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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6

6. Before the Dawn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레슨을 받고 정해진 연습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속에서 혹자는 경쟁을 하고 혹자는 지쳐갔고 혹자는 의욕을 불태웠다. 이런 사람도 있었고 저런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다니엘과 지훈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다니엘은 언제나처럼 잘 웃고, 잘 지냈다. 친한 사람들의 썰렁한 개그에 제일 먼저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그보다 더 썰렁한 개그를 쳐서 주변을 싹 얼려버리기도 했다. 다이어트 한다고 온갖 사람한테 다 말해놓고 정작 먹는 밥 양은 하나도 줄지를 않아 지나가는 트레이너마다 입을 대고 지나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일과였다. 그의 일과는 일변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지훈의 경우는 좀 달랐다. 웃음을 잃어버린 지훈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대신 연습하는 강도는 훨씬 더 세졌다. 하던 연습은 열심히 하고, 남들 다 쉬러 간 후에도 연습만 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미소년 기믹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고, 지훈이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는 편리하게 그렇게들 생각해 주었다.


연습을 열심히 한다는 건 여러 가지로 편리한 일이었다. 몸이 피곤하면 쓸데없는 생각이 멀리 달아나는 효과가 있었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다니엘과 오래 맞닥뜨리지 않아도 된다는 부차적인 효과도 있었다.


안무는 비교적 할 만 했지만 한 군데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성우와 합을 맞추는 안무 부분이었다. 다리를 옆으로 접는 동작이 난이도가 제법 있는 편이라 언제나 긴장이 되었다. 같은 동작을 하는 성우만큼, 자연스럽고 스무드한 동작 선이 나오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래서, 좀 무리하게 골반을 누른 것이 문제였을까.


“아.”


일어나지지를 않았다.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까 어딘가 삐끗하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삔 걸까 접질린 걸까.


“씨...”


어찌어찌 다리를 펴고, 지훈은 차가운 연습실 바닥에 등을 대고 고스란히 드러누웠다.


질펀하게 땀이 난 등과 푹 젖은 티셔츠를 따라 바닥의 냉기가 온 몸으로 퍼졌다. 처음엔 시원하더니, 조금 지나니 춥다 못해 머리가 아팠다. 온 몸이 푹푹 쑤시기 시작했다. 며칠간 너무 무리했더니 자기도 모르게 몸이 많이 쳐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 짜증나.”


지훈은 팔을 들어 눈을 덮었다.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혼자 연습실 바닥에 뻗어 있었던 걸까.


저 쪽에서 문이 열리는 인기척이 났다.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났다. 억지로 몸을 좀 일으키려고 했는데, 찬 바닥에 한참이나 누워 있어서 그런지 몸이 잘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의 관절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임마, 니.”


다니엘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꼴을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


지훈은 이를 악물고 억지로 팔을 짚어가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굳어진 몸에는 이미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훈은 팔로 바닥을 짚어가며 힘들게 반쯤 몸을 일으켰다.


“뭔데, 어데 다칬나?”

“연습하다가 좀 삐끗했어요. 괜찮아요.”

“괜찮기는 임마. 보자.”

“괜찮다니까, 진짜.”


변명 비슷하게 한 마디 하고 고개를 들다가, 지훈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과 눈이 마주쳤다.


“안 닥치나.”


싸늘하게 굳어진 눈이 말없이 화를 내고 있었다.


“형, 나는.”

“가뜩이나 좋은 성격에 다친 새끼한테 험한 소리 안할라고 딴에는 개욕 보는 중이니까, 니도 협조해라.”


다니엘은 지훈의 발목을 대충 살펴보고는 밖으로 나가 뿌리는 파스와 붙이는 파스를 둘 다 들고 돌아왔다. 그러더니 지훈의 발치에 퍼지고 앉아서 발목을 들어다보고, 여기저기 눌러보고, 발목을 살짝 돌렸다. 저도 모르게 악 하고 비명소리가 났다.


“접질맀네.”

“그렇다니까. 별로 크게 다친 건...”


다니엘은 바닥에 손을 짚고 상체를 기울여, 무어라고 변명을 계속하려는 지훈의 입에 입을 맞추어 막아 버렸다.


“닥치라 했다.”

“형.”

“한 마디만 더 해봐라. 여서 안 끝난다. 알겠나.”

“...”

“알겠냐고.”

“네.”


지훈의 기세가 꺾이자, 다니엘은 지훈의 발목을 한참이나 꼼꼼하게 주물러주고는 파스를 뿌렸다. 그걸로도 안심이 안 되던지 붙이는 파스까지 떼어 꼭꼭 눌러가며 야무지게 붙였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파스가 붙은 모양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심하지는 안하네. 다행이다. 한숨 자고, 내일도 계속 아프믄 병원 가라. 알겠나.”

“아니 뭐 그렇게까지.”


뭐라고 말을 더 하려다가, 곱지 않게 쳐다보는 다니엘과 눈이 마주치고 지훈은 찔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대답 똑바로 안하나.”

“알았어요.”


