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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녤윙] All of Me

녀석은 어린애답지 않게 피곤에 찌든 눈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습관처럼 웃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은 너무나 한결같아서, 오히려 쉽게 진심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본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표정을 감추는 것을 포커페이스라고 한다면, 늘, 언제나, 누구에게나 웃어주는 녀석의 얼굴도 일종의 포커페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저 견고한 평온을 깨뜨려놓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안 돼요.”


차라리 화를 냈다면 납득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좋아한다니, 그런 거 이상해요. 징그러워요. 더러워요. 이런 말이었다면, 차라리 상처를 받았을지언정 납득하기는 쉬웠을지도.


그러나 녀석의 거절은 이번에도 미소였다. 말갛게 웃는 얼굴. 그런 얼굴로, 또 녀석은 내게 받아줄 수 없다, 안 된다는 말을 세 번째로 되풀이했다. 단순히 거절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짓는 미소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속이 텅 비어버린 그런 얼굴로.


“지훈아, 나 좀 납득이 안 된다.”

“뭐가요?”

“네 태도가.”


알아야겠다. 도대체 네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좀 알아야겠어.


“내가 싫은 거냐, 아니면 네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냐.”


순간, 녀석의 웃는 얼굴 한 귀퉁이가 금이 갔다. 단단한 모서리에 부딪혀 이가 나간 접시처럼. 녀석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싫은 거면, 나라서 싫은 거라면 그만할게.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주제넘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꾸 쳐다보게 되는 것을.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시키지 않은 의문까지 갖게 된 것을.


“나도 좀 알아야겠어. 뭐가 문젠지.”


녀석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웃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나로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 그 얼굴에 자리 잡았다.


“형은 1년 전 오늘 아침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해요?”

“아니.”

“10년 전 생일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요? 그날 텔레비전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했는지는요?”

“아니.”

“올해 1월 12일 오후 2시에 어디에 있었는지는요?”

“아니.”

“근데 난 그게 다 기억나요.”


녀석의 시선이 그제야 나를 향해 돌려졌다.


“형, 나는, 뭘 잊어버리지를 못해요. 하나하나가, 차곡차곡 쌓여요. 먼지처럼. 그렇게 쌓인 것들이, 여기를.”


녀석은 손을 들어, 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꽉꽉 누르고 있어요.”

“지훈아.”

“어느 날 알았어요. 갖다 버릴 수 없다면 처음부터 들여놓지 않으면 된다는 걸. 잊어버릴 수 없다면 처음부터 기억하지 않으면 된다는 걸. 아니, 그것조차 실은 완벽하지 않아요. 아무 것도 안 해도, 내 기억 속엔 늘 뭔가가 흘러와 쌓이니까요. 그런 것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일부러 뭔가를 기억하려 하지는 않으려고.”


잊어버릴 수 없는 종류의 병이 있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남들은 쉽게도 잊고 버리는 찌꺼기 같은 기억까지를 몽땅 껴안고, 평생 그 무게에 짓눌리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어쩌면 이 녀석 또한.


“형이 나한테 상처를 주면, 난 그 상처를 평생 잊어버리지 못할 거예요.”


나를 바라보는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날 떠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손을 뻗었다. 손목을 잡아당기자, 처음부터 별로 힘을 주고 있지도 않았던 듯 속이 텅 빈 허깨비처럼 녀석은 내 품으로 떨어졌다. 어깨에 기댄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직도 숨이 도는, 심장이 팔딱거리는 어린 몸을 껴안고 조용히 등을 쓸었다.


그랬구나.

그 언젠가, 네가 나를 놓아주지 못할까봐.

사라져 버린 나를 붙잡고, 영원히 그 기억에 갇혀 살게 될까 봐.


“머리가 무거워? 기억이 너무 많아서.”


조용히,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무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내 어깨에 기댄 녀석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어리고 따뜻한 입술이 벌어져 내 혀끝을 핥았다. 순간 눈물 한 줄기가 흘러 입 속으로 들어왔다. 입술을 댄 채로 뺨을 더듬어, 감겨진 눈꺼풀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내가 네게 할 수 있는 거라는 건-


“나를 기억해. 내가 주는 모든 걸.”


가늘게 떨기 시작한 어깨를 잡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공을 그러쥐는 손을 붙들어 쥐었다.


“나를, 내 기억을 붙잡아.”


이제부터

너의 모든 기억 속에

내가 있을게.


"내 모든 것을, 네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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