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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Everybody Lies 12











규원의 그 물음은 어딘가 음울한 파장으로 지훈에게 다가왔다.

창작물의 영역에서,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을 모방했다, 혹은 훔쳤다는 가치 판단은 매우 애매한 부분에 머무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토끼인 그림이 저렇게 보면 오리로도 보이는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도형처럼, 그것은 보기에 따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월하정인’이 도작이라는 증거는 예의 색채분석 결과뿐이었다. 물론 그 결과는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기는 했다. 사람이 손으로 팔레트에 물감을 혼합해 만들어내는 색채란 흉내 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그 색채가 그렇게나 유사하다는 것은 그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어떤 종류의 모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월하정인’이 도작이라는 뜻이 되는가 하면, 꼭 그렇다고만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긴 하죠. 이제 와서는 별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지만요.”


지훈은 대답했다.


“이제 와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난다고 해도, 이미 돌아가신 분이 살아 돌아오시지는 않을 테니까.”


‘월하정인’ 사건은, 처음에는 화단에서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다루어졌다. 다만 그 일에 크리스티 경매까지 연루되었다는 것, 그래서 ‘쪽팔리는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한국의 대중적인 정서를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 정도였다. 어차피 먹고 사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고상한 동네’에서 벌어진 일에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고 ‘월하정인’을 그린 원윤희라는 신인 화가에게 화살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문라이트 레이디’로 사건의 진상이 대중들에게 지나치게 널리 알려져 버린 이후였다.

그리고 그 소설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의건이었다.


“그렇죠.”


대꾸하는 규원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와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결론이 난대도,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테고 말이죠.”


정작 ‘도작’을 당한 것으로 지목된 신은미 화백은 이 일에 대해 말을 아꼈다. 본래도 과묵한 성품으로 유명했던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존재하는 색깔을 고스란히 빼다 박은 이 그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초연한 태도는 대중의 분노에 오히려 불을 지폈다. 신은미 화백과 윤희가 사제지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윤희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정점을 찍었다. 군사부일체. 예전 같으면,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했는데, 그런 스승의 색채를 도둑질해 그린 그림으로 감히 이름을 내려고 한 신인 화가에 대한 대중의 심판은 신랄하다 못해 잔인했다. 잠시 입을 다문 사이, 지훈의 머리 속에는 한바탕 태풍이 불던 것처럼 시끄럽던 그 몇 달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그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의건이었다.


“기자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규원은 그렇게 물어왔다.


“‘월하정인’이 정말로 도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훈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훈은 아마도, 의건이 탈고한 ‘문라이트 레이디’를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이었을 것이었다. 인터넷에 연재된 글에 댓글을 달던 작가와 독자 사이를 벗어나 서로의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게 된 두 사람은, 그러나 그 후로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작가와 독자 사이를 유지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이면 두 사람은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다섯 권씩 빌려 왔다. 그 책을 다 읽고, 바꾸어 읽고, 그 책은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나빴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의견은 비슷하기도 했고 어떻게 같은 글을 읽고도 이렇게 다를까 싶을 만큼 다르기도 했다. 더러는 지훈이 역시 글 쓰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물러섰고 가끔은 의건이 그런 걸 캐치하다니 역시 자기는 날카롭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얼굴로 타협점을 찾을 때보다는 서로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입씨름을 벌이다가 더러는 삐지고 더러는 토라질 때가 더 많았다. 물론 그런 날은 화해를 핑계로 더 뜨겁게 몸을 섞곤 했었다.


“글쎄요.”


의건은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을 대부분 지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곤 했다. 파일이 든 usb를 건네는 의건의 얼굴은 대개 웃음이 나올 만큼의 자신감에 차 있곤 했다. ‘문라이트 레이디’도 그랬다. 초고를 내미는 의건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고, 심지어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던 것을 지훈은 기억하고 있었다.

의건은 자신이 써 낸 소설과 그 결론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저는 문화부 기자기는 해도 미술에 대해 그리 조예가 깊지는 못해서.”


의건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그렇게 발표한 ‘문라이트 레이디’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무난히 안착했다. 드라마화 제안과 영화화 제안이 지훈이 아는 것만 다섯 건 이상이 들어왔다. 그 책 한 권으로, 의건은 그가 그동안 쓴 모든 글들을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벌게 되었다. 그동안 의건이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잔재주나 부리는 3류 글쟁이 취급을 하던 평론가 중에는 공식적으로 의건에게 사과를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와 비례해 의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바깥을 보고 있는 순간이 잦아졌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등 뒤로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거나 허리를 껴안아야만 움찔 놀라며 이 쪽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힘없이 웃으며 그냥 좀 피곤하다고, 아마도 글을 너무 열심히 써서 그런가 보다고 누가 들어도 변명인 게 틀림없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의건은 사라졌다. 지훈의 곁에서. 그 어떤 작별의 인사도 없이.


“이런 예민한 문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해도 될지, 잘 모르겠네요.”
“묵비권입니까.”
“묵비권씩이나요.”


지훈은 피식 웃었다.


“어설프게 주워듣고 아는 걸 가지고 아는 체 했다가 망신당한 일이 몇 번 있었거든요. 그 여파 정도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군요.”


규원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 노트북 대신 녹음기를 쓴다는 말을 하실 때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현명하신 분이시군요.”
“아닙니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몸을 사리는 법을 좀 터득했다고나 할까요.”


‘월하정인’, 그리고 ‘문라이트 레이디’.

의건의 실종에, 이 두 가지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훈은 늘 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의건의 등을 떠민 것인지, 그 점을 생각하는 것은 늘 두려웠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지훈은 그 모든 것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의식의 깊은 곳에 처박아 버렸다. 내 앞가림만으로도 버겁다는 것은 훌륭한 핑계였다. 취업도 해야 했고, 취업을 한 후엔 직장에 적응해야 했고, 떨려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 지훈은 그 모든 것을 잊은 체 하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월하정인’이 도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버거우면, 똑같은 질문을 상대에게 해라.

언젠가 선배에게서 들은 비장의 팁을, 지훈은 숨겨둔 은장도라도 꺼내는 기분으로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작 질문해 놓고 보니 과연 그 질문에 대해 규원이 뭐라고 대답할지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제 생각이요.”


규원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월하정인’은 도작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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