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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Everybody Lies 14











사람이 사람에게 남은 애정을 가늠하는 방법 중에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있다고 한다. 사람이 뭘 먹는 모습이 보기 싫어지면, 정말 애정 비슷한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실제로 다니엘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다니엘은 밥을 복스럽게, 맛있게 잘 먹는 사람이었다. 숟가락 위로 듬뿍 뜬 밥에 반찬을 걸쳐 야무지게 입 속으로 집어넣고는 오물오물 맛있게 씹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귀여웠다. 의건과의 묵은 감정이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 드세요?”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밥을 먹다가 비로소 머쓱해졌던지, 다니엘은 고개를 들어 지훈을 바라보았다.


“찬이 좀 안 맞으세요? 여기 음식 그래도 깔끔하고 맛있게 하는 편인데.”
“아, 아니에요.”


순간 이런 저런 생각에 너무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는 걸 깨닫고 지훈은 허둥지둥 젓가락을 들었다.


“밥 참 맛있게 드시네 싶어서.”
“아.”


다니엘은 웃었다.


“맛있게 먹으면 맛없는 것도 맛있고 맛없게 먹으면 맛있는 것도 맛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결이 고운 계란찜 한 숟가락을 떠서 밥에 얹었다. 예전에 계란찜 맛있는 백반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거기가 어디였더라. 그 집의 계란찜은 뚝배기에 나왔다. 다른 집 같으면 순두부찌개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따위를 1인분씩 담을 뚝배기에 연방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계란찜이 한가득 나오곤 했다. 물론 제풀에 열기가 식으면 넘칠듯하던 계란찜은 숨이 죽어 뚝배기 안으로 푹 꺼졌다. 그 위로 자작한 물이 고였고, 그 물을 요령껏 떠서 홀짝홀짝 먹곤 했었다. 숭숭 구멍이 뚫리고 군데군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시퍼런 부분이 더러 있기도 했고, 겉에 대충 뿌린 대파가 아삭아삭 씹히던 그 투박한 계란찜 맛이 지금 왜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백반집은 의건이 좋아해서 자주 가던 집이었다.


“눈 많이 와요?”


화제도 돌릴 겸, 지훈은 애꿎은 눈으로 화제를 돌렸다.


“네, 많이 왔더라구요.”


다니엘은 잔뜩 뜬 밥을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길이 끊긴 모양이라. 기자님 픽업하러 가기 전에 이것저것 사온 게 참 다행이다 싶네요.”
“뭐야. 정말 고립된 거예요?”
“말씀드렸잖아요. 가끔 이런 일 있다고요. 먹을 거랑 전기 같은 건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은 마세요.”
“여기 핸드폰 안 터져요? 아침에 보니까 애가 영 빌빌대던데.”
“핸드폰요? 어… 늘 그런 건 아닌데 가끔씩 그럴 때가 있어요. 왜 위성 방송 같은 거 비나 눈 심하게 오면 신호미약 뜨는 그런 것처럼요. 그래도 아예 끊기거나 그런 일은 잘 없는데.”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추리 소설은 점점 퇴화할 수밖에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핸드폰의 GPS 이력만 조사해 봐도 가짜 알리바이 따위는 간단히 무너뜨릴 수 있다. CCTV까지 갈 것도 없이 길에 서 있는 차들의 블랙박스만 털어 봐도 어젯밤 누가 어디에 드나들었는지를 전부 알 수 있다. 이런 세상이었다. 반짝 오는 폭설 정도로 고립된 산장의 연쇄살인 같은 걸 상상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세상이었다.


“어디 나가실 일 있으세요? 눈은 다 치워놨는데.”
“언제요? 오늘 아침 내내 바빴잖아요.”
“기자님이 인터뷰 하시는 동안에요.”
“아니 왜 강 비서님이 그런 것까지.”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또. 이 사람은 의건이 아닌데도.


“어차피 저택 밖에 나갈 사람도 없잖아요.”
“눈은 내릴 때 그 때 그 때 치워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해요. 내릴 땐 눈인데, 쌓여서 얼면 얼음덩어리거든요. 그거 치우려면 진짜 힘들어요.”


