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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2

12. Love Me Do

경연평가는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오늘 지훈은 유독 컨디션이 좋았다. 어제와는 너무 딴판이어서, 텐션 좀 죽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는 말에, 지훈은 대답 대신 그저 싱긋 웃었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다니엘이었다. 박자가 안 맞다거나 동선이 꼬인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는데, 어딘가 동작도 작고 디테일도 빠지고 설렁설렁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눈에 띄게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더러더러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자 다니엘은 옷 좀 갈아입고 온다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돌아갔다. 평소의 반절도 안 되게 대충 연습해놓고 무슨 땀이 그렇게나 나서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는 건지. 이래저래 신경이 쓰여, 지훈은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살짝 그 뒤를 따라 방으로 갔다.


문을 가만히 열고 들어가자 어딘가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고 살펴보자, 다니엘은 티셔츠를 벗고 뭔가를 바르고 있었다. 역시나, 어딘가 이상한 거였다. 그러니까 춤이 그 모양이었던 것이고.


“뭐해요?”

“놀래라.”


다니엘은 홱 뒤를 돌아보더니 늘어놓은 것들을 이불 속으로 대충 밀어넣었다.


“니도 옷 갈아입으러 왔나.”

“아니.”


지훈은 무표정하게 다니엘글 가리켰다.


“형 따라 왔는데.”

“내를 와 따라오는데.”

“오늘 연습 내내 이상해서. 어디 아파요?”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데. 딱 보면...”


말을 하려다 말고 지훈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매끈한 목덜미 아래부터 명치 조금 위까지, 심하지는 않으나마 군데군데 얼룩덜룩한 멍이 들어 있었다. 살이 별로 없는 부위여서일까. 멍자국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게 다 뭐예요?”

“뭐가.”

“멍들었잖아요.”

“멍이 대수가. 마 좀 뜨끔하다. 그래서 약 바르고 있다 아이가.”


지훈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하필이면 저기 왜 멍이 들었을까.


“나 때문이구나.”


다니엘은 이번에도 아니라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것으로, 게임은 끝난 거였다. 어제 그 실랑이를 하면서 때린 것이, 저렇게 흔적을 남긴 게 틀림없었다. 나름 있는 힘껏, 진짜 전심전력으로 때렸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하루 자고 나면 괜찮겠지 뭐.”

“많이 안 아파요?”

“숨 크게 쉬면 좀 뻐근하다.”


숨을 크게 쉬어도 뻐근할 정도면 팔을 들거나 그 팔로 몸을 지탱하는 동작을 하는 건 당연히 무리겠지. 지훈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줘 봐요.”


조금은 풀 죽은 목소리로 지훈은 말했다.


“약이라도 발라주게.”

“됐다. 내 알아서 한다.”

“잘 안보이잖아요.”


다니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염연고를 건네주었다. 윙은 연고를 받아서 멍이 든 명치 윗쪽에 조심스럽게 발랐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멍이 든 부위가 꽤 넓었다.


“멍 심하게 들었다.”

“맞나.”

“그러게 누가 그렇게 사람 속 상하게 하래.”


속이 상했다. 이게 자기가 저지른 짓이다 생각하니 더더욱.


“멍 여기만 든 거 맞아요?”

“때린 니가 알지 맞은 내가 알겠나.”


어제 워낙 경황이 없이 막 때려서, 어디 또 맞은 데는 없나 몸 곳곳을 훑어보았다. 안무 때문에 복근을 노출해야 해서, 다니엘은 요즘 안무 연습 외에도 짬을 내어 따로 웨이트를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깨가 넓고 흉곽이 실한 다니엘의 몸은 그 때문인지 훨씬 더 남자답게 보였다.


“형.”


지훈은 손가락 끝에 묻은 연고를 아무렇게나 옷에 문질러 닦았다.


“나 형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그 말은 조그마한 파장을 몰고 왔다.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머쓱하게 서로 쳐다만 보다가, 그래도 먼저 웃은 것은 다니엘이었다.


“만질 거나 있나. 니 몸이나 내 몸이나.”

“그래도.”

“맘대로 해라. 어차피 니 꺼 아이가.”


