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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1

11. Boy in Luv

이렇게나 연습에 집중이 힘든 건, 어젯밤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일까.


자꾸만 동작을 틀리고, 박자를 놓치고, 춤선이 흐트러졌다. 컨디션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음이 엉뚱한 데 가 있어서였다. 연습실 거울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보고 있었다. 어젯밤의 키스, 주고받은 말들, 가슴을 짓눌러오던 사람의 무게감, 끌어안던 품의 느낌, 귓전에 속삭이던 목소리 같은 것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서.


그리고, 내는 니 꺼다 하던 그 말까지.


온통 이런 것들이 가득 차서 주체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이제는 동선이 꼬였다. 순식간에 좌우를 헷갈려, 물러나던 형섭과 어깨를 부딪쳤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지훈은 그만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좀 쉬죠.”


착 가라앉은 다니엘의 목소리. 누군가가 음악을 껐다.


“오늘 지훈이 컨디션이 안 좋네. 발목 계속 안 좋은 거 아니냐.”

“아뇨, 그런 거는 아니고.”

“그러고 보니 안색도 안 좋고. 어제 잠 설쳤어?”

“아, 네, 좀.”

“잠 설치면 안 되지. 억지로라도 잘 자야 연습 버티지.”


거기까지는 그래도, 같은 조원을 걱정하는 훈훈한 분위기였다. 머쓱해 뒤통수를 긁으면서도 정신 좀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분명 그때까지는 했었다.


“어이, 박지후이.”


다니엘의 목소리가 낮고 둔탁하게 지훈의 귓전을 때렸다. 그 목소리가 전에 없이 싸늘하게 들린 것은 지훈에게만은 아니었던지, 바닥에 앉아 종아리를 주무르거나 물을 마시고 있던 조원들 대부분이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니는 새끼야, 정신을 어데다 팔고 있노, 지금.”


다니엘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투리로 말을 건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그것만도 당황스러웠는데, 저렇게 차가운 말투인 것도 처음이어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온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야, 왜 그래.”


성우가 가만히 손을 뻗어 다니엘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살짝 팔을 들어 그 손을 뿌리쳤다. 이 합숙소 안에 있는 수십 명의 연습생 중 다니엘과 가장 친한 성우였다. 그의 손을 뿌리치는 것은, 적어도 지훈이 알기로는 처음이었다.


“니 여 처놀라고 왔나.”


묵직하게 쏘아붙이는 말투는 차가웠다. 놀라울 만큼.


“대답 안하나.”


부산 사투리는, 어딘가 재미있는 말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이제 알겠다. 날이 선 다니엘의 말투는 싸늘했고, 서러웠다.


“아가리 처붙었나.”


너무 싸늘해서 대꾸할 엄두도 안 나는 목소리.


“와. 1등 몇 번 하다가 미끄러지고 나니까, 만사 귀찮나.”

“그런 거 아닌데요.”

“그래 죽상 쓰고 있으믄 사람들이 알아서 다시 니 1등 시키준다드나.”

“에이, 왜 그래.”

“말 심하다.”

“그만 해요, 그만.”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던 조원들이 하나 둘 달려들어 다니엘을 말렸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말들을 못 들은 척, 한 마디를 더 했다.


“하기 싫으믄 집에 가라. 안 말린다.”


순간 연습실 안 분위기는 한여름의 낮처럼 조용해졌다. 애써 웃는 얼굴로 다니엘을 말리던 사람들은 모두가 짠 듯이 입을 다물었다. 연습실 안 공기는 건드리면 깨질 듯이 팽팽하게 몰렸다.


“세수 좀 하고 올게요.”


한참 입술을 깨물다가, 지훈은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듯 연습실을 나갔다.






세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실한 건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섭섭하고 서운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다. 내 거라며. 잘하겠다며. 이게 잘하는 거야? 내가 왜, 누구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데. 생각도 없던 사람 마음 비집고 들어서 잔뜩 헷갈리게 만들어놓고.


그래놓고

형이 잘하겠대.


실컷 세수를 하고 나면 눈이 붉어져 있고, 다시 세수를 하면 또 눈이 붉어져 있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두 번 세 번 세수를 하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억지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그런 기대를 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으면 모르는 척 따라와서 붙잡아 주지 않을까. 미안하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잘못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어젯밤 그 계단에서처럼, 꼭 안아주지 않을까.


“지훈아, 괜찮냐?”


