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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7

17. 여보세요 下

그 팀 센터 결국은 바뀌었다더라 하는 말은 그날 밤이 되기 전에 모든 연습생들 사이에 퍼졌다.


그 형이 성격 좋고 워낙에 싫은 소리 안 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도 도저히 안 되겠던지, 센터 바꾸자고 말 꺼낸 모양이더라고.


형섭의 말에 지훈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자신의 말을 받아들여준 다니엘에 대한 고마움이기도 했고, 결국은 그런 상황을 떠안게 되어버린 그에 대한 연민이기도 했다. 그러게, 생각해 보면 이 곳에서 배우는 것은 춤이나 노래만은 아니었다. 날마다 겪게 되는 이런 저런 상황들은 앞으로 아이돌이 되어 겪어야 할 수많은 스트레스에 대한 예방접종 비슷한 것이기도 했다. 지금 이것 또한 그 중 하나일 것이고.


경연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지금 센터 바꿔서 어쩌려고 그러지.


형섭의 중얼거림에 지훈은 반쯤은 건성으로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연습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지만, 형섭의 말을 듣고 나니 더럭 두려워지기도 했다. 나는 과연 그에게 맞는 답을 밀어댄 것일까.


지훈은 눈을 감았다. 후회는 하지 않을게요. 나는 형을 믿으니까.






촉박한 날짜 때문에, 연습은 밤늦게야 끝났다. 방 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당장 곯아떨어지듯 잠이 든대도 서너 시간 겨우 자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경연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강행군의 연속일 수 밖에 없는 고된 일정이었다.


자리에 눕기 전, 문득 뭔가가 생각나 지훈은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왔다. 안 자고 어딜 가냐고 묻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핸드폰을 들어 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따끔거리는 눈자위를 비비며, 지훈은 질질 끌리는 걸음으로 연습실 쪽으로 향했다. 아마 아직도 연습하고 있겠지.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보다 더 여유가 없는 그 조라면, 분명 지금까지도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연습실 문 한참 전부터, 안에서 울려오는 쿵쿵대는 비트가 들렸다. 역시나, 이 조는 아직도 연습중이다. 문에 귀를 대었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노래, 바닥에 발을 구르는 소리들, 지친 몸을 추스르려는 듯 억지로 내지르는 기합들, 다른 쪽은 열심이었다면, 이 쪽은 처절했다.


운명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차라리 악을 쓰듯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센터가 바뀌었다지만, 그것 하나로만은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을 지훈은 알았다. 멤버의 반이 중간에 바뀌었다. 연습시간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요 앞 공연 때처럼 춤과 퍼포먼스만 연습해서 될 일도 아니다. 게다가 멤버 중 한 명이, 요즘 방송 외적인 일로 여기저기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뜻만 생각해도 위험요소가 너무도 많은 팀이었다.


물론, 이럴 때 잘하면, 효과는 몇 배나 나겠지만.


“조금만 쉴게요. 한 10분만.”


음악이 멈추고, 뒤로 물러설 틈도 없이 문이 확 열렸다. 놀라 뒤로 물러서는 지훈의 눈에 밖으로 한 발을 디딘 다니엘의 얼굴이 뚜렷이 들어와 박혔다. 열린 문 틈으로 뜨거운 기운이 확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 니 웬일이고?”


슬쩍 뒤를 돌아보고 문을 등진 채, 다니엘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배어나온 땀에 티셔츠가 반쯤은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이마로 배어나온 땀을 훔쳤다. 아직도 감겨 있는 붕대는 여전히 눈에 거슬렸다.


“염탐하러.”

“염탐?”

“안 되나?”


지훈은 웃었다.


“센터 바뀌었다고 소문이 동네방네 났길래.”


다니엘은 문 쪽을 가리켜 보이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지훈은 부지런히 그 뒤를 따라갔다. 합숙소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아직은 찬 새벽바람을 맞고 다니엘은 그제야 커다랗게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지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 자나?”

“자야죠. 형은, 언제 자.”

“지금 잘 정신이 어데 있노.”


다니엘은 웃었다.


“오늘 센터 바뀌고, 학년이 용국이 둘이 춤 바뀐 거 봐줘야 된다. 그것만 갖고도 오늘 밤 새도 모자랄 판인데.”

“센터 용국이 형으로 바뀌었어요?”

“그래 됐다.”

“그냥 형이 하라니까.”


사실은, 다니엘의 센터를 보고 싶었다. 그 노래라면 더더욱, 그에게는 어울리는 자리가 될 것 같았다. 데뷔를 하게 된 후라면 절대로 양보 같은 거 할 마음은 없었으므로, 더더욱.


“야, 내는.”


다니엘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 피식 웃었다.


“사고 쳐서 일로 쫓겨왔다 아이가.”

“그게 왜.”

“사람이 누울 자리 봐가면서 발 뻗어야 된다.”

“그럼 리더는 왜 했어.”

“그거야, 내가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한 거고. 동호 형도 밀어줬고.”


다니엘은 다친 오른손의 붕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담담했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는 이 곡만 잘 마칠 수 있으믄 된다. 다른 거 필요 없고.”


그 말이 진심일 것을, 지훈은 믿었다. 그가 지금껏 봐 온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그래서, 잘 될 거 같아요?”

“모르겠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짧고 담백하게,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잘 해야 안 되겠나. 니도 있고.”


내가, 센터를 바꾸라고 말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다니엘의 그 말이 그런 뜻이라는 것을, 지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잘 했어. 칭찬해.”


지훈은 까치발을 들고, 다니엘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다니엘은 무릎을 숙여, 지훈의 팔이 너무 높이 쳐들리지 않도록 몸을 낮추었다.


“아무튼 착해. 말도 잘 듣고.”

“니 말대로 센터 바꿨는데, 덕분에.”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치떠 자신을 보는 눈은, 웃고 있었지만 동시에 뜨겁기도 했다. 그 눈은 무언가에 불이 붙은 승부사의 눈이었다.


“22만 표는 우리가 묵을 거다. 그거만 알고 있어라.”






+. 이번 편도 특정 연생에 대한 살짝 민감한 언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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