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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9

19. 열어줘 下

애절한 척 하는 것과 애절한 것은 다르다.

갈망하는 척 하는 것과 갈망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하는 척 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므로


애절하라.

갈망하라.

사랑하라.






기대해라. 다 직이고 오께.






조명이 어스름히 어두워졌다. 도대체 몇 번을 들었는지, 이제는 첫 음만 들어도 그 진행이 자동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전주가 그 뒤를 따라 흘렀다. 비명 같은 환호성이 그 뒤를 따라 사이렌처럼 울렸다.


흉내 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 감정을 느껴야 했다. 느끼는 척 하는 것으로는, 그런 척 하는 것으로는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표피적인 감정으로는, 그 누구도 사로잡을 수 없다. 비록 이것이, 오늘 한 번으로 끝나고 말 무대일지라도.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었다. 박자에 배어든, 리듬에 익어버린 몸은 뭔가를 의식하기도 전에 알아서 음악을 타고 있었다. 무대에 올라오기 전 한 번 더 먹은 약 때문인지, 바짝 졸라맨 붕대 속의 오른손은 잠시 통증을 잊었다. 허공을 부유하는 듯한 몽환감만이 흐릿하게 움직이는 손 끝에 스며들 뿐이었다.


정면을 바라보았지만, 사실 다니엘의 눈은 정면 너머 그 어딘가, 어느 순간, 한동안 쫓고 있던 그 뒷모습에 향해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타는 목마름을. 한 번만, 단 한 번만, 돌아봐주기를 바랐던 그 숱한 순간들을. 뜻없이 눈이 마주치던 순간, 알 듯 모를 듯 스쳐가던 그 수많은 감정의 가닥들을.


농담처럼, 진담인 듯, 그렇게-

거기 그렇게 무심한 듯 서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너에게서

짓궂은 말을 꺼내기도 한참 전부터 이미 끌려가고 있었던 나에게까지.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림자가 되어 널 지킬게


몇 발짝 앞에서 움직이는 동호의 동선에, 정말로 그림자가 되듯 그 뒤로 몸을 숨겼다.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째 하프 턴. 제일 중요한 것은 리듬, 그 다음이 박자, 그 모든 한 순간 한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말 것.


그 박을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센터에서 물러난다. 센터가 아닐 때는, 센터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한 무대의 중심은 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누가 센터이든, 사이드로 물러서면 철저히 기척을 죽인다. 나를 내던져 미끼가 되겠다고 했지만, 그것과 센터 흉내를 낸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건, 이를테면

이 무대를 위한 총알받이 같은 것.


운명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재킷의 자락을 벌렸다. 다친 새가, 마지막으로 날개를 펴듯. 이 춤에는, 소위 섹시한 포인트 안무가 거의 한 동작 건너 하나씩 깔려 있었다. 사람이 느끼는 것은 거의가 비슷하다. 이런 ‘노린’ 안무를 하면서 표정이 과하거나 디테일이 과하면, 그 춤은 그 때부터 부담스러워진다. 무덤덤하게, 담담하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한다는 기분으로 달려야 한다.


마치, 네게 그랬듯이.


생각해 보면, 그랬다. 왜 그런 애매하고 무책임한 방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강요할 수 없는 마음이어서.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혼자서만 갖고 있기에는 너무 벅차서. 어떻게든 말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네가 알아듣지 못하기를 바라기도 했더래서.


두드리지 않아도 네가 열어준다면.

소리쳐 말하지 않아도 네가 들어준다면.

어찌 보면 비겁하고, 어찌 보면 애가 타는, 불과 얼마 전까지 가슴 한 구석에 침잠해 있던 그 마음들.


그것이, 다니엘이 찾던 마지막 한 가닥이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엇을, 왜, 어디로 열어달라는 것인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금 추고 있는 춤은 흉내가 아니라, 가식이 아니라, 연기가 아니라, 그저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영어 단어를 외우듯 갈래갈래 쪼갠 박자에 몸을 구겨 넣은 몸놀림이 아니라, 마음 한 구석을 파낸 그 자신의 진심이었으므로.


간지러운 네 숨결로

온종일 나를 설레게 해


그날 밤, 아니, 그날 새벽.

이제 그만 내게 져달라던 너의 진심과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진심에 항복해 버린, 또 다른 나의 진심이.

손 끝에, 품 안에, 내 골수의 끝까지 스며들던 너에게.


운명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나의 끝은, 무엇일까.

이 어처구니없는 공간에, 이 말도 안 되는 시간의 끝에 기다리는 나의 끝은.

그러나 그 끝이 어떻게 나든 간에, 너는 이미 내게 파고든 것을.


운명처럼

숙명처럼

그보다 더한 어떤 것처럼.






애절한 척 하는 것과 애절한 것은 다르다.

갈망하는 척 하는 것과 갈망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하는 척 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므로


애절하라.

갈망하라.

사랑하라.






너는

언제쯤

정말로 나를 좋아해줄까.






열어줘.

너의 마음을,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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