그 말은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을 기묘하게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지훈은 손바닥으로 다니엘의 벗은 상체를 쓸어보았다. 목덜미에서 시작해서 어깨, 쇄골, 등줄기까지. 살결 아래로 희미한 맥이 느껴졌다. 호흡의 징후와, 박동하는 맥과, 가만히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이 낯설고 생경했다.


흐릿하게 근육이 잡힌 배를 더듬어보다가, 지훈은 불쑥 입을 열었다.


“형.”

“와.”

“나 기분이 좀 이상해.”


침을 꿀꺽 삼키고, 지훈은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나만 그래요?”


다니엘은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을 내밀어 지훈의 뺨을 만졌다. 가만히 대고만 있다가, 엄지손가락으로 여린 뺨을 쓸었다. 눈자위 밑, 콧날 옆, 인중까지를 가만히 쓸다가 소리 없이 입술을 건드렸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그 손끝을 핥았다. 처음엔 그냥 핥다가, 입 속으로 들어온 손가락을 깨물고 빨았다. 그걸 보던 다니엘이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키스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마도 처음이었다.


“키스해 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니엘은 몸을 앞으로 숙여 지훈에게 키스했다. 방금 바른 소염 연고의 톡 쏘는 냄새가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다. 입술을 밀고 들어온 혀가 입 속을 차근차근 더듬었다. 온 몸이 움츠려드는 것 같기도 하고 노곤하게 늘어지기도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다니엘의 명치를 더듬었다. 조금 전 바른 연고의 끈적한 기가 기껏 닦은 손 끝으로 다시 묻어났다. 손끝으로 가슴을 훑자 다니엘은 입 속으로 들어온 지훈의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뭐하노.”

“내 맘대로 해보려고. 내 거니까.”


지훈은 다니엘의 턱에 뺨을 부볐다. 귓볼을 혀 끝으로 톡톡 건드리다가 가만히 핥았다. 움찔 어깨가 굳어지는 것은, 자신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걸까. 주인에게 달려드는 작은 동물처럼 지훈은 다니엘에게로 몸을 붙이고 뻗어있는 목덜미를 따라 차근차근 입을 맞추고 핥았다. 어깨가, 가슴이 들먹거리는 걸 지켜보는 게 좋았다. 가만히 턱이 들리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이 좋았다. 나를 원하는 그를 보는 것이, 좋았다.


다니엘은 달려드는 지훈을 받아주며 몸을 조금 뒤로 젖혔다. 그러다가 몸이 완전히 기울어진 지훈을 꽉 끌어안고 뒤로 누웠다. 그 바람에 지훈은 다니엘의 품속에 떨어져 속절없이 폭 싸여 안겼다. 다니엘은 능숙하게 옆으로 몸을 틀고는 다리를 들어 지훈의 허벅지를 휘어감았다. 그렇게 지훈은 어느새 다니엘의 품속에 들어가 갇히고 말았다.


“보채네.”


서울말하고는 다르게 끝이 묘하게 뚝 떨어지는 부산 사투리는 이렇게 미묘하게 얽히기 전부터도 가끔 묘하게 섹시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이거 우짜꼬. 풍선맨치로 꽉 껴안아가 터뜨리까.”

“퍽이나. 숨만 쉬어도 아프다면서.”


대답 대신 다니엘은 윙을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정말로 숨이 막혀 죽을 듯이 몸이 졸려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기를 쓰고 어깨를 밀어내며 버둥거렸다. 다니엘은 그런 그를 보고 웃었다.


“모르제.”


다니엘은 품에 들어온 지훈의 이마를 헤치고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내도 니 고프다.”

“별로 안 그런 거 같은데.”

“성질대로 할 거 같으믄 어데다 가둬놓고 내만 보게 했으믄 좋겠다.”


다니엘이 딱히 말을 잘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끔 그의 말들은 가슴 한 구석을 파고들어 가장 약한 곳을 간지럽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처럼.


“지훈아.”

“응.”

“내 니 억수로 마이 좋아한다.”

“...”

“니가 그 말 듣고 저만치 도망 안 가는 거, 내는 그거로 만족한다. 그러니까, 너무 서둘지 마라.”


다니엘은 품에 파묻힌 지훈의 턱을 잡아들고 그 입술에 길게, 깊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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