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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10

10. Ribbon

옮는다. 또 그 핑계를 대고 밀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지훈의 예상과는 달리 다니엘은 선뜻 몸을 앞으로 숙여 지훈의 입술에 키스했다. 버드 키스처럼 가만히 입술을 대고만 있다가, 살짝 핥다가, 가만히 입술을 깨물어왔다. 가슴 속에 감춘 뭔가가 건드려진 기분이었다. 아찔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 틈새로 아주 보드라운 것이 가만히 입 속을 더듬어왔다. 순간 머리 속이 꽁꽁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물러날수록 더 깊이 밀고 들어오는 다니엘의 키스에 몇 발을 더 물러나다가, 지훈은 벽을 지고 서게 되었다. 벽의 서늘한 냉기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니엘은 벽으로 몰린 지훈의 얼굴 옆으로 팔을 짚고, 마음 가는 대로 지훈의 입술을 탐했다. 숨이 막혔다. 심장에 쥐가 난 것 같았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쁜 입술 자꾸 깨물지 마라. 죽는다.”


귀 바로 앞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순간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지훈은 저도 모르게 다니엘의 목을 껴안았다. 다니엘은 지훈의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어 씹다가 턱을 깨물고 귀밑턱을 핥았다. 그 서슬에 귀로 다니엘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흘러들었다. 순간 눈 앞이 아찔해졌다.


자고 싶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형.”


몸을 누르는 어깨를 떠밀어내고 거칠어진 숨을 할딱거리다가, 지훈은 그렇게 말했다.


“자요.”

“뭐?”

“그러기로 했잖아.”


아직 확신은 없었다. 좋아하는지 뭔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미칠 거 같았다.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어딘가 한 군데만 톡 하고 건드려져도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 사람 때문에.


“자자고. 나랑.”

“지훈아.”

“나랑 자고 싶다며, 형도. 그런데 참는 거라며.”


불은 꺼져 있었고 뭔가가 뚜렷이 눈에 잡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니엘의 얼굴 윤곽은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지훈은 가만히 떨리는 손을 들어 타액이 묻어 반들거리는 그 입술을 손끝으로 만졌다.


“자요. 나랑.”

“임마, 니 지금.”

“나 형이랑 자고 싶어졌어.”


다니엘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커다랗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가뜩이나 낮은데다 쉬어서 더 낮아진 다니엘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목을 울려 나왔다. 그것조차 자극적이어서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씨발 돌겠네.”


그 거친 언사조차도 지금은 달콤하게 들렸다.


“지훈아, 내 좀 살리도. 부탁이다.”

“무슨 뜻인데.”

“이러지 마라. 니가, 이러믄.”


살짝, 아주 살짝 뺨을 만지고 지나가는 손.


“내 진짜 헷갈린다.”

“헷갈리긴 뭐가 헷갈려.”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애가 타서.


“말 못 알아들어요? 내가 형이랑 자고 싶다고.”


다니엘은 지훈의 얼굴 양 옆으로 손을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목줄기가 도드라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숨을 쉬는 사람이라는 것, 심장이 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미처 몰랐던 것도 아닌데 너무나 절절하게 와 닿아서 가슴이 저렸다.


“지훈아. 박지훈.”

“말을 해, 부르지만 말고.”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미 알았다. 또 밀어낼 작정이라는 걸. 내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지훈은 슬그머니 화가 났다.


“니, 누구 다른 사람하고 자본 적은 있나? 없제?”

“그건 왜 물어?”

“니가 오늘 내하고 자믄, 그기 니 처음이다. 알겠나.”

“그게 왜.”

“사람이 살믄서, 여러 사람하고 잘 수도 있는데, 처음은 딱 한 명 뿐이다.”


다니엘은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물어왔다.


“니, 그래도 될 정도로 내 좋아하나.”


지훈은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방금 그 말 또한 몸이 먼저 동해서 한 말이라,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했던 것이 사실이라서.


“걱정하지 마라. 내 니하고 잘 거다.”


다니엘은 웃었다.


“그런데, 다음에. 니가 그래도 괜찮겠다 싶으믄, 그 때.”

“형.”

“내 어데 안 간다.”


다니엘은 벽에 기댄 지훈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인형을 껴안듯, 아주 꼭.


“내는 니 꺼다.”


다음에. 네가 정말로 나를 좋아하면, 그 때.


그게 맞는 거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그것보다도, 날 좋아한다면서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가 하는 서운함이 당장은 더 컸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만큼.


“만약에 내가 어른이었으면, 그래도 이랬을 거야?”

“아니. 미쳤나.”

“그럼 역시 그게 문제네. 내가 애라는 거.”


지훈은 투덜거렸다.


“애라서 자는 건 안 된다면서 키스는 해도 되고, 뭐 그런 거야?”

“내는 뭐 이게 좋은 줄 아나.”


다니엘은 자기 어깨에 이마를 파묻고 고개를 숙인 지훈을 쳐다보았다.


“모르겠나. 내 지금 선 거.”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차마 대꾸가 나오지 않았다. 대꾸할 말도 표정도 부족해, 지훈은 다시 한 번 다니엘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고개를 파묻었다.


“사람이 멋있는 척 할라고 이래 애쓰는데, 니가 좀 봐 도.”

“어떡하지. 별로 안 멋있는데.”


온 몸에 남은 오기를 끌어모아 가까스로 대답했다. 이상했다. 조금 전 키스를 했을 때, 반쯤 정신이 나가 자고 싶다는 말을 내뱉듯이 말해버렸을 때보다, 지금은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지금 가슴이 더 두근거린다는 것은 별로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거 아니래놓고.”

“지금 이쁜 꽃은 좀 기다렸다가 꺾는 것도 남자다.”


다니엘은 샐쭉해진 지훈의 입술에 살짝,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미안하다. 형이 잘하께.”






그날 방으로 돌아와 지훈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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