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연성][녤윙] Time Light re:19

re:19. Oh, Little Girl 中

조명이 어스름히 어두워졌다.


똑같이 발표된 평가곡이라고는 해도, 지난 번 발표 때 말고 제대로 들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귓전을 울리는 비트는 조금은 스산했고, 듣기에 따라 조금은 쓸쓸하게도 들렸다.


조명이 밝아지며 비트는 바뀌었다. 다니엘은 무대 중앙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대기실 안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앞서 본 그 어떤 곡 때와도 달랐다. 그는 날 서 있었고, 예민해져 있었고, 그만큼 위태로워져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위태한 날카로움이 그 얼굴에 잔뜩 묻어났다. 순식간에 무릎과 어깨, 얼굴로 옮겨지는 손동작은 빨랐고, 예리했다.


“다니엘 감정 잡혔다.”


뒷줄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훈의 눈은 다니엘의 오른손에 붙박혀 있었다. 붕대를 감은 오른손 손가락들이 움직이고, 주먹 쥐어지고, 일정한 선을 그릴 때마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손뼉 치는 것조차 힘들어서 팔을 두드리거나 손뼉 치는 시늉만 하던 손이었다. 미쳤어. 그는 입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림자가 되어 널 지킬게


멈추어 서는 걸음, 돌아서는 뒷모습, 허공에 흩뿌려지는 잔상까지.


오늘 다니엘은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겨우 세 살 남짓 차이 나는 주제에 세상 다 산 어른인 척 굴던 그 다니엘이 아니었다. 깊이 상처받아 주저앉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차가운 말에 뭐라고 대꾸를 하는 대신 젖은 눈으로 말없이 돌아설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낯선 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는 동안, 다니엘은 시선 한 번 놓치지 않고, 동작 하나 흘리지 않고 묵묵히 정해진 스텝을 따라 무대를 헤치고 있었다.


운명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재킷을 펼치고, 심장 위에 한 손을 품고, 다시 재킷을 접는 안무. 환호성이 터졌다.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순간 철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영광이다. 니같이 이쁜 놈이, 내한테 꼴려 주서.


그 말을 하면서, 다니엘은 손을 뻗어 지훈의 심장 위에 손을 얹었었다. 얇은 옷자락 너머로, 아마 터질 듯이 뛰던 그 박동을 그는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 순간 형의 박동은 어땠는지를. 과연 그 때의 나 만큼이나, 빠르고 거칠게 뛰고 있었던지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 선 당신의 박동은 어떠한지를.


“선호 잘한다.”


그 말에 잠시, 다니엘의 뒤쪽에 선 선호에게 시선이 갔다. 손 끝의 디테일이 눈에 익었다. 허공을 헤집고 천천히 접혀지는 그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익숙했다. 열심히 따라 배운 것이구나. 그 이전에, 스치기만 해도 인상을 쓰던 그 손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느라 애를 썼으리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간지러운 네 숨결로

온종일 나를 설레게 해


털듯이 재킷 자락을 넘기는 그 손은, 조금 전 의자에서 일어나 어깨 깃을 탁 소리가 나게 추스르던 그 동작과 한 세트인 것처럼 보였다. 더듬듯 허벅지를 쓸어 올리는 손의 디테일에 다시 한 번 여기저기서 비명 섞인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그 순간 지훈은 그 손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 부분은 섹시한 안무이니 마음껏 환호하고 소리 지르라고, 안무가가 써놓은 듯한 그 안무를 수행하는 다니엘의 표정은 여전히 처연했고, 조금은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모니터 액정 너머 눈이라도 마주친 듯한 착각에, 지훈은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없이 손을 주먹 쥘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그의 모든 디테일이 결국은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허공을 내뻗는 손과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과 돌아서는 뒷모습과 멈추어서는 모든 걸음걸음이, 결국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기억났다던 다니엘의 알 수 없는 그 말이 끝없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뭐가 기억났다는 건지, 그 무대 너머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내게 하려는 것인지.


운명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노래는 어느덧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루브를 타면서도 은근히 격렬한 동선에 얹혀, 안무 또한 따라서 격해졌다. 펼쳤다가 접히는 팔이, 리듬을 타는 몸이, 바닥에 꿇었다 다시 들려지는 무릎이, 다니엘의 모든 것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높이 들려 허공을 드는 손 끝이, 모니터 액정 너머 바라보는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렸어

내 세상을 달빛처럼 비추길

어둠 속에 유일한 빛이길


아, 그러고 보니 바닥에 눕는 안무가 있다고 했다. 손을 짚고 눕는 거라, 다른 건 참아도 그건 좀 힘들 것 같다고 했었는데. 다행히 안무를 좀 수정한 모양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메인 보컬과 더불어 혼자 무대 위에 선 채, 다니엘은 남는 박자를 지그시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목이 탔다. 입술이 말랐다. 안타까운데 그것만은 아니고, 가슴이 시린데 그것만은 아닌, 복잡하고 혼란한 어떤 감정이 지훈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도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야?


난 이미 형에게 열었는데.

navyrain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6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