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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Everybody Lies 8











다니엘은 층계 옆을 더듬어 불을 켰다. 다른 곳에 켜져 있는 불들과 비슷하게 눈에 띄게 밝지는 않았으나, 최소한 발 앞의 계단을 분간할 정도는 되어 훨씬 나았다.

다니엘의 방 안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다니엘은 지훈에게 의자를 양보하고 자신은 침대에 대충 걸터앉았다. 지하라고는 해도 저택 자체가 지어진 기반이 경사가 져 있기 때문인지 벽 위쪽으로 조그만 채광창이 나 있었고 그리로 흩날리는 눈발이 흘끗 보였다.


“매일 이렇게 늦게 자요? 하긴 밤 아니면 글 쓸 시간이 별로 안 나기도 하겠네.”


적당히 두툼한 도기 머그컵 밖으로 속에 담긴 커피의 온기가 배어나왔다. 후후 불지 않고 홀짝 마시기에는 커피는 아직은 조금 뜨거웠다.


“글까지 쓰고 언제 자요?”
“대중없어요. 빨리 잘 때는 한 시, 늦으면 세 시나 네 시. 그렇게 잔 날은 다음날 좀 고생하고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 하루 남짓, 이 아틀리에에 와서 지켜보고 깨달은 것은 다니엘이 하는 일은 규원의 비서라기보다는 몸종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에 흔히 있게 마련인 일방적인 감정의 통로 노릇까지 하고 있는 것. 그런 나날에 잠까지 모자란다면, 그건 정말로 고된 일일 터였다.


“선생님이 일곱 시에 일어나시면 그 전에 일어나야 선생님을 깨울 거 아녜요.”
“아, 선생님은 제가 안 깨워도 잘 일어나세요. 워낙 예민하셔서 핸드폰 알람 딱 한 번만 듣고도 일어나시거든요. 제가 못 그래서 탈이지.”


지훈은 애매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 깨우는 절차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가 이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높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규원이 잠에서 깨어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니엘의 도움이 필요할 터였고, 자신이 찾는 그 타이밍에 다니엘이 늦잠을 잔다거나 해서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가차없이 그 사실을 힐책할 터였다. 그 이외의 다른 생각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 하는 일이 막 힘들고 그런 일은 아닌데요. 하루 종일 선생님 일거수일투족에 다 신경을 쓰고 있어야 되니까요. 선생님이 워낙 규칙적으로 생활하시는 분이셔서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긴 한데, 그래도.”
“빨리 자리 피해줘야겠네요.”


커피 한 모금을 훌쩍 마시고 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었다.


“벌써 한 시도 훨씬 넘었는데, 지금 자도 한 다섯 시간 정도밖에 못 자겠네요.”
“아, 저.”


다니엘의 눈이 잠시 흔들리는 듯 느껴졌다. 그는 핸드폰 액정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었다. 크고, 길고, 적당하게 마디가 불거진 그 손조차도 다니엘은 의건과 비슷했다.


“저랑 얘기 좀 더 하다가 가시면 안 돼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훈의 귀에, 다니엘은 그런 말을 해 왔다. 그 말은 조금 의외여서, 지훈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다니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방에, 이 늦은 시간에 조금 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을 들여놓고도 그는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선생님하고는 대화를 많이 안 해요. 선생님이 보통 말하고 저는 듣기만 하니까요.”


다니엘은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가끔은 하루 일과 다 끝나고 자려고 누우면 하루 종일 네, 네 밖에 안 했구나 싶은 날도 있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몰라 지훈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어떤 형태의 ‘분출’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의건이 사라지고 난 후, 자의 반 타의 반 입을 다문 채 며칠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느꼈다.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슴 속이 텅텅 비어, 말할 만한 모든 것들이 고갈된 그 순간까지도.


“근데 무슨 얘기 할까요? 우리 지금 인사한 지 한나절 밖에 안 된 사인데.”
“기자님 예전 애인 분도 글 쓰시는 분이라셨죠. 괜찮으시면 그 분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순간 저도 모르게 표정이 흐려졌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저렇게나 똑같은 얼굴에,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의건의 이야기를 꺼내는 다니엘의 모습은. 자신은 아직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완전히 인정하지 못했는데,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아.”


