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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5

15. 너 아니면 안돼 中

순간, 그 눈빛이 흔들렸다. 잘못 디딘 얼음처럼, 아주 단단한 무언가에 맞은 거울처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산산이 금이 갔다.


억지로 뭔가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그 마음은 알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지훈은 피하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다니엘의 시선을 마주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다시는 이런 말을 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나쁜 새끼.”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웃음에 끝이 뭉개졌다.


“그래 말하믄, 내가 아무 것도 못할 거라는 거 알고 그라제, 니 지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의표를 찔려서. 대놓고 자자는 말을 해도 밀어내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굴복시킬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것 뿐이었다.


나한테 져 줘요, 라는.


“할 수 없잖아.”


지훈은 웃었다.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해도 씹는데.”

“그거 기억하고 있나.”

“내가 한 말인데 기억 못할까봐?”

“술 취했었다 아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니엘은 어깨를 잡은 지훈의 손을 잡아쥐고 그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손바닥 가운데를 간질이는 혀 끝의 느낌이 야릇했다.


“아무리 취했어도 마음에 없는 말은 안 해.”


그러니까,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순위를 핑계삼은 그 농담 같은 말이 오가기도 한참 전부터

나 또한, 당신에게 반해 있었던 건지도.


“그래.”


다니엘은 담백하게 말했다.


“자자.”






이 합숙소에는 원래 백여명 가까운 인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고, 지금은 쓰는 사람이 없는 방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먼저 지훈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다니엘은 문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등 뒤로 팔을 돌려 문을 잠갔다. 달칵 하고 걸음쇠가 걸리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깊고 짙은 침묵이 흘렀다.


그 언젠가 그랬듯, 다니엘은 손가락을 까딱거려 지훈을 불렀다. 뭔가에 홀리듯 앞으로 다가서자, 다니엘은 지훈의 두 뺨을 커다란 두 손으로 감싸고 그 입술에 키스를 했다. 달아오르기 시작한 뺨으로 타인의 호흡이 끼쳤다. 입술이 벌어진 틈으로 혀가 밀고 들어와 입 속을 건드렸다. 저도 모르게 다니엘의 팔을 잡았다. 힘이 들어가 딱딱하게 굳어진 팔을 억지로 붙들고 매달렸다.


가슴이 들먹거리고 있었다. 그게 누구의 박동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목덜미에 입술이 닿는 느낌이 났다. 저도 모르게 턱이 들렸다. 핥았다가 깨물었다가 잘근잘근 물어 씹었다. 목뒷덜미를 타고 등줄기까지 온통 소름이 올랐다. 금방이라도 비명소리 비슷한 신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아 지훈은 억지로 입술을 깨물었다.


티셔츠를 들춘 손이 허리를 건드렸다. 단지 그것 뿐인데 이미 숨이 막혔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틀었다. 다니엘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지훈은 억지로 거리를 벌리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뺨이 시시각각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워지다 못해 끓어오른 피가 온 몸을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무섭나.”


귀 바로 앞에서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런데.”


커다란 손이 가만히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무서워도, 늦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다니엘은 지훈의 허리로 팔을 둘러 껴안더니 별로 어렵지도 않게 지훈의 몸을 들어올렸다. 뭐하는 거냐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다니엘은 비어있는 침대 한 곳에 지훈의 몸을 가볍게 팽개치듯 내려놓았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내던져진 몸이 한 번 출렁거리기도 전에, 다니엘은 서두르지도 않고 지훈의 몸을 타고 올라 그를 내려다보았다.


“니가 비켜 달라 하믄 비켜준다 했제, 내가.”


다니엘은 몸을 숙여 지훈의 가슴 위로 엎드렸다. 그 무게감에 숨이 턱 막혔다. 가슴팍을 짓누르는 그 체중은 그 자체만으로도 묘한 쾌감이었다. 저도 모르게 숨이 가빠져 지훈은 입술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다니엘은 손을 뻗어 가만히 그런 지훈의 입술을 건드렸다. 등을 대고 누운 허리 언저리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니가 져 달라 하믄, 져 주야지.”


그 말을 끝으로, 다니엘은 다시 지훈에게 키스했다.


아까와는 조금은 다른 키스였다. 거칠었고, 성급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거칠게 혀를 끌어당겼다. 숨이 막혀서 저도 모르게 어깨를 밀어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정하게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깨물고 귓불을 핥았다. 저도 모르게 허리가 튀었다. 순식간에 눈 앞이 새까맣게 죽었다.


몸부림을 치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자, 다니엘은 드러난 지훈의 목줄기에 입술을 대고 핥았다. 벌어진 입술에서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새어나오자 달콤한 디저트를 한 입 깨물 듯 그 목덜미를 지그시 깨물었다. 아앗. 저도 모르게 비명 같은 신음을 흘리고, 지훈은 깜짝 놀라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하지 마라.”


지훈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얼굴을 파묻은 채 다니엘은 말했다.


“그러는 거 아니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무서워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 안 떼나.”


옷 속으로 들어온 손 끝이 온 몸을 구석구석 쓸었다. 순간 온 몸이 차디차게 굳어졌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노곤하게 풀어졌다. 목이 마른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타는 것 같기도 했다.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피가 마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애가 탔다. 간절했다. 그냥, 그게 이 순간 지훈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손 안 떼면.”


다니엘은 눈을 들어 지훈을 바라보았다.


“입 틀어막아봤자 소용없다는 거 가르쳐 줄 건데, 괜찮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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