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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7

17. 여보세요 +1

아무래도, 센터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말을 들은 동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만을 깜박이며 입을 꾹 다문 그의 얼굴에 착잡한 기색이 스쳤다.


“센터라...”


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굳이 동호에게 먼저 상의한 것은 그가 단순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센터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센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가며 가장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지금 센터를 바꾸자는 말은 지금껏 그가 쏟아 부은 노력을 전부 없었던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었다.


“그게, 리더 판단이야?”


한참만에야, 그는 그렇게 짤막하게 물었다.


“예.”


다니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제 욕심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냥 쓴 소리 하는 역할 하기 싫어서 미적거리고 있는 거 아니냐고. 아니라는 말이 차마 안 나오던데요.”

“세네.”


동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가 판단이 섰으면, 그렇게 해야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처음, 이 팀에 배정된 연습실 문 앞에 서서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했던 생각들을. 그냥 뭘 시키든 시키는 거나 열심히 하고, 조용히 이 미션을 마무리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결심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환호성을 지르던 동호의 목소리에 박살이 났다. 안무가 어렵고, 그러니 빨리 안무 숙지해서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래서 리더는 다니엘이 했으면 좋겠다던 그 목소리에.


“결정이 안 났으면 모를까, 이왕 결정 난 거 미적거리는 거 안 좋아. 내가 먼저 말 꺼낼 테니까.”


동호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다. 그냥 내가 다 이야기할게.”

“형이 왜요.”

“이거 민감한 얘기야. 몰라?”


워낙에 강한 인상에, 게다가 데뷔한지도 몇 년이나 지난 아이돌 출신. 다니엘에게도 동호는 가까이 가기 그리 쉽고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곳에서 몇 번을 부대끼고 구르며 겪어본 그는, 보기와는 달리 소탈하고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순위발표식 후 엉망이 된 팀을 추슬러 여기까지 오는 것도, 혼자서라면 어림도 없었을 거라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이거 방송 나가면, 편집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기 무슨 말인데요.”


저도 모르게 억양이 흔들렸다. 그 말을 알아들었기에, 더더욱.


“야, 너 말투가.”

“아니, 그기 무슨 말이냐고요, 형.”


조별 평가 때도, 포지션 평가 때도, 동호에 대한 편집은 박했다. 화면에 비친 그는 자신의 나이와 경력만으로 어린 동생들을 밀어붙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조를 끌고 나가는 소소한 독재자처럼 비쳐졌다.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와 함께 경연을 치러본 많은 연습생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사실이었지만 그런 것이 화면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어떻게 전달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욕은 이왕 먹어본 사람한테 몰빵하는 게 낫지 않냐 뭐 그런 얘기지.”

“...”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의 얼굴이 굳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낮에 들은 지훈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그런 말 잘 하는 성격 아닌 거 알아. 그렇지만 형이 해야 돼요. 그게 리더야, 형.


내가 언제부터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자꾸만 그 뒤에 숨겨주고 싶은

그런 인간이 된 거지?


“됐습니더.”

“니엘아.”

“그런 거 취미 없습니더.”


낮게 깔린 목소리는 퉁명스러워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 팀에, 이 곡에 온 것이 원했던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었고 그래서 피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형이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리더고, 센터 바꾼다 하는 말은 제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더.”


원하던 곡에서 밀려나 이 곡으로 오게 된 그 과정에 대해 말하자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긴 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일을 피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총알받이로 세우는 것 또한 꼭 그만큼이나 내키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적어도 지금껏, 그렇게 적당히 여기저기를 간보며 살아오지는 않았으므로.


“그라고.”


특히나 이 사람에게라면 더더욱.


“욕으로 따지믄, 지도 만만찮게 많이 묵었습니더.”

“...”


동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다니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좀 오버했네. 그렇게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미안해.”


다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저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특히나 이번 팀처럼, 뭔가 순탄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태클이 걸릴 때는 더더욱.


“그냥, 사실만 말하자. 학년이가 뭐, 심성이 나쁜 애는 아닌데 안무도 노래도 지금 너무 못 따라오고 있으니까, 딱 거기까지만 말하면 알아들을 거야.”


다니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렇게 허비하는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센터를 바꾸는 것까지도 좋다. 그 후가 더 큰일이었다. 누구를 센터로 바꾸든, 그 바뀐 센터의 안무와 동선과 박자를 잡아주느라 오늘 하루를 또 꼬박 허비해야 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입 속이 바싹 말라왔다.


이 곡,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고생한다.”


그런 다니엘의 마음을 다 들여다 보기라도 한 듯, 동호가 다시 한 번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동호 또한 지금부터 똑같이 겪어야 할 문제였다.


“아뇨, 제가 뭘.”

“근데 니엘아.”


동호는 피식 웃었다.


“말 편하게 해라. 억지로 서울말 쓰지 말고. 지금 보니까 그 쪽이 너한테는 훨씬 더 어울리는 거 같더라.”






정말, 진짜 솔직하게 얘기해서 난 센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팀을 위해서 좋을 거 같아. 이... 동선을 진짜 한 번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어. 박자도 한 번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으니까. 시간 얼마 안 됐지. 근데 맞추는 선호나 영민이 형은 뭐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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