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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7

17. 여보세요 上

그렇게 됐다. 다니엘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가 들어가고 싶은 경연곡이 뭐였는지는, 지훈도 대충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할 수 있다면 그 노래를 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상, 자신에게는 다른 노래가 배정될 것을 지훈은 대충 짐작했다. 이왕 그런 거라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체념인지 포기인지 전환인지 알 수 없는 마음 정리를 그는 참 빨리도 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좀 상황이 복잡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한 이런 저런 구설에 휘말린 결과, 그는 자신이 바라던 곡에 들어갈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 두 번이나 모두의 앞에서 사과를 하고, 그는 결원이 나는 곡으로 강제 배정되었다.


“할 만해요?”


이제 같은 방을 쓰지 못하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고된 연습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그래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갖기 힘든 것이었는가 하는 사실을. 조도 다르고, 연습하는 곡도 달라진 지금은, 그저 오며 가며 잠깐, 안부 인사를 나누듯 말 몇 마디 섞는 시간이 고작이었다.


“죽겠다.”


별로 에두르지도 않고, 그는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다니엘은 며칠 전 손을 다쳤다. 뭘 어쩌다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함구한 채로, 그는 손바닥 전체를 감싸도록 붕대를 감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별 거 아니라고만 말했다. 울컥 속이 상하고 화가 났지만 위로한답시고 그 말을 다시 한 번 꺼내 사람의 속을 건드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다니엘을 맞닥뜨릴 때면 저도 모르게 그 손에 감긴 붕대에 눈이 갔다. 저건 도대체 언제쯤이면 풀 수 있으려나. 경연에 문제가 되지는 않으려나. 겟 어글리 공연 때 했던 비보잉 동작 때 손이나 손목에 무리가 간 건 아닌지, 그러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는지, 순식간에 달려버리는 생각을 잠재우느라 지훈은 지그시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서도 리더라며.”

“그래 됐다.”


왜 그런 건 또 불쑥 떠맡아서는.


컨셉트 평가는 여러 가지로 애매한 점이 많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곡을 직접 고르는 것도 아니고, 미지의 사람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무작위로 배분된 곡을 무작위로 배분된 멤버들과 함께 연습하다가, 중간에 치러진 순위발표에서 절반 가까이가 탈락해 버림에 따라 싫든 좋든 멤버 구성이 중간에 변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일정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때때로는 심각하게 그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너거는 좋겠네. 새로 들어온 사람은 없다 아이가.”

“뭐 내보내는 기분도 그리 좋지만은 않아.”


지훈은 다니엘을 바라보며 콧잔등을 찌푸려 보였다.


“문복이 형 내보내 놓고 한동안 분위기 엉망이었어.”


이 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일곱 명만 적어서 내라. 그것이 제작진이 그들에게 요구한 투표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7등을 벗어난 멤버는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이 쓰렸다. 이런 방법 밖에는, 정말 없었던 건가.


“그래도 일곱 명 중에 세 명 바뀐 우리보다야 안 낫겠나.”


말의 내용에 비해 발랄하기까지 한 말투로 다니엘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게 그렇게 말할 일이냐고, 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리더 같은 귀찮은 건 왜 떠맡아 가지고는.”


저도 모르게 뾰족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조엔 인재가 그렇게 없냐.”


다정한 걱정의 말은 아무래도 객쩍어, 또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사람 가리지 않고, 아무하고나 잘 지내는 성격인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다르니까. 그 조에 배정을 받은 것과 페널티를 받아 밀려간 것과는 분명히 이야기가 다르다. 전에 없이 침울하던 요 며칠간의 다니엘을 떠올리면 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그림일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다니엘에게 일어났을 그 일련의 일들이, 지훈은 못견디게 속이 상했다.


“그라믄 니가 대신 와서 리더 할래.”

“내가 왜.”


지훈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와. 니도 어차피 센터도 아이다 아이가.”

“센터 아니면 막 빼가도 되나? 그리고, 나보고 그 힘든 걸 하라고?”

“맞나.”


쳐다보며 웃는 눈은 여전했다.


“맞다. 이런 거를, 우째 니를 시키겠노.”


다니엘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팀 웨어인 검정 티셔츠는 그에게 잘 어울렸다. 문득 이번 경연 의상이 어떤 것일지 모르겠지만 올블랙 슈트 같은 거 입으면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슬쩍 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랜 어때요.”


지훈은 지나가듯 물었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흘끗 돌아보는 얼굴에 슬쩍 미소가 도는 것을 보고서야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요새 연습한다고 맨날 듣는데.”


다니엘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커다란 비밀이라도 말해주듯 속삭였다.


“우리 노래가 제일 좋다.”

“뭐래.”

“진짜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엄숙해서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동호 형 목소리 진짜 직인다.”


참 빨리, 쉽게도 감탄하는 사람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누구는 노래를 잘하고, 누구는 랩이 쩔고, 춤이 죽인다고, 그는 매번 열에 들떠 열렬하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저기,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랩 쩔고 춤 죽이시거든요. 그렇게 말할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새삼 민망해 입을 다물어버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


“춤만 좀 잘 되믄, 동호 형이 워낙 노래가 되니까, 진짜 다 직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별 걱정을 다 해, 암튼.”


이미 몇 번이나, 입 속에 맴도는 착한 말들을 풍선껌을 씹듯 꼭꼭 씹어 하늘로 불어 날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번 한 번쯤은, 솔직히 말해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었다.


“춤이야, 형 있잖아. 뭐가 걱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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