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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3

13. 나야, 나 上

알람이 울렸다. 아직은 기상시간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이 깨기 전에 얼른 알람을 끄고 일어나야 했다.


요즘 지훈은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먼저 연습을 시작했다.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이 연습으로밖에 돌파할 수 없는 고민이어서. 그 고민이란 다른 게 아니었다. 같은 조 멤버들의 춤에 비해, 자신의 춤이 어딘가 어린애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성우, 다니엘, 사무엘, 우진까지. 자신과 제일 비슷한 타입이라고 생각한 형섭조차도 자신보다는 춤선이 멋있었다. 그 틈바귀에 섞여 춤을 추다 보면 자신만 어린애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지훈은 그게 싫었다.


연습실로 나와 다른 멤버들을 촬영한 영상을 한 번식 돌려보았다. 다니엘 것은 따로 두 번을 더 봤다. 지훈은 거칠고 강한 춤선에 대한 일종의 로망이 있는 편이었다. 다니엘에 대해서도, 그 첫 번째 인상이 ‘춤 멋있게 추는 형’이었을 정도로.


막무가내로 음악을 틀어놓고 지훈은 혼자 춤을 시작했다. 다니엘의 파트였다. 그의 춤선, 그의 느낌이 탐났다. 뭘 어떻게 하면 그런 느낌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러나 거울로 보는 자신의 춤은 여전히 어딘가 심심했다. 단순히 자신이 다니엘보다 키가 작은 것이 문제인 게 아닌 것 같았다.


“거서는 그래 하믄 안 되고.”


언제 나온 건지, 등 뒤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어슬렁 어슬렁 옆으로 와 서더니 허리를 틀어 몇 번 스트레칭을 하고 동작을 잡았다.


“손을 끝까지 밀어라. 쓰윽 문댄다, 그런 기분으로.”


그다지 힘을 들여 추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쭉 뻗은 팔에서 손등, 손가락 끝까지 늘어지는 그 춤선은 거칠면서도 섬세했고, 힘이 넘쳤다. 2분 남짓한 짧은 춤은, 참 빨리도 끝이 났다.


“니는 니 꺼는 다 하고 남의 거 따라 하나.”


다니엘은 웃으며 물었다. 왠지들키면 안 되는 걸 들킨 것 같아 지훈은 물을 마시는 척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멍든 데는 괜찮아요?”

“아프다. 아직도.”


다니엘은 멍이 든 명치 언저리를 부여잡고 엄살스레 아픈 척을 했다.


“하기야 죽으라고 때렸는데 이 정도믄 약과지.”

“경연 때까지 안 낫는 거 아니에요?”

“그 때까지도 안 나으믄 약이라도 빨고 무대해야지.”


언제나처럼 그는 심각한 말을 하면서도 전혀 심각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와. 니 파트 마음에 안 드나.”

“아니요.”

“그런데 와 며칠째 새벽 댓바람부터 나와가 남의 파트 추고 있는데.”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건가. 나름 몰래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하기야 다니엘이 자신에 대해 뭐든 다 알고 있는 건, 오늘 이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형 있잖아.”


지훈은 짜증스레 콧잔등을 찌푸렸다.


“나 내 춤이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떡하죠?”


그 말을 듣고, 다니엘은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돌려 한동안 묵묵히 지훈을 쳐다볼 뿐이었다.


“별 희한한 소리 다 듣겠네.”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와. 니 춤이 와 마음에 안 드는데.”

“멋이 없어.”

“멋이 없다? 그라믄, 누가 추는 거는 멋있는데? 성우 형? 무엘이?”

“아니.”


지훈은 고개를 들고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형.”

“내?”

“응.”


순간 다니엘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잠시 시선을 피하는 것이, 민망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는 눈 있는 거는 좋은데.”


기껏 진지하게 입을 떼는가 싶더니 기어이 풉 하고 웃어버렸다. 지훈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농담 아닌데. 이번 거 춤 보면 그래요. 다 멋있는데, 나만 애 같아. 그게 싫어. 짜증나고.”

“내는 찬성 못하겠는데.”

“형은 콩깍지 꼈으니까 못 믿고.”

“그라는 니는 콩깍지 끼서 내 춤 멋있다 하는 거는 아이가?”


웃으면서 묻는데, 웃으면서 대답할 질문은 아니어서 지훈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마 아닐 걸.”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내가 먼저 형 좋아한다고 했을지도 몰라요. 이번에 춤추는 거 봤으면.”


그 말끝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순간 연습실 안에는 짧고 짙은 침묵이 흘렀다.


“맞나. 아깝네.”


장난스레 대꾸하며 웃고는 있었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심각했다. 평소의 잘 웃고 잘 떠들던 다니엘이 아니었다. 춤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간만에 몸이나 좀 풀까.”


다니엘은 몸을 일으켜 음악을 틀었다. 귀에 익은 그 전주가 나오는 순간, 지훈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걸 왜 틀어요, 지겨워 죽겠구만.”

“오랜만이다 아이가.”


