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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re:19

re:19. Oh, Little Girl 上

다니엘, 어디 있는지 혹시 알아?


경연장에 도착해, 성우와 얼굴을 마주쳤다. 시험 치는 날 아침에 공부 많이 했느냐고 서로 묻듯, 잘하라는 인사를 주고받은 후 성우는 흘끗 어깨 너머를 한 번 돌아본 후 그렇게 물어왔다.


아니요, 저는...


대답하는 말투가 분명치 않았던 건, 슬그머니 뒤가 저려서일 것이다.


준비 마치고, 한 번 찾아 봐. 잘하라는 말이라도 해 줘.

네?

이 자식 방전됐어. 저 혼자 추스르기도 힘든데 조를 통째로 떠안았으니까.


가만히 콧잔등을 찌푸려 보이며 성우는 가만히 혀를 찼다.


얼굴 보거든 힘내라는 말이라도 한 마디 해 줘.






메이크업을 하는 내내 성우의 그 말이 마음에 걸려, 지훈은 안절부절 못했다. 손톱 옆 거스러미를 잡아 뜯다가 뜨끔한 생살의 통증에 손을 멈춘 것이 두어 번. 틴트를 바른 입술을 새삼 깨물 수가 없어, 지훈은 가만히 입 속 살을 잘근잘근 물어씹으며 빨리 메이크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좁지도 않은 경연장 곳곳을 기웃거리며, 지훈은 다니엘을 찾으러 다녔다. 그의 조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있는 곳에도 그는 없었다. 담배라도 피우러 나간 것일까. 아니, 혹시나 팬들의 눈에 띌 지도 모르는 이런 곳에서 담배 같은 걸 피울 만큼 부주의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건데.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지훈은 경연장 한 구석 의상과 소품을 대충 쌓아둔 곳에서 다니엘을 발견했다.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자세가 흐트러진 탓에 젖혀진 목덜미 쪽으로 목줄기와 쇄골까지가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의자에 기대앉은 몸을 따라 수트의 라인이 휘감기고 있었다. 내리감은 눈, 슬쩍 벌어진 입술, 팔걸이에 간신히 기댄 손에 감긴 붕대까지.


이상해.

형 오늘 되게 야한데, 왜 이렇게 슬퍼 보일까.


“형.”


입을 열어, 불렀다. 빛에 반응하는 그림자처럼, 다니엘은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인지, 눈이 잘 떠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디 아픈 건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 이마를 짚었다. 열 같은 건 없었다.


“지훈이가.”


부르는 목소리는 낮고 둔탁하게 잠겨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다.”


싱긋, 느리고 완만하게 미소 짓는 입술은 언제나와 같기도 했고, 어딘가 처연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안 죽는다 했제, 내가.”

“말이나 못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다니엘의 팔을 툭 하고 때렸다. 혹시나 아플까봐, 살살.


“왜 사람을 이렇게 걱정시키고 그래. 미워 죽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 네 순위가 나보다 밑이면, 잘까-하는 그 어이없는 말을 들은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시작된 거라고. 그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지훈의 머리 속을 스쳤다.


결국 이 사람과 나는, 어떻게든 서로를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울지 마라.”


눈 앞이 아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다니엘의 그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 후였다. 메이크업까지 했는데, 울기라도 하면 정말로 곤란하다. 지훈은 기를 쓰고 눈 가에 맺힌 눈물을 참았다.


이리 오라는 듯 다니엘이 손짓으로 지훈을 불렀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부르는 그 손짓에 결국은 한 발 옆으로 다가섰다. 가만히 뺨을 쓸어오는 그 손끝은, 역시 지금껏 알던 그가 맞았다.


“좋아해 주지 말 걸 그랬어. 이렇게 속상할 줄 알았으면.”

“야, 니는 무슨 그런 말을.”


니는, 과 무슨 사이에, 아주 찰나의 공백이 생겼다.


다니엘은 문득 눈을 떴다. 엷게 충혈되어 있긴 했지만 그 눈은 또렷했고, 눈빛은 순식간에 온도가 내려가 서늘해졌다. 그 눈빛으로, 지훈은 자신이 방금 부지불식간 그의 어떤 것을 건드렸음을 깨달았다.


“지훈아.”


지훈을 부르는 다니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니는, 내가 언제부터 니 좋아했는지, 아나?”

“응?”


그 질문은 조금은 갑작스러워서, 지훈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나는.”


그 때였는지, 그 때가 아닌 다른 때였는지.

아니,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한 사이, 다니엘은 팔걸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의 선이 순식간에 변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그가 꼭 그랬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혹은 물이 얼어 얼음이 되듯, 흐트러져 있던 그는 순식간에 예리하게 날을 세웠다. 지금의 그는 조금 전까지 ‘방전’되어 있던 그 다니엘이 아니었다.


“기억났다. 니가.”

“네?”

“니가 기억났다고.”


다니엘은 별로 흐트러지지도 않은 수트의 어깨깃을 탁 쳐서 추슬렀다. 그것은 꼭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조금 전까지 널브러져 있던 자기 자신에게 일종의 선을 긋는 행동인 것처럼도 보였다. 어리광은, 여기까지. 그런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기대해라.”


아직도 잠겨 있는 목소리는 슬쩍 그 끝이 갈라졌다.


“다 직이고 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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