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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8

18. 고백 上

경연 하루 전날은 보통 드레스 리허설을 한다. 말이 리허설이지, 메이크업과 헤어, 의상까지를 실제와 거의 똑같이 맞추고 진행하므로 사실상 경연은 그 때부터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었다.


리허설 분위기는 언제나 뒤숭숭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프로그램 안에서 치른 세 번의 리허설 모두 그랬다. 극에 달한 긴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뭔가를 더 준비할 수도 없다는 사실, 오랜 시간을 두고 드문드문 진행되는 일정까지. 그것은 리허설이라기보다는 누구의 신경줄이 얼마나 더 질긴가를 겨루는 시합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바깥에서는 첫 순서로 나올 팀의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순서는 피디가 지정했다. 지훈의 순서는 네 번째, 다니엘의 순서는 그것보다 조금 빠른 세 번째였다. 이런 경연의 경우는 마지막에 가까울수록 유리하긴 한데, 경연 시간이 길면 관객들의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지라 꼭 마지막이 좋기만 한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보러 안 갈래?”


형섭이 문 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어왔다. 아닌 게 아니라 리허설은 그동안 각자 경연곡 연습에만 몰두하느라 볼 기회가 없었던 다른 연습생들의 무대를 슬쩍 구경할 기회이기도 했다. 남의 시험 답안지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지훈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끄덕인 형섭이 나가고 나자, 지훈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분장실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렸다. 세 번째 순서면, 지금 한참 이것저것 챙겨보고 있을 텐데, 정말로 정신이 없어지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 며칠을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며 강행군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괜찮다고, 잘 할 거라고, 그 말이라도 괜히 한 마디 해 주고 싶었다. 내 코가 석자라는 걸 알면서도.


저 쪽에, 선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학년이 보였다. 다니엘과 같은 팀 멤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메이크업을 받고 의상을 체크하고 있었다. 노래 풍이 좀 어른스럽더니, 다들 블랙 위주의 수트 컨셉인 모양이다. 그런 거라면 다니엘 또한 저 비슷한 의상을 입었을 테고, 그의 수트라면 일전 조별 경연 때도 한 번 본적이 있었다. 그 때는 머리가 핑크색이라 대번 눈에 띄었었는데, 오늘은-


“뭐하노. 여서.”


낯익은 목소리가 반가워 뒤를 돌아보았다가, 지훈은 그만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다니엘은 지훈이 지금껏 알아왔던 그 다니엘과는 또 달랐다. 젖힌 것도 내린 것도 아닌 머리칼은 왁스를 발라 젖은 듯이 이마를 가렸고 라인을 그린 눈매 때문인지 유독 색이 붉은 립 때문인지 어딘가 몽롱해 보였다. 몸에 휘감기는 검은 수트 안에는 넥이 깊이 팬 블랙 이너를 입고, 언제나 그랬듯 목걸이며 팔찌며 피어싱까지를 빈틈없이 휘어감은 그는 자신이 알던 그 다니엘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눈에 익은 것이라고는 품에 맞추다 보니 어깨가 끼어 팽팽하게 당겨진 어깨솔기뿐이었다.


“와, 무슨 일 있나?”


그 목소리가 귀에 익어, 그제야 얼굴이 붉어졌다. 지훈은 화들짝 놀라 다니엘의 소매를 잡아끌고 몇 발 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피하려는 생각도 생각이었지만, 일단 깜짝 놀라 뛰기 시작한 가슴을 좀 진정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무슨 일인데, 갑자기.”


몇 발 끌려오다 멈추어 선 다니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지훈은 귓전에서 붕붕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기, 뭐 며칠 밤도 새고 그러는 거 같던데, 괜찮나 하고.”

“아.”


슬쩍 미소를 짓는 입술은, 역시 보통 때보다 그 색이 붉다. 주머니에 티슈 같은 게 있다면, 모르는 체 닦아내 버리고 싶었다.


“잠 와 뒤지겠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니엘은 성큼 앞으로 다가서 지훈의 어깨를 껴안고 그 목덜미에 턱을 기댔다. 메이크업이 지워질까 조심스럽게.


“딱 한 숨만 잤으면 좋겠는데.”

“뭐하는 거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지훈은 기겁을 하고 다니엘을 떠밀어냈다. 정말로 누가 볼까봐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순식간에 입이 바싹 마르고 식은땀이 났다. 도대체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 새끼 또 비싸게 구네.”


섭섭한 듯, 시무룩하게 말하는 음성을 듣고서야 마음이 좀 놓였지만 그렇다고 선뜻 뭐가 진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훈은 괜히 소매 끝을 접었다 폈다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피했다.


“손은요.”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우선 급한 대로, 생각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가지고 무대는 할 수 있는 거야?”

“안 할 수는 없다 아이가.”

“손 쓰는 안무 많은 거 같던데.”

“좀 된다.”

“어떡하려구.”

“해야지 뭐. 답 있나.”


으쓱, 어깨를 들었다 놓는 다니엘은 아무래도 그 목소리가 아니라면 쉽게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모르겠다. 손 짚고 드러눕는 데가 한 군데 있는데, 그거는 좀 자신 없는데.”


눕기까지나 해? 그러고?


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한참이나 다니엘을 위 아래로 쳐다보았다.


“니는 준비 마이 했나.”

“나야 뭐.”


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발 끝으로 애꿎은 바닥을 툭툭 걷어찼다.


“잘 거 다 자고, 먹을 거 다 먹고, 준비 잘 했지.”

“그라믄 됐다.”

“근데.”


간신히 용기를 내 얼굴을 슬쩍 한 번 쳐다보다가, 지훈은 다시 저도 모르게 몸을 모로 틀어 시선을 피했다.


“의상 왜 이래.”


순간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왜 새삼스럽게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가. 서로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이미 할 수 있는 스킨쉽은 다 해보지 않았던지. 이제 와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첫 눈에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뛰는 가슴이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째서.


“와. 뭐 이상하나?”

“이상한 게 아니고.”


지훈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다니엘의 수트 재킷 자락을 힘을 주어 잡아당겨 억지로 여몄다.


“왜 이렇게 다 풀어헤치고 있는데. 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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