질리다 못해서, 이젠 꿈에 들을까 무서운 노래. 그래도 그 리듬에 몸이 이끌려가는 건,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기에 모든 걸 걸었기 때문에.


너를 보던 그 순간

시선 고정 너에게

눈부셔 Shining Shining

제발 내 맘을 Pick me Pick me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등급 평가 할 때보다 더 열심히 곡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뭐든지 첫 정이 무섭듯, 이 곳에 와서 몸에 익힌 다른 그 어떤 안무들보다 몸 곳곳에, 신경의 마디마디에 절어들 듯 배어있는 곡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 기억된 그 춤은 그 후로도 꽤나 많은 일이 벌어진 지금도 여전히 몸 속 어느 한 구석에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보기보다는 힘든 춤이었고, 한 곡을 다 추고 나니 온 몸으로 땀이 질펀하게 배어 올랐다.


“잘 춘다.”


다니엘은 지훈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지훈아. 니가 생각하는 멋있는 춤이라 카는 거는 어떤 건데.”

“그거야 뭐.”

“내는 있다 아이가.”


다니엘은 물병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시고, 웅얼거리며 말했다.


“이거 출 때 니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었거든.”

“사람 놀려요?”


지훈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


“멋있기는 뭐가. 방금도 형이 춘 게 훨씬 간지났는데.”

“아이기는 머가 아인데. 사람 보는 눈 다 똑같다. 내가 니보다 잘 췄으믄 내가 1등 했겠지.”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지훈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멋있는 춤이라는 건 뭐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기 자신조차 아직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내가 말주변도 없고 해가, 설명은 잘 못하는데.”


나름 말을 고르는 듯, 다니엘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다른 말 필요 없고 있제, 니가 방송 나가고 몇 주간이나 1등한 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기다.”

“...”

“사람이 참 웃기는 거는, 보통 지가 못하는 거를 하고 싶어 하고, 욕심내고, 머 그렇더라. 니는 니 춤이 깔끔하고 이쁘니까, 내같이 좀 딱딱 안 끊어지고 털털하고 지멋대로고 이래 춤추는 기 좋아 보이는 거겠지. 머가 더 낫고 못하고, 그런 거 없다.”


정말, 그런 걸까.

그래도 얼른 수긍을 하지 못하고, 지훈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정우성이 조인성한테 얼굴 칭찬하면서 나는 와 이래 못 생깄으까 생각한다고, 머 그런 이야기 들으믄 어떤 생각이 들겠노. 지랄한다 안 싶겠나.”

“그렇죠.”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니 지금 한 이 이야기 내 앞이니까 하지, 딴 데 가서는 하지 마라. 내야 니가 멀 해도 이쁘지만은, 안 그런 사람들은 좋은 소리 안할 거 같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말이기도 했고, 비슷한 말은 여기 오기 전 기획사에서도 수태 들었다. 사람의 춤선이라는 건 다 제각각의 특색이 있고, 그걸 고치기보다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팁이라고까지 할 거는 없는데, 꼼수 하나 가르쳐주께.”


다니엘은 팔을 뻗어서 손을 쫙 폈다.


“손 잘 쓰는 거 의외로 잘 먹힌다.”

“손이요?”

“춤'선'이다 아이가. 춤점이나 춤면이 아이고.”


다니엘은 팔을 뻗어서 손목을 살짝 꺾어 스냅을 주고, 손가락을 쭉 폈다.


“춤출 때 보통 선이 끊기는 기 손 끝에서 끊긴다. 맞제.”

“네.”

“그러니까 손 처리를 우째 하는가, 그거에 따라가 전체적인 모양이 좀 마이 틀리지거든. 랩퍼들 보믄 딱히 빡세게 춤 안 추는데, 손동작 좀씩 하는 거 어째 하는가에 따라서 분위기 많이 틀리지는 거 알제.”

“그렇죠.”

“그런 거다.”


춤 이야기를 시작한 다니엘은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진지했다. 이런 사람이었다 싶을 정도로.


“니 방탄 좋아한다 했제.”

“네.”

“피 땀 눈물 안무 중에 손으로 어깨 터는 안무 있제.”

“네.”

“그거만 해도, 손 살짝 뒤집어가 손가락 바깥쪽으로 터는 거 하고, 그냥 곧이곧대로 손가락 안쪽으로 터는 거 하고, 손 날로 미는 거 하고, 손바닥으로 문대는 거 하고, 해 보믄 다 춤선도 틀리고 느낌도 틀리다. 안무가 그런 디테일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안 그런 경우도 많고, 그럴 때는 니가 알아서 찾아야 된다. 알겠나.”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손 끝이라.


“손을 잡아도.”


다니엘은 생각에 잠긴 지훈의 손을 잡아채었다.


“이래 잡는 거 하고.”


그러고는 보통 잡는 것처럼 손을 잡았다가.


“이래 잡는 거 하고.”


살짝 깍지를 껴서 잡았다가.


“이래 잡는 거가.”


손끝만을 살짝 붙들고, 손등에 살짝 빨듯이 키스를 했다.


“다 다른 거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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