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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8

18. 고백 下

그 말을 들은 다니엘은 잠시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렇게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다가, 그제야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은 듯 그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겨.”


기껏 골이 나서, 그렇게 한 마디를 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한참을 소리 죽여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니 원래 알던 다니엘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지만, 꼭 그만큼이나 지금 이 상황은 부끄럽고 어색했다.


“와. 내 좀 야하나.”


으쓱대며 쳐다보는 얼굴에는 아직도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지훈은 고집스레 눈을 흘기며 그런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형만 의상이 왜 이래. 아까 보니까 다른 사람들 의상은 이 정도는 아니던데.”

“뭐가 이 정도는 아닌데. 동호 형 의상이 진짜 야한데.”

“아 몰라, 몰라. 그 형 의상이 야하든 말든 그건 모르겠고, 형은 진짜 의상이 왜 이래.”


재킷을 당겨 잠근 것으로도 모자라, 지훈은 툴툴거리며 손 끝으로 슬쩍 벌어진 이너의 넥 부분을 꼭꼭 잡아당겨 여몄다.


“도대체 누굴 보라고 이런 걸 입고 나오는 거야.”


이쯤 되니 다니엘은 본격적으로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어깨를 보니 새삼 머쓱해졌다. 원래도 시덥지 않은 농담에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웃지 않기를 바라는 게 무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클났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서, 다니엘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그래가 우짤래. 무대에서는 더 야할 건데.”


순간,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이 팀의 안무는, 다 같이 모여 곡 소개를 받을 때 한 번 정도 겨우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때도 이미, 상당히 어른스럽고 섹시한 안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안무를, 이 사람이 추는 것이다. 야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좋댄다.”


약이 오르는 것 반, 정말로 미운 것이 반 해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다니엘의 팔을 제법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아야. 엄살스레 어깨를 움츠리며 다니엘은 샐쭉한 표정으로 지훈을 쳐다보았다.


“니 은근히 손버릇 나쁜 거 아나.”

“맞아도 싸지 뭘.”

“마, 씨. 손도 성찮은 사람을 그래 패나.”


아차.

지훈은 깜짝 놀라 다니엘의 오른손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자신이 때린 것은 왼팔이었고 다니엘이 다친 것은 오른손이라는 것이 떠올라 새삼 두 배로 더 약이 올랐다. 이를 악물고 가만히 흘겨보자, 다니엘은 엄살스레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비켜섰다.


“때리지 마라, 아프다.”


다니엘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호소라도 하듯 말했다.


“니는, 임마. 니 손 얼마나 매운지 모르제.”

“맞을 짓만 안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란 생각은 안 들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거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지훈은 급작스레 시무룩해졌다.


이 곡에 배정받은 것부터가 일종의 벌이었고, 그 와중에 다쳤고, 그 와중에 멤버는 반 가까이가 중간에 바뀌었고, 센터는 말썽에, 연습할 시간은 모자라고. 언뜻 생각나는 것만도 이 정도인 그 복잡하고 심란한 과정을 뚫고, 그는 어쨌든 지금 이 자리까지 멤버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따위 투정이나 부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니. 새삼 스스로가 착잡해져 지훈은 가만히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와 또 그래 시무룩해지는데.”


다니엘은 손가락으로 지훈의 입가를 콕 찌르더니 쭉 위로 밀어 올렸다.


“내가 뭐라대. 니는 웃는 게 제일 이쁘다 했제.”

“마음에도 없는 소리.”

“누가 마음에도 없다대.”

“대충 보면 알지 그걸 꼭 말로 들어야 아나?”


지훈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고, 억지로 잡아당겨 잠근 다니엘의 재킷 단추를 다시 풀었다. 별로 구김이 가지도 않은 옷 여기저기를 가만히 털고, 넥 부분을 억지로 여미는 바람에 매무새가 흐트러진 이너의 옷 결을 다시 만졌다.


“내일 말할 정신없을지도 모르니까, 미리 말할게. 잘 해요.”

“그래. 니도.”


붕대를 감은 다니엘의 오른손이 지훈의 정수리 위에 살짝 얹혔다.


“그래 이쁘게 입고, 그래 심통이나 부리믄 되나.”

“난 솔직히 내 의상 별로 맘에 안 드는데.”

“아이다.”


키 차이가 몇 십 센티 이상 나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때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니는 뭐를 입어도 다 이쁘다. 진짜로.”


머리 위에 얹힌 다니엘의 손을 끌고 내려와 살짝 만졌다. 도대체 이 붕대는 언제나 풀겠다는 건지, 이렇게 붕대씩이나 감은 건 이 붕대를 감고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었을 텐데 이 사람은 이 손을 하고 춤을 추고 무대를 하니까. 치료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도대체 언제 낫는데.”

“모르겠다.”

“안무할 때 몸 안 사리는 거 아는데, 그래도 손 조심하구.”

“알았다.”

“그리고, 적당히 해.”


결국 잔뜩 부어터진 목소리로 지훈은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그렇게 목숨 안 걸어도 되잖아. 적당히 좀 해요. 뭐야. 방송 보는 사람 다 꼬시기라도 할 생각이야? 도대체 누구 보라고.”


중얼중얼, 다하지 못한 불만이 입 밖으로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니엘은 왼손 두 손가락을 살짝 입술에 대었다가, 지훈의 입술 위에 댔다. 그리고 그 가벼운 손놀림만으로, 그는 지훈의 투덜거림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기대해라.”


다니엘은 담백하게 말했다.


“다 직이고 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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