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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7

17. 여보세요 中

중간 점검이 잡혔다. 중간 점검이고는 해도, 작곡자와 안무가까지가 모두 참석한 리허설 급의 중간 점검이었다. 당연 모두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순서는 경연 순서대로였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완성도는 높았다.


지훈의 조는 큰 문제는 없었다. 지훈의 조에는 영리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정도는 잘 구분하는 멤버들로만 짜여 있었다. 그래서 연습에서도 큰 무리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니엘의 조 쪽에서 터졌다. 일곱 명 중 중간에 바뀐 인원이 절반에 가까운 셋, 심지어 그 셋 중에는 센터도 있었다. 문제는 그 센터였다. 시간이 현격이 모자란 탓인지 그는 안무를 잘 따라가지 못했다. 대충만 보기에도 다니엘의 안무와 그의 안무는 갭이 너무 컸다. 포인트가 없다, 눈을 끄는 부분이 없다, 이래 가지고 경연 제대로 하겠느냐는 쓴소리들이 대번 쏟아졌다. 괜히 자기가 더 안타까운 기분에 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준비 잘 하겠습니다 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다니엘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무거웠다.






다섯 팀의 중간 점검을 모두 마치고, 담배 생각이 나는지 다급히 합숙소 건물을 빠져 나가는 다니엘을, 지훈은 허둥지둥 따라갔다. 세운이 어딜 가느냐며 손을 붙잡았지만 나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10분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겨우 하고, 그는 필사적으로 다니엘의 뒤룰 쫓아갔다.


담배를 미쳐 챙겨 나오지 못한 탓인지 그는 그냥 합숙소 벽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에 감긴 붕대가 여전히 신경 쓰였다. 별 거 아니라고 해놓고, 그냥 빨리 나으라고 감은 붕대라고 해놓고 손뼉조차 치기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제 풀에 속이 뒤집혔다. 정말 아닌 척 하면서 사람 신경 쓰이게 하는 데는 뭐 있다니까.


“도대체 어떡하려고 그래요.”

“모르겠다.”


흘끗, 따라 나온 지훈을 쳐다보다가 다니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벽에 뒤통수를 기댔다.


“골 아파 뒤지겠네.”


그의 한숨은 무거웠다.


시간이 없지만 않았더라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여기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예전처럼, 지금은 참았다가 방에 돌아가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 말을 할 기회는 없었다.


“나 진짜 예전부터 궁금한 거 있는데.”


지훈은 조심스레 물었다.


“형은 왜 센터 하려고 안 해요?”

“뭐?”

“아니, 그렇잖아. 그 조에서도, 형이 센터하겠다고 했으면 처음부터 이런 문제 안 생겼을 거잖아. 왜 센터하려고 안 해요?”

“내가 센터하고 싶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나?”

“형이 센터한다 그러는데 누가 자기가 센터한다고 나서, 나서길.”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흘끗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하고서야, 지훈은 자신의 목소리가 쓸데없이 컸음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내는 리더하고 있다 아이가.”

“리더는 센터하면 안 돼?”

“그런 거는 아인데.”

“이렇게 택도 아닌 걸로 서로 빈정 상하면서 시간만 까먹느니, 형이 리더 센터 다 하는 게 훨씬 나아요. 아니야? 형이 정 못하겠으면 동호 형 있잖아요. 그 형한테 하라고 하든지.”

“동호 형은 이번에 파트가 너무 많다. 그거 하면서 센터하는 거 무리다.”

“그럼 뭐 어쩌자고? 그렇게 경연 말아먹을 거야?”


지훈은 왈칵 성을 냈다.


“형이 뭐랬어. 형이랑 나랑 오래 보는 방법은,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같이 데뷔하는 것 뿐이라고, 형이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지훈아.”

“대답해 봐. 형이 그랬어, 안 그랬어?”


지훈은 다니엘의 앞을 막아서 고개를 들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이 이미 지쳐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 줄 수는 없었다. 그것보다 더 간절한 것이 걸려 있기에.


“형 그 때 기억나요? 다 보는 앞에서 나한테 화냈던 거.”


하기 싫으믄 집에 가라. 안 말린다.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 같던 그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그랬다. 내게는 그랬으면서, 왜 남에게는 그러지 못해서 혼자 저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건지를.


“왜 그렇게 못해요?”

“뭐?”

“나한테는 그랬으면서, 왜 학년이한텐 못 그러냐고.”

“임마, 그거는.”

“똑같아.”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때 형이 뭐라고 했어요. 그대로 놔두면, 내가 욕먹을 거 같아서 형이 그냥 총대 메고 나한테 화낸 거랬지.”

“그래.”

“학년이도 똑같아요. 지금 걔 때문에 전체 퍼포먼스가 엉망이 되고 있잖아. 형이 그거 싫은 소리 하기 싫어서 말 아끼면, 그래서 경연 망치면, 그 때 학년이가 얼마나 욕먹을지, 그런 건 생각해 봤어요?”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깜빡이며 지훈을 보는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그는 결국 입을 열지 않고 지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거 학년이 위하는 거 아니야.”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많으면, 잘 가르쳐서 그대로 가는 게 물론 좋지. 그걸 누가 몰라요? 근데 우린 시간이 없다고. 여기서 형이 망설이면 일은 점점 더 커져요. 몰라?”


지훈은 손을 뻗어, 붕대를 감지 않은 다니엘의 왼손을 끌어왔다. 마디가 불거진 그 손가락을 따라 손등을 만졌다. 답답했지만, 조금 더 다정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어떤 것도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런 말 잘 하는 성격 아닌 거 알아. 그렇지만 형이 해야 돼요.”


지훈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게 리더야, 형.”






+. 이번 편에는 특정 연생에 대한 다소 섭섭한 언급이 있습니다. 기분 상하신 분들 게시다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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