그러나 등 뒤에서 들리는 것은 성우의 목소리였다.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는 세면대에 붙어선 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몸 많이 안 좋으면 하루 쉬어. 다니엘한테는 내가 대신 말해줄게.”


성우는 흘끗 뒤를 돌아 연습실 쪽을 바라보았다.


“아, 짜식이. 답지 않게 까칠을 떨고.”

“아니에요 형. 죄송해요. 어제 잠을 좀 못자서 컨디션이 좀 안 좋네요.”

“어디 안 좋냐? 잠을 못 잔다니.”

“아니요 뭐.. 스트레스 받으니까요. 아무래도요.”


그렇지. 그래. 그래.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성우는 지훈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좋게 좋게 말하면 될 걸 왜 버럭질을 처하고 그래. 리더라는 게.”






서운하다기보다는 화가 났으므로, 남은 오후 연습은 별 탈 없이 끝났다.


한 번 망가진 분위기 좀 살려보자는 듯, 다른 조원들은 열심히 농담하고 오버했다. 제일 심한 것은 성우였고, 평소 그가 하는 썰렁한 농담에 들은 척도 안하던 다른 조원들이 누가 봐도 오버다 싶을 만큼 크게 웃었다. 그렇게 억지로 갈등은 봉합되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다니엘과 지훈은 여전히 냉랭했다. 거울 너머라도 눈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방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니엘은 지훈이 있는 쪽으로는 실수로라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런 그를 보고만 있어도 상처받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지훈 역시도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어 빈정이 상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혹시나 누구라도 말을 걸까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잔뜩 올린 후 제일 시끄럽고 정신 없는 곡들로만 채운 플레이리스트를 돌렸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 건드리지 마요, 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그 플레이리스트는 지훈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의 가장 시끄러운 곡들만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언젠가 데뷔하면, 가수가 되면, 저런 무대에서 저런 노래를 부르며 저런 춤을 추겠지 생각해 왔던 꿈의 결정 같은 곡들이었다. 눈을 꼭 감고 억지로 노래에 집중했다. 그 중에는 조별 경연 때 커버했던 곡들도 많이 들어있었다. 꼭 자신이 직접 수행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연습하는 걸 보면서 어깨 너머 익혔던 안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익숙한 것을 떠올리는 것은 가장 빨리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꽉 잡아 날 덮치기 전에

내 맘이 널 놓치기 전에

say what you want

say what you want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노래의 이 부분을 듣다가 울컥 눈물이 고이는 날이 있을 줄은.


딱히 가사가 좋은 곡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때문에, 너무나 직설적인 그 가사가 가슴을 때렸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지금 지훈에게 가장 절실한 말은 결국 그거였다.

형이 진짜로 원하는 건 도대체 뭐예요. 왜 내 맘을 흔들어요. 왜. 왜.


한번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음악을 끄고 이어폰을 빼 던진 후 급하게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 가냐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체 했다.


숨이 막혔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디로든 도망쳐야 했다. 그 뿐이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나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제 다니엘이 담배를 피우고 있던 건물 바깥 계단참이었다. 지훈은 바닥에 주저앉아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멀지도 않은 꼭 하루 전의 일이었다. 그 때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계단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면서 지훈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울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딱히 무슨 생각을 하지도 않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 속이 한없이 복잡한 듯도 했고, 정 반대로 아무 생각이 없는 듯도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가 아프도록.


“머하노, 여서.”


등 뒤에서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알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어제 잠도 설칬다믄서.”


다행이었다. 울고 있었던 게 아니어서.


쿨하게 쳐다보고 싶었다. 화도 안 내고, 차분하게, 어른스럽게, 아무 일도 아니에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지훈은 입술을 깨물고, 눈을 커다랗게 치뜨고 다니엘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무슨 상관인데요. 연습 시간도 아닌데.”

“와. 연습 시간 아니믄 말도 시키믄 안 되나.”

“말은 왜 시키려고요. 1등하다 미끄러졌다고 정신줄 놓은 새끼한테.”


애새끼 말하는 꼴 좀 봐. 이미 스스로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밖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니 임마, 말하는 꼬라지가.”

“아 짜증나. 왜 여기까지 따라 나와서 꼰대질이야.”


들으라고, 일부러 그렇게 말해버렸다. 지훈은 벌떡 일어나서 다니엘 앞을 스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지훈을 붙들어 품에 가두어 껴안았다. 어제처럼.


