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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9

9. 나만 바라봐

그날 밤, 지훈은 문득 잠이 깼다.


잠이 깬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착각인가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젯밤 내내 들렸던 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나절 사이 감기가 깔끔하게 나았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지 않고 깨어 있거나, 이 방 안에 없다는 말이 되겠는데.


어느 쪽이든 신경 쓰였다.


일어나서 확인해 볼까 말까, 지훈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국 화장실에라도 가려는 척 슬그머니 침대에서 나왔다. 슬쩍 지나가며 보니 다니엘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몸도 성찮은 사람이 어딜 간 걸까.


없어져 봤자 갈 곳은 뻔하다고 생각했다. 연습실이겠지. 그러나 슬그머니 들여다 본 연습실은 불이 캄캄하게 꺼져 있었다. 혹시나 안으로 들여가 보았지만 연습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연습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 지훈은 우뚝 그 자리에 서 버렸다.


어딜 간 거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많이 아픈 건가. 무슨 일이 있나. 아니면, 내가 신경 쓰이기라도 한 건가.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슬그머니 애가 타서 지훈은 합숙소 곳곳을 기웃거리며 다니엘을 찾으러 다녔다.


다니엘은 합숙소 바깥에 있었다.


혹시나 내다본 바깥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려갔다. 건물 정문의 계단참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뒷모습은 틀림없이 다니엘이었다. 사람 그렇게 걱정시켜놓고 고작 담배라니. 마음이 놓이는 것이 절반, 슬그머니 화가 나는 것이 절반이라 살금살금 다가가 뒤통수라도 한 대 때려줄까 하는 생각을, 지훈은 했다.


“뭐해요.”


그래도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어서, 일단 말을 걸었다.


“감기 걸린 사람이 담배 피워도 돼요?”

“와 나왔노, 안 자고.”

“걱정 마요. 형 찾으러 나온 거 아니니까.”


말해 놓고 나니 우스웠다. 찾으러 나온 게 아니면,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을까. 눈치채지 못했으면 싶지만, 그런 걸 바라는 건 무리 같았다.


“형 담배 피웠어요?”

“피우다가 끊었다.”

“근데 지금은 왜 피우는데.”

“가끔 한 대씩. 진짜 말려서 미치겠을 때만.”

“그럼 그게 끊은 거야? 그리고 도대체 몇 살부터 피웠길래 벌써 피웠다가 끊었대. 발랑 까져가지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형은 왠지 담배 안 피우는 거보다는 피우는 게 어울린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다니엘은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그거 바가지가.”


아직도 쉬어서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


“좋네, 기분.”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은 슬그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밤바람에 섞여드는 담배 연기가 매콤하다. 별로 좋아하는 냄새는 아니지만, 오늘 밤은 어떻게든 견뎌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흘끔 옆을 한 번 보더니 반 조금 못 피운 담배를 말없이 비벼 꺼 버렸다.


“뭐가 또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끊은 담배를 피우러 나와요?”

“잘라고 눕었는데 내가 내 앓는 소리 거슬리서.”

“우와, 몰랐던 건 아닌데 성질 진짜 존나 드러워.”

“별로 성질 좋게 생긴 면상은 아이다 아이가.”

“알고 있었구나. 난 또 모르는 줄.”


다니엘은 손을 뻗어서 손 끝으로 지훈의 이마를 딱 하고 튕겼다.


“작작 개기라. 혼난다.”

“아픈 사람이 야밤에 없어져서 기껏 걱정돼서 찾으러 나왔더니 때리기나 하고.”


결국 이렇게, 앞서 한 찾으러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을 스스로 뒤집어엎고 말았다. 지훈은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별로 안 드가고 싶은데 니 때문에 드가야 되겠다. 내 안 드가믄 니도 안 드갈 거 아이가.”

“왜 들어가기 싫은데?”

“뭐 잠도 안 오고.”

“잠이 왜 안 와. 우리 방에서 코 제일 크게 골고 자면서.”


말을 하다 문득, 중간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가셨다. 여기 이 사람에게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긴 한데, 혹시나 그런 거라면.


“형, 혹시 불안해요?”


다니엘은 그 말에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찰나의 침묵이 바로 대답이었다. 정말로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대답에 뜸을 들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지훈은 이미 알았다.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가장 절절한 대답이라는 것을.


“야, 좀 너무하는 거 아녜요? 2등이 불안하면 그 밑으로는 어떡하라고.”


네가 그러면, 네 밑으로는 어쩌라고.


이런 상황에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정나미 떨어지는 말일 것이다. 몇 주간 더 올라갈 데가 없는 곳이 자신의 자리였을 때 지훈이 늘 듣던 말이었고, 들을 때마다 그 무책임함에 치를 떨곤 했다. 그러나 막상 위로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마땅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 때, 다들, 이런 기분으로, 이런 말을 했었구나.


