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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Everybody Lies 21











규원의 말은 그 어떤 면에서도 다니엘의 글을 깔아뭉개거나 비하하는 표현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의 면전에 앉아 그 말을 듣고 있는 지훈에게는 아무런 구원도 되지 못했다. 규원의 그 말에서 지훈이 눈치 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니엘이 겪은 마음고생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길었을 것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원래 그런 글 쓰던 사람이었다니.”


그래서 규원의 말에 대답하는 지훈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그 말씀은 어떻게 들어도 좋은 뜻으로는 들리지 않는데요.”
“다니엘은.”


그러나 규원은 지훈의 말에 바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별로 좋지 못한 타입의 글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차라리 도색 소설 정도라면 나았을 텐데요. 그보다 훨씬 좋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죠.”
“….”
“이 곳에 온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간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한 순간에 허무해지는 순간이 있죠. 다니엘이 처음 이 곳에 온 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지없이 후회스럽다고, 그런 말을 하더군요.”


후회스럽다니, 도대체 뭐가.

후회할 거리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 의건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이였다던 자신의 앞에서조차 그러했다. 그런 의건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를 토로했다는 사실은 지훈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저 하나의 불행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는 사람이어서, 남의 눈물 짜는 이야기에 그리 동정적인 말을 해주는 좋은 성격이 못됩니다. 이제 와서 그런 후회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조금 냉담한 말을 했죠. 그리고, 그날 있었던 그 사고는 아마도 그 때문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답지 않게도요.”


거기까지 말하고 규원은 입을 다물었다. 지훈 역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서재 안에는 잠시 짙고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다니엘은, 그렇죠. 일종의 자학 중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식으로 말을 하면 자신의 위치가 조금 덜 곤란해질지, 규원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그걸 좀 도와주고 있을 뿐이죠.”


조금 가라앉던 의문이, 분개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 말씀은 어느 정도는 그 자학을 조장하고 계시는 중이라는 말로 들립니다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겠지요.”


의외로 싱겁게 규원은 지훈의 말을 수긍했다.


“저로서야 굳이 말릴 필요도 없고.”


규원이 말하는 ‘별로 좋지 못한 타입의 글’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모른다. 물론 글로 사람을 상처 입히는 방법은 꽤나 여러 가지가 있고, 다니엘 또한 어쩌면 그런 종류의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글을 쓰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머리를 책상에 내려찧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가질만한 태도일까. 그것은 묵인이라기보다는 방조나 조장이라고 봐야 옳지 않을까.


“대답이 되셨는지요.”


아니요, 라는 대답이 입 속을 맴돌았다. 규원의 그 말은 지훈의 의문을 하나도 해소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언급을 한다고 해서 규원에게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지훈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럼 저도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불과 며칠 전에 처음 만나셨을 강 비서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시는 이유를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어디까지 사실을 말해야 할까.

가장 무난한 대답은 자신이 과거에 알던 사람과 닮았다는 정도의 대답일 것이다. 그 사람도 마침 3년 전에 실종되었다고.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 사람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고, 솔직히 지금도 그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런 말로는, 아마도 규원이 이미 알고 있을 어젯밤의 그 일을 설명할 수 없었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 이유입니다. 강 비서님은 제가 알던 사람과 굉장히 많이 닮았거든요”


지훈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과요.”
“저런.”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도 규원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그 말씀은, 지금은 헤어지셨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괜찮겠습니까?”
“헤어졌다기보다는, 실종됐습니다. 3년 전에. 아니, 증발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규원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불편한 몸 이야기를 남에게 대놓고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세상만사가 모두 그렇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토해내야 한다. 이제는,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뱉어내 놓을 차례였다.


“다툰 것도 아니었고,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아주 평범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어요. 그런데 그 날 이후, 그는 사라졌습니다. 감쪽같이. 마치 제 인생에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왼쪽 뺨이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켰다. 지훈은 커피를 마시는 척 고개를 숙이고 규원의 시선을 피했다.


“남자끼리 연애하는 사이라는 건 아직도, 어디 가서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 일은 못됩니다. 저희도 그랬죠. 덕분에, 이 세상에 그와 제가 연인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몰랐죠. 당연히 그가 그런 식으로 사라졌을 때, 그게 제게는 이별의 뜻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또한 처음이군요. 제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규원에 대해 가진 감정은 호감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나마 가슴 한 중간에 체기처럼 걸린 말들을 뱉어내 버린 마음은 의외로 후련했다. 지훈은 가만히 한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그래서, 제 이별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규원은 의미심장하게 입을 다물고 지훈을 넘겨다보았다. 그는 한참이나 알겠다는 듯, 이제 납득하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만족할만한 답은 찾으셨습니까? 강 비서한테서.”
“점이 있더군요.”
“점이요.”
“네. 오른쪽 눈 아래. 흔히 눈물점이라고 부르는. 제가 예전에 그걸로 그 사람을 많이 놀렸죠. 무슨 남자가 이런 데 점이 있냐고. 그리고 강 비서님도 똑같은 자리에 점이 있었고.”


오른쪽 눈 아래. 그러나 그 위치가 정확히 같으냐 하면 그것도 확신은 없다. 비슷한 위치라는 것까지는 확신하지만, 정말로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점인지까지는. 그러나 어젯밤, 다니엘의 안경을 벗기고 그 위치에 점이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감광되던 그 순간의 감각은 아직도 뚜렷했다.


“그것 말고 다른 증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음.”


규원은 버릇처럼 다시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얹고는 담요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건가요.”
“그럴지도요.”


지훈은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숨길 것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말을 선배 기자가 한 적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뒤가 저리던 이야기를 다 풀어버린 지금, 지훈은 굳이 규원의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다 아시고 하시는 말씀 같으니 바닥을 조금 더 드러내 보도록 하죠.”


규원은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 얼굴을 마주보는 커피잔을 쥔 지훈의 손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그래서 알아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건 꼭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본인조차도 알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버릇일 수도 있고, 기호라는 말조차도 붙일 수 없는 극히 대수롭지 않은 기준이기도 하고, 그 외의 다른 지극히 자질구레하고 별 것 아닌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냥 느낌으로 아는 것이랄까요. 그런 것.”
“그래서요?”
“저의 그런 감각은, 강 비서님이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훈은 가만히,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저는 선생님에게서, 그 사람을 구해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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