. 지훈은 2등이었다. 182표. 그의 위에는, 205표를 얻은 단 한 명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아마도 다니엘의 팀 멤버 중 한 명이겠지. 다니엘의 팀 멤버들의 성적이 마지막으로 끝 순위부터 공개되었다. 3등까지가 발표되는 동안, 다니엘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1등과 6등 자리만을 남겨놓고, 그 자리에는 자신의 성적을 모르는 두 사람이 남았다. 다니엘과 동호였다.


어려운 문제였다. 무대에서 가장 빛난 것은 아무래도 다니엘이었지만,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간 것은 메인보컬인 동호였다. 누가 1등이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전히 사심으로, 지훈은 자신의 위에 있는 205표의 주인이 다니엘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형 그간 너무 힘들었으니까

오늘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거라도.

이것만이라도.


“1등 연습생은 오늘이 아닌, 다음 주 순위발표식에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나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이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펑 터져 버리듯, 사회자의 그 한 마디에 장내의 공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말았다. 에이, 하고 누군가가 가벼운 야유를 보냈다. 실없이 웃는 소리들이 들렸다. 무대에 선 사회자조차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다니엘을 쫓았다. 그는 그제야, 자세를 풀고 웃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아침에 가까운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뒤로 미루고, 지훈은 경연장 뒤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아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다니엘을 찾았던 그 곳 언저리에, 다니엘이 있었다. 그는 말없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채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멀거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 가요?”

“가야지.”


대답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꿈 같다.”

“뭐가.”

“오늘 여서 있었던 일들, 다.”

“1등해서 그럴 거야.”


말없이 옆으로 가서, 같이 벽을 등지고 섰다.


“한 번 깔아볼랬더니, 쉽지 않아?”


흘끗, 옆을 돌아보더니 피식 웃었다. 메이크업이 적당히 번지고 지워진 얼굴은 이젠 좀 알던 사람으로 돌아왔는데, 의상이며 헤어는 여전히 낯설었다.


“재주껏 깔아봐라. 깔려 주께.”

“진짜지.”

“내가 언제 니한테 없는 소리 하드나.”

“콜.”


지훈은 다니엘의 앞으로 가 섰다. 흐트러진 매무새라도 잡아주듯 수트의 어깨 깃을 꼼꼼하게 매만지다가, 그는 수트의 목덜미 부분을 붙잡고 다니엘을 앞으로 끌어당겨 그 입술에 길고 깊은 키스를 했다.


“오늘 멋있었어. 멋있었는데.”


아까 닦아버린 바람에 틴트는 거의 지워지고 흐릿하게, 약간만 남아 있었다. 아주 살짝, 혀 끝으로 남아있는 틴트를 핥았다. 슬쩍,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 났다.


“또 이런 컨셉 하면 죽여버릴거야.”

“니 마음대로 해라.”


느긋하게 입술을 덮어오는 다니엘의 목소리는, 낮고 둔탁하게 지훈의 귓전을 휘감았다.


“내는 죽으나 사나 니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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