지훈은 잠시 입을 다물고 말을 골랐다. 그것은 다니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분히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 사람은, 원래는 인터넷에 글 쓰는 사람이었어요.”


그의 첫 글은 과거에 사랑했던 한 여자를 스토킹하는 남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1인칭 소설이었다.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자에게서 결별을 통보 받은 그는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그녀에게 매달리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내기로 마음먹은 그는 그녀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토킹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의 SNS를 읽고, 그 SNS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SNS를 일일이 찾아다니고, 그녀가 SNS에 올리는 사진들의 배경에 찍힌 간판과 풍경으로 그녀가 어느 곳을 다니는지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그녀가 내다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장면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구겨진 담뱃갑과 담배꽁초를 발견하고, 천 일도 넘게 만난 그녀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알지 못했던 자신에게 당황했다.

그 글은 깔끔하거나 아름다운 글이라고는 입에 발린 말로라도 할 수 없는 글이었다. 그러나 그 글의 전반을 흐르는 뒤틀리고 병든 우울한 정서가 지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그 당시 거듭된 취업 실패와 단절된 인간관계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자신의 마음과 미묘하게 공명하는 그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저는 그 글의 독자였고요.”


우와, 라고 중얼거리듯 다니엘은 소리 없이 입술을 벌렸다. 그것 하나만은, 그는 의건과 같지 않았다. 그는 함부로 놀라지도, 충격 받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한 번은 글을 읽다가 진짜 울컥 받히는 장면을 읽었는데.”


그렇게 몇 번이나 그녀가 내다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지던 그는 어느 날 문득 허탈해진다. 이 쓰레기를 뒤져 자신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그런 것을 자문했다. 하다못해 쓰다 버린 콘돔이라도 찾고 있는 걸까.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그래서 나를 버린 것이라는 증거를. 그녀가 다른 남자와 놀아났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썩은 음식물과 영문을 알 수 없는 영수증들, 담배꽁초, 말라버린 물티슈 따위를 뒤지고 있는 자신의 꼴이 너무나 처량하고 한심스러워 뒤지던 쓰레기를 다시 봉투 속에 집어넣고 묶어 그녀의 집 앞에 갖다놓는 장면이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미친놈이라고 욕하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이유도 목적도 없이 방황하던 그 때의 자신이 비쳐 보였다. 더없이 기분이 나빠져 늘 달던 댓글도 달지 않고 연재 사이트의 북마크도 지워 버렸다. 그러나 그 부분의 서술들, 묘사들, 독백들이 한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웠다.

그래서 결국, 다시 그 글로 돌아가 몇 천자쯤 되는 아주 긴 댓글을 썼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엄청 긴 댓글을 썼어요.”


자신이 그 사이트에 가지 않은 것은 닷새 정도였다. 그는 이틀에 한 번 꼴로는 글을 올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사이트에 발을 끊은 동안 그의 연재도 중단돼 있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 편에는 왜 다음 글이 올라오지 않느냐는 독자들의 독촉 섞인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거기에 답글을 썼더라고요.”


오셨네요. 님 댓글이 없으니 다음 편 쓸 기분이 안 났어요.

처음으로 받아본 의건의 댓글은, 그런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매 연재분이 올라올 때마다 댓글로 대화하는 사이가 됐고.”


처음엔 존댓말이었다가, 점점 반말이 섞이기 시작했다. 사이트의 댓글란을 벗어나 메신저로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고,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전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들은 그의 음성은 낮고 짙었다. 그렇게, 모니터 속에만 존재했던 강의건이라는 사람은 세상 밖으로 걸어나와 지훈의 연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만나고, 사귀게 됐었어요.”
“부럽다.”


다니엘은 중얼거렸다.


“글 가지고 이야기할 사람 있는 게요.”
“그러게 보여 달라니까. 나 꽤 예리한 독자예요. 그 사람도 그렇게 말했는걸.”
“안 돼요. 창피해서 못 보여 드려요.”


다니엘은 벌떡 일어나 지훈이 앉아있는 의자 옆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그러나 지훈은 그 순간 흰 화면 위에 띄워진 몇 줄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다니엘이 쓰고 있는 것이 지나치게 상세하게 남녀의 성교를 묘사하는 종류의 소설이라는 사실이었다. 낯 뜨거울 만큼 저속한 표현과, 명칭을 사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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