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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Time Light 2

2. 예쁘다

“음악 꺼주세요.”


반사적으로 멈칫했다. 동작을 틀리거나 박자를 틀린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스스로의 컨디션이 안 좋은 탓인지 모든 질책과 지적은 전부 자신을 향하는 듯이 느껴졌다.


“지훈이.”


역시나. 지훈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며칠 전의 그 말 같지도 않은 내기 이후, 다니엘이 부쩍 신경 쓰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지훈이었다. 전심전력을 다해도 따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고된 일정 중에, 다른 데 마음을 쓰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요새 왜 그래? 너 윙크로 뜬 거 몰라? 그런 애가 그렇게 칙칙해져 있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니?”


머쓱한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지훈은 어깨를 움츠렸다.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마음이 쓰여서, 신경이 쓰여서.


“아이돌은 춤 노래 잘하는 것도 중요해. 그런데 그거만큼 중요한 게, 사랑스러워야 된다는 거야. 지훈이는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숙지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냐?”


조심하겠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불분명한 대답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걱정스런 시선들이 마뜩치 않았다. 지훈은 물병 하나를 챙겨 들고 도망치듯 연습실 밖으로 나가 비상계단 층계참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벽에 이마를 기대니 조금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뭘 어쩌려고 이러냐.


지훈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도대체 뭐에 정신이 팔려서 이렇게 멍한 건지,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헷갈림이 깊어질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 때 그 말 같지도 않은 장난 같은 말에 휘말려서 이렇게 붕 떠있을 생각인지. 이런 자신이 짜증나서 죽을 지경인데 아무래도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벽에 머리를 기댄 자세 그대로 눈을 감고 조는 척 했다. 다른 사람과 별로 말을 섞을 기분이 아니었다. 앉아서 졸고 있는 척 하고 있으면, 그냥 지나가겠지.


“어이, 박지후이.”


그런데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뭐하노, 여 짱박혀서.”


다니엘이었다.


이걸, 어떡하지. 이어폰이라도 낄걸. 저렇게 커다랗게 부르는데 못 들었다고 말하기도 뭣하고. 도대체 왜 하필이면 저 형이지.


지훈은 눈을 더 꼭 감고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했다. 한참을 그렇게 눈을 감고 뜨지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더 이상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간 건가. 지훈은 살그머니 눈을 떴다.


“죽은 척 끝났나?”


그러나 지훈의 앞쪽, 벽에 기댄 채 지훈을 내려다 보고 있던 다니엘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순간 말문이 막혀 지훈은 웅얼거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댈 만한 핑계는 많았다. 컨디션이 안 좋다든가, 머리가 아프다든가, 어제 잠을 좀 설쳤다든가. 그런데 그런 흔해빠진 변명들 중 단 한 가지도 생각이 나지 않고, 입 속만 바싹 말라왔다.


“니 와 죽은 척 하고 있노. 내가 곰이가?”

“뭔 소리야, 그건.”

“곰 만나면 죽은 척 해라 하는 이야기 모르나?”


다니엘은 농담이라도 하자는 듯 그렇게 말하고, 지훈의 옆으로 와 털썩 주저앉았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최대한 몸을 벽에 붙여 그와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그거 아나?”


다니엘은 지훈이 들고 있던 물병을 빼앗아가서 아무렇지 않게 몇 모금이나 꿀꺽꿀꺽 마셨다.


“곰이 그래 보여도 머리 억수로 좋아가, 진짜 죽은 거 하고 죽은 척 하는 거하고 다 알거든.”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의 속 같은 건,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그런 눈이었다.


“죽은 척 안했어요.”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그냥 머리도 좀 아프고, 뭐.”

“머리가 와 아픈데.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기.”

“아, 진짜.”


지훈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대가리 피도 안 마르면, 머리 좀 아프면 안 돼요? 존나 어른인 척 쩔어.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


그 발끈하는 태도에 다니엘은 웃었다.


“그래. 하기야 얼라도 머리는 아플 수 있지.”


순간 버럭 짜증이 났다. 저놈의 얼라 소리 좀 안하면 안 되나. 그냥 애라고만 해도 좀 덜 짜증날 거 같은데, 경상도 말로 듣는 그 '얼라'라는 말은 애라는 말보다 몇 배는 모욕적이었다. 멱살이라도 한 번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머리는 뭐 때문에 아픈데.”

“알아서 뭐하게요.”

“혹시 아나? 내가 뭐 도와줄 일이라도 있을지.”


저기요, 꺼지세요. 이게 다 형이 사람 붙들고 이상한 소리 해서 그런 거거든요.


입안에 맴맴 도는 그 말을 한 번만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됐거든요.”

“아, 새끼 까칠 쩌네, 와, 뭔데. 내도 좀 알자.”

“아 저리 가요. 귀찮아 죽겠어.”


지훈은 정색을 하고 슬금슬금 옆으로 붙어 앉는 다니엘을 홱 떠밀어 냈다. 이런 물색없는 친한 척은 어이가 없었다. 이상한 말은 자기가 먼저 꺼내 놓고, 그런 얼굴로 날 보면서 어린애 따먹는 변태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던 그 사람이 여기 이 사람 맞긴 한지.


“아, 새끼 진짜 존나 비싸게 구네. 알았다. 드가께. 반분이나 풀리면 들온나.”


그렇게 능글능글 들러붙더니 또 저렇게, 다니엘은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이 홱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돌아섰다.


“박지후이.”

“왜요.”

“웃어라.”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싱긋 웃는 얼굴로 돌아본 다니엘은 느닷없이 그런 말을 했다.


“니는 안있나, 확실히 웃는 기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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