“모르겠다.”


다니엘은 고개를 쳐들어 별로 보이는 것도 없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몇 주 전에, 한 중간쯤 했을 때가 속은 더 편했던 거 같다.”

“무슨 말이에요 그건.”

“그 때는, 그냥 내만 열심히 하믄 다 잘되겠지, 그래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은 한 개도 안 들더라.”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다니엘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근데 막상 여까지 올라왔는데, 그때보다 더 불안하네.”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섣불리 맞장구 칠 수도 없을 만큼.


“그래도 형 대단하다. 불안하다. 그런 말도 솔직하게 하고.”


지훈은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뭐 이제 1등 아니고, 형보다 등수도 밑인데 이런 말 하면 좀 웃긴데, 1등하고 있을 때 불안했어. 더 올라갈 데는 없고, 내려갈 데밖에 없는 거잖아. 다들 열심히 하는데. 언제 따라잡혀도 안 이상한데. 그거 미치게 힘들고 불안했는데, 아무한테도 말 못했어요. 말하면 지는 거 같아서. 그냥 입 꾹 다물고 참았어요. 근데 형은 말하네. 대단한 거 같아.”

“니한테니까 말하지.”

“아닐걸.”


지훈은 웃었다.


“형은 나 아니라도, 누구한테라도 말했을 걸. 솔직하게.”


몇 주간 지켜오던 1위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생각보다 그리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가 납득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중에 다니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훈의 그 말을 끝으로 대화는 잠시 끊어졌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연히 생각만 하던 불안감과 막막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자리에, 너무나 많은 상념들이 흘러들고 있었다. 꺼내어 말하면 현실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던 그 많은 감정들이.


“담배 끊어요.”


화제를 돌릴 겸, 지훈은 그렇게 말했다.


“아이돌 할 거라면서 담배를 왜 피워.”

“끊었다니까.”

“피우고 싶을 때 다 피우면서 그게 끊은 거예요?”

“알았다.”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대꾸하고 다니엘은 먼저 일어났다.


“드가자. 고만 뭉개고.”


지훈도 따라서 일어났다. 이미 설쳤지만, 그래도 잠은 자야했다. 내일도 고된 하루가 될 테니까.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다니엘의 뒤를 따라, 지훈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불이 꺼진 합숙소 안은 컴컴했다. 계단의 실루엣조차 흐릿해 보여 두어번 발을 헛디딜 뻔 했다. 다니엘의 한 발 뒤에서 졸졸 따라가다가, 지훈은 문득 그렇게 물었다.


“근데 형은 내가 왜 좋아요?”

“와. 니 좋아하믄 안되나.”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이상하잖아. 동생으로 귀엽다 이런 것도 아니고, 좋아한다 그러니까.”

“동생으로 귀엽은 거는 우진이고.”


아, 우진이.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우진을 귀여워하는 건 합숙소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였다.


“니는 이쁘다 아이가.”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이다. 내 눈에는 여 있는 사람 중에 니가 제일 이쁘드라. 그래서 함 좋아해 보까 싶던데.”


다니엘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와, 니는 니가 안 이쁘나? 내는, 내가 만약에 니만큼 생겼으믄 평생 거울도 안 보고 살긴데.”


그 말을 듣고 지훈은 문득 얼굴을 붉혔다.


처음 듣는 말은 당연 아니었다. 잘생겼다, 곱상하다,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말은 이제는 질리도록 듣고 다녔다. 그래서 지금의 이 기분이 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새삼스레 왜 얼굴이 붉어지는지가.


“뭐.”


무슨 말을 할 건지 준비도 안됐는데 입부터 뗀 건 아마 머쓱해서가 아니었을까.


“형은 멋있잖아요.”


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버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맞나.”


맞나, 혹은 진짜가-하는 부산 사투리는 특유의 묘한 뉘앙스가 있다. 서울말로 정말이야? 하고 묻는 것과는 조금 다른.


“내 좀 멋있나.”


그 한 마디를 해놓고 다니엘은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었다.


“좋아요? 멋있다니까.”

“그라믄 안 좋나. 딴 사람도 아니고 니가 한 말인데.”


저렇게까지 솔직하기가, 쉬울까. 지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디까지 진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올라가면 네가 떨어지는 이런 사이에, 별 것도 아닌 멋있다는 말 한 마디에 저렇게 대놓고 좋아하다니.


가끔 이럴 때보면 나보다 더 어린애 같다니까.


“아 씨발. 감기만 안 걸맀으믄 이럴 때 뽀뽀하는 건데.”

“하든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반쯤은 객기였을지도.


“어차피 사람도 없고.”

“뭐?”

“해 봐요.”


지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번엔 눈 잘 감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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