마지못해 대꾸하는 지훈을, 다니엘은 착잡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니는 새끼야. 내 떼내봐라 했더마는 기껏 한다는 짓이.”

“형이랑 상관없잖아요.”


지훈은 볼멘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냥 요새 연습에 집중도 잘 안되고 해서 좀 열심히 하려다 보니까.”

“그 말 취소다.”

“뭐가요?”

“내가 니 좋아하는 거 싫으믄 내 잘 떼내봐라 했던 그 말 말이다. 취소다.”


다니엘의 목소리는 원래도 약간 저음이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보통 때보다도 훨씬 낮고, 조금 빨랐다.


“내가 지 좋지 지도 내 좋겠나 싶어가 내비놨더마는, 오만 죽상을 다 쓰고 댕기는 거로 모자라가 쳐다치기나 하고. 내가 뭐라카대. 니는 웃는 얼굴이 이쁘니까, 이쁜 얼굴 뭉개지 마라 했제.”


지금의 목소리는 또 한참이나 어린 동생을 야단치는 형의 목소리여서, 감히 입을 열어 뭐라고 대들 기분이 나지 않았다.


“성질 안 맞게 쿨한 척 좀 해볼라 했는데, 안 되겠다. 속이 디비지가.”


다니엘은 가만히 혀를 찼다.


“내는 니 좋고, 앞으로도 니 계속 좋아할 기다. 니가 그기 꼽든지 말든지, 내는 모른다.”

“그런 게 어딨어요?”

“그기 싫으믄, 새끼야. 니가 니 앞가림을 잘해야 될 거 아이가.”


묘한 기분이었다. 살짝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런 스스로가 짜증나기도 하고, 좋은 것 같은데 좋지만도 않고, 기분이 더러운 것도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그런 복잡한 감정. 지훈은 더없이 복잡한 기분으로 자신의 발목을 들여다보는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럴까봐 괜찮다고 한 거예요.”


그냥 그렇게 말해버렸다. 혹시나 또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암튼 어른인 척 쩔어. 연습하다 발목 좀 삔 게 뭐가 어떻다고.”

“맞나.”

“형 모르죠. 형 말하는 거 은근히 재수 없는 거.”


이렇게 말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좋은 말로 받다가는 정말로 기분이 이상해질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정도 쯤은 나도 다 알아서 하니까...”


지훈은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다. 어차피 더 연습하긴 틀렸고, 돌아가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다니엘이 일어나려는 지훈의 어깨를 꾹 눌러 주저앉혔다. 뭘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센 악력이었다.


“아직도 그래 상황파악이 안되나.”


다니엘의 음성은 가끔 기묘하게 끌리며 확 낮아질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지금 시간에 다 자고.”


이마로 흘러내린 지훈의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여 지금 니하고 내밖에 없고.”


가만히, 혀끝으로 입술을 핥으면서.


“내는 니 좋아한다고 분명히 말했고.”


슬쩍 몸을 숙여서, 잘 그러듯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니는 발목 다칬고.”


눈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맞추면서.


“뭔 일 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안 드나?”


다니엘은, 그렇게 물어왔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움찔 뒤로 몸을 젖혔다. 감히 뭐라고 대꾸를 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말을 듣고 보니, 자기가 지금 매우 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깨달아 버린 탓이었다. 눈을 쳐다보는 다니엘의 얼굴과, 목덜미와, 어깨와, 어째를 잡은 손까지가 무섭게 의식되어 뒷덜미가 굳어졌다. 말문이 막혔다. 그냥 눈만 깜빡이며 그 자리에 고스란히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살얼음 같은 침묵이, 수 초간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


그러나 다음 순간, 새파랗게 질리다시피 한 지훈을 한참 쳐다보다가 다니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새끼 쫄기는. 안 잡아묵는다.”


내뱉듯이 툭 던지는 그 말투에, 바람이 빠지듯 긴장감이 빠져나갔다.


“니 눈에는 내가 어째 보이는지는 모르겠는데, 찬 바닥에서 다친 놈 덮칠 만큼 개새끼는 아니거든.”


다행이다. 그 생각만이 머리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도대체 뭐가 다행인지, 왜 다행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채로.


“눈 똥그래진 거 봐라. 이뻐 가지고.”


멍해진 지훈의 뺨을 슬쩍 한번 꼬집고, 다니엘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지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나라. 드가 자게.”


그제야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 머리 속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 지훈은 저도 모르게 다니엘이 내민 손을 탁 하고 쳐냈다.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사람 갖고 놀면 재밌어요?”

“갖고 노는 거 같나.”

“아 뭐 좋아요. 잘 갖고 노시고, 제자리에만 갖다 놔요.”


그러고 보면 매사 저런 식이야. 그 자자는 말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런 농담 같은 말에 겁을 먹은 것이 분했다.

도대체가 왜 매사 사람이-


“사람 건들지 마라.”


기껏 내밀었다 민망하게 쳐내진 손을 티셔츠 자락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으며 다니엘은 말했다.


“내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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