“어데 갈라고, 또.”

“놔요.”

“지훈아.”

“씨발 놓으라고.”


내가, 만만해?


지훈은 주먹을 쥐고 다니엘의 가슴을 때렸다. 장난 같은 게 아니었다. 싸움이라도 하듯, 주먹다짐이라도 하듯,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때렸다. 아프라고. 내가 아팠던 만큼, 당신도 아파보라는 기분으로.


“놔요.”

“싫다.”

“빨리 안 놔?”

“니 분 풀릴 때까지 때리라.”


껴안은 팔을 풀지도 않았고 몸을 뒤틀어 피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지훈이 때리는 것을 때리는 대로 다 맞으면서 다니엘은 그렇게 말했다.


“내 말은, 그 다음에 하께.”


때리라면 못 때릴 줄 알고.


그렇게 몇 대를 때렸을까. 손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한참을 때리다가, 제풀에 힘이 빠져 지훈은 팔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렇게나 힘을 줘서 때렸으니 분명 아플 텐데, 다니엘은 입술을 꽉 깨물고 때리는 걸 피하지도 않고 막지도 않고 고스란히 다 맞고 있었다.


“다 때맀나.”


지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덜 때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조차도 선뜻 나오지 않아, 그저 한없이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새끼 손 맵네.”


흘겨보듯 쳐다보았다. 티셔츠 목둘레 너머로, 맞아서 벌겋게 달아오른 목덜미가 보였다.


“지훈아.”

“왜요.”

“우리 팀 사람들 등수 다 아나.”

“대충.”

“내가 전에, 그런 말 한 적 있제. 여는 열심히 하는 거 필요 없고, 잘해야 되는 바닥이라고.”


다니엘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기 딴 사람들 이야기가 아이고, 딱 우리 조 얘기다. 지금 다 예민하다. 여기 뭐 여유 있는 사람 없는데, 우리 조는 특히 심하다. 모르겠드나.”

“...”

“여 있는 사람들뿐만 아이고, 방송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것들 얼마나 잘하는가 보자, 벼르고 있다 이 말이다. 그런데 임마, 니가 그래 넋을 놓고 있으믄 우짜노.”


새삼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런 거면, 그냥 그렇게, 좋게 말하면 되잖아.


“니 어제 못 잔거, 그래가 몸 안 좋은 거, 마음 복잡한 거, 내가 모르겠나.”

“근데 왜 그랬는데.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잖아.”

“임마, 그라믄.”


바라보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하기 힘든 말을 하려는 것처럼.


“내가 거서 가만히 있으믄 다른 사람들이 니보고 머라 할 거 아이가.”


커다란 손이 조용히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내는 그 꼴 못 본다.”


힘이 쭉 빠졌다. 허탈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인정하긴 싫지만 다행이다 싶기도 해서. 이유가 그런 거라면.


“뭐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큰둥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고작 그게 이유예요?”


다행이었다. 정말로 싫어지거나, 미워진 게 아니라서. 그런데 꼭 그만큼이나 섭섭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 말을 한 건가 싶어서. 그것도 사실이었다.


“어른 별 거 아니네.”


이럴 거면서, 좋아한다는 말은 왜 했는데.

이럴 거면서, 웃는 게 제일 예쁘다는 말은 왜 했는데.


“겨우 그딴 게 이유라니.”


순간 다시 한 번 서러워져서 지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날 거 같아서.


“우나.”

“안 울어. 울긴 누가 운대.”


이를 갈 듯이, 물어뜯듯이 대꾸해 주고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힘들었다. 울면 지는 건데. 이미 징징거릴 만큼 충분히 징징거렸는데. 여기서 울기까지 하면-

그러나 결국 눈물이 한 방울, 속눈썹 위로 배어나왔다.


큰일 났다.


“이쁜 입술 깨물지 말라 했제.”


지훈은 고개를 처박았다. 고개를 처박은 채로, 그래도 아니라고, 우는 거 아니라고 있는 힘껏 도리질을 했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울컥 터진 눈물이 그치지를 않아서. 어린애 아니라고 그렇게 박박 우겨놓고, 우는 꼴까지 보이면 정말로 할 말이 없으니까.


“울지 마라.”


그러나 그렇게 우기고 뻗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이미 다 아는 것 같았다. 커다란 손바닥이 뺨을 감싸고, 눈꺼풀 아래를 가만히 훑고 지나갔다.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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