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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7

7. Again & Again 下

순간 어째서인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가슴 한 구석이 뜨끔, 무겁고 둔탁한 것으로 힘껏 쥐어질린 기분이었다. 긴장되는 것도 같고, 반대로 온 몸이 나른해지는 것도 같고, 지금껏 별로 느껴본 적이 없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등의 어느 구석이 가려울 때 같은, 몸이 배배 꼬이기도 하고 숨이 넘어갈 것 같기도 하고 뒷덜미가 뻣뻣해지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이.


그리고 지훈은 그것이, 본능에 가까운 이끌림이라는 사실을 아주 조금이나마 자각했다.


“가께. 이따 보자.”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니엘은 훌쩍 몸을 일으키고는 꺼내 두었던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그의 몸은 앞에서 볼 때보다 옆에서 볼 때 더 두터웠는데, 그런 몸집을 하고서도 자리를 떨치고 나설 때만큼은 누구보다 홀가분했다.


“형 저기.”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뭔데.”

“이거, 장난이에요?”

“뭐가?”

“방금, 그거. 아니, 형이 나한테 한 거 전부 다.”


가끔은 알 수가 없다. 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자고 말하면 밀어내는 그를. 결정적인 순간마다 밀어내면서도, 어른의 키스를 하고 손 끝으로 귓볼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나를 원하는 것도 같다가, 아닌 것도 같다가, 또 맞는 것도 같은 그를.


도대체,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아니, 그 이전에 정말로 무서워졌던 건 그거였다. 이게 혹시 전부 어른의 장난 같은 것일까 봐. 그래서 실컷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장난이었다며 웃어버릴까 봐. 결국 정신을 차려보면, 나 혼자만 남아있게 될까 봐.


그래서, 혼자만 상처받게 될까 봐.


“심심하나. 장난이게.”


그러나 다니엘의 대답은 단호했다. 언제나처럼.


“이기 다 장난이믄, 지금 당장 어째 하지도 못하는 니한테 치겠나?”


그 말의 어떤 구석이, 지훈의 어린 마음에 가벼운 생채기를 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무슨 뜻인지도 알았다. 모르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빴다. 실컷 예쁘다고,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이런 순간만 되면 칼 같이 선 긋고 밀어내는 저건 도대체 뭘까.


장난이 별 거냐고. 저런 게 장난이지.


“왜 지금 당장 어찌 하지도 못해요? 내가 애라서? 아님 내가 형 안 좋아해서?”


다니엘은 말없이 지훈을 건너다보다가,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둘 다.”


그 거침없는 대답은 어쩐지 섭섭했다. 내 마음에 대해 뭘 안다고.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안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보이는 이런 애매한 태도는 또 다 뭐고.


“나이야 뭐 할 수 없고. 그럼, 내가 형 좋아하면.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면 나하고 잘 건가?”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이다.”

“잊어버렸나 본데 순위가지고 자는 이야기 처음 꺼낸 거 형이거든요.”


정말로 뭔가가 왈칵 치밀어, 지훈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왜. 말 해놓고 무서워지기라도 했어요?”

“뭐라고?”

“형 진짜 나 좋아하는 거 맞긴 해?”


순간, 울컥 서러워졌다.


어쨌든, 당신은 나보다 형이잖아요.


이렇게 사람 마음 흔들어놓고, 다른 생각 못하게 바싹 끌어당겨 주기라도 하든가. 좋아한다는 말만 던져놓고,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뒷짐 지고 물러서서 저렇게 알 듯 모를 듯한 말만 던지는 거. 나더러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형 주제에, 나보다 어른인 주제에, 날 이렇게 힘들게 해도 돼요?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안 그래도 힘든데,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형까지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데?”


더 심한 말이, 아니 더 약한 말이 나올까봐 지훈은 피가 나기 직전까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해버릴까봐.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쏘아붙여 버릴까봐. 다니엘은 나가려다 말고 그런 지훈을 말없이 돌아보았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되돌아온 그는 떨리는 지훈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질리게 깨문 그 입술에 깊은 키스를 해주었다.


“미안하다.”


집요하게 입을 맞추어 억지로 깨문 입술이 풀어지고 나니, 다니엘은 그렇게 속삭였다.


“형이 잘못했다.”


그 말이 가슴 속의 뭔가를 건드린 듯, 하마터면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지훈은 콧잔등을 한껏 찌푸리고 눈물을 참았다. 여기서 울기까지 하면 그 창피함은 차마 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뭐가 미안한지 알긴 해요?”


지훈은 그렇게 쏘아붙였다.


“미안하면, 뭐 어쩔 건데. 그만하기라도 할 거야? 그러지도 않을 거면서.”

“내가 어짜믄 되겠노. 니 고만 좋아하믄 되겠나?”


그 질문은 참 짧고도 담백했다.


“니가, 내가 니 좋아하는 기 그래 싫으믄 고마하께.”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뭐가 이래.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뭐 이렇게 쉽게 그만하겠다 소리 나오는 그런 거냐고.


“아니, 싫어. 좋아해. 계속 좋아해. 엄청 많이.”


누구 맘대로.

사람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어놓고, 누구 맘대로.


“근데, 나는 형 안 좋아할 거야.”


눈이 마주쳤다. 딴에는 이를 악물고 한 말인데, 정작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은 웃고 있었다. 미운데. 분명히 미운데, 묘하게 안심되기도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래. 잘 해봐라. 응원하께.”


그리고 다니엘은 붙들고 있던 지훈의 어깨를 끌어당겨 짧고 깊은 키스를 한 번 더 했다.


“그런데, 장담은 못하겠다. 쉬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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