딴에는 납득할만한 이유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실이 이미 지훈에게는 이유가 아닌 핑계로 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속이 상했다. 왜 그렇게 남을 위해 하는 자신의 수고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지.


“오전 인터뷰는 어떠셨어요?”


마음이 불편했던지 다니엘은 짐짓 딴소리를 했다. 이런 대화가 불편하냐고 대놓고 물어볼까 하다가, 지훈은 마침 입 속으로 집어넣은 밥 한 숟가락과 나물에 섞어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이 상황을 바꾸어놓을 힘이 없는 사람에게 자꾸만 그 불편함을 캐어묻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어서.


“누님 얘기를 좀 많이 했어요.”
“아, 누님.”
“사실 그 얘길 들으려고 온 거 아니긴 한데, 이해는 가요. 아마 선생님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을 테니까요.”
“네, 아마도요.”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나간 얘기까지는 몰랐는데, 누님 이야기 얼핏 들은 적은 있어요. 굉장한 천재셨대요. 미술 쪽으로.”
“미술? 누님도 미술하시는 분이셨어요?”
“네. 선생님 말씀으로는 본인은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정도의 천재셨다고. 아마 앞으로도 한국에 그런 화가는 안 나올 거라고 그러셨어요.”


규원의 누나는 미술을 하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규원이 자신은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천재라고 평할 정도로.

물론 어린 시절의 천재가 자라서도 천재라는 보장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어린 시절의 천재라는 것은 대부분이 부모의 환상 혹은 과장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것이 개입되지 않은 진짜 천재라 해도, 그 천재가 무사히 천재로 자라기는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규원의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어린 동생의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등학교 때 집을 떠났고, 그 후로 한 번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규원의 누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지가 지훈은 슬그머니 궁금해졌다.










식사를 마친 후 다니엘은 트레이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추운 날씨였지만 환기도 할 겸, 지훈은 창문을 열었다. 눈은 참 꾸준히도 내리고 있었다. 아까 눈을 치웠다지만 지금쯤은 또 그만큼 쌓여 있지 않을까. 지훈은 저도 모르게 창문으로 고개를 디밀어 잘 보이지도 않는 저택의 입구 정문 쪽을 건너다보려고 애썼다.

문득 핸드폰 생각이 났다. 아직도 통화불능일까. 회사에 전화를 한 통쯤은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신경이 쓰였다. 지훈은 책상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집어 왔다. 그런데 통화불능이 문제가 아니라 배터리가 10 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에 충전하는 것을 깜빡한 탓이었다.


“젠더가 어디 갔더라.”


지훈은 책상을 더듬어 핸드폰의 젠더를 찾았다. 고장 난 충전기를 산다 산다 하면서 번번이 잊어버리고, 보조베터리와 USB 케이블로 충전을 대신하고 있는 참이었다. 열어둔 창문 때문에 방 안이 추워져 손이 곱은 탓일까, 한참이나 책상을 더듬다가 집어든 젠더는 아차 하는 순간 지훈의 손에서 미끄러져 침대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지훈은 한참이나 이맛살을 찌푸리고 귀먹은 짜증을 내다가, 마지못해 침대 아래로 허리를 숙였다.

이 방은 꽤나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지만 침대 아래까지는 손이 미치지 않은 모양으로, 침대 아래에는 뽀얀 먼지가 제법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맨눈으로는 뭐가 아디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아, 지훈은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 컴컴한 침대 아래에 디밀었다. 그러고도 젠더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지훈은 저 편 안쪽에 있는 어떤 것이 플래시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냥은 손이 닿지 않아,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팔을 집어넣는 수고를 해야 했다. 간신히 그 젠더로 추정되는 물건을 손가락 끝에 걸고 팔을 빼내자 소매는 먼지가 묻어 엉망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집어낸 물건을 들여다본 지훈은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


지훈이 발견한 것은 십자가 모양의 피어싱이었다. 의건이 즐겨하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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