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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Everybody Lies 1











크리스티 경매에는 딱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영국에 있는 본사는 아니고, 홍콩 지사의 경매였다. 빅토리아 항구 바로 앞의 인공섬에 있는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솔직히 다른 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참관한 경매는 지루했고, 가끔은 하품이 나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시간이 1년 넘게 지난 지금 기억나는 것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던 컨벤션센터의 장관과 억 단위 숫자가 몇 초 단위로 바뀌는 전광판, 그날 하루 그곳에서 약 천억 원대의 돈이 움직였다는 선배 기자의 말 뿐이었다. 하루 낙찰액 천억 원. 서울 옥션의 1년 치 낙찰 규모에 맞먹는 금액이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전광판의 숫자 정도로만 스쳐 지나가 버리는 몇 억이라는 숫자는 지훈의 감각을 닳게 만들었다. 너 바다이야기가 뭔지 아냐? 지훈의 눈이 흐리멍텅해진 것을 눈치 챈 선배 기자가 속삭였다. 몇 년 전에 되게 유행하던 빠찡고 비슷한 불법 게임 있어. 취재한다고 그런 거 하는 데를 한 번 가 봤는데, 5만 원짜리가 막 뭉칫돈으로 돌아다니는데, 나중엔 그거 한 묶음 정도는 돈 같이 보이지도 않더라. 그거 한 묶음이 얼만데요. 보통 백 장이 한 묶음이니까 500이지. 그 현실성 없는 금액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인 최초로 10억을 호가하는 낙찰가를 기록한 그림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오오 하는 소리를 냈다.

사실 하룻밤 사이에 천억도 움직이는 그런 곳에서, 10억이 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훈이 갔던 그 날도 단일작품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85억을 기록한 한 중국 화가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몇 년 째 7억 대에서 맴돌고 있던 한국 화가 최고 낙찰가 기록을 단번에 깨뜨렸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누군데요, 하는 지훈의 질문에, 윤규원이라는 답이 나온 것은, 그건 또 그럴만한 일이었다.

그의 그림은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동백 아가씨’ 같은 한국의 트로트 가요 제목을 딴 연작 그림들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색채와 이미지로 채운 화폭 위에 그림의 제목을 따 온 트로트 가요의 가사 한 줄을 달필로 쓰고, 그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낙관을 찍어 그림을 마무리하는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그 ‘낙관’에 매력을 느끼는 유럽 쪽 콜렉터들이 많아 그의 그림은 무서운 기세로 낙찰가가 오르는 중이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한국 화가 최고 낙찰가 기록을 갈아치울 줄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10억이나 받았구나―하는 생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지훈에게, 편집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 윤규원이 너랑 인터뷰를 하겠단다.”
“예?”
“여사 인터뷰도 아니고 작품 제작 과정 자체를 공개하겠대. 대박이지.”
“….”


지훈은 말없이 눈을 깜박였다.

규원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라는 것, 그리고 남자라는 성별 정도 외에는 그가 어떤 학교를 졸업해 어떤 교수 아래서 사사했고, 트로트 가요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독특한 화풍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일체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이 화단의 기린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매체들은 많았지만 그는 그 어떤 매체에도 자신을 드러내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전데요?”


여기서 지훈은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부에 기자가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엄밀히 말하면 문학 쪽….”
“그거야 낸들 아나.”


그러나 자신이 이 느닷없는 프로젝트에 품은 의문의 절반의 절반조차 상대에게는 전해지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확실한 건 대박칠 수 있는 기회라는 거지.”


지금이야 편집장 자리에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훈의 편한 선배였던 그는 느긋하게 지훈의 굳어진 어깨를 주물렀다. 잘 부탁한다는 듯이.


“무려 자기 아틀리에로 오라니까, 아예 가방 싸들고 한 이틀 갔다 와. 휴가 간다 생각하고.”
“휴가는 무슨 놈의 휴가에요. 설마 이거 보내놓고 지난 여름에 다 못 쓴 휴가 때우시려는 거 아니죠.”
“써오는 기사 내용 봐서.”
“뭔가 불안한데.”










규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올 겨울 들어 가장 낮은 수은주를 기록한 다음 날이었다.

졸음에 떨어지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었다든가 하는 경우라면 기억에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을 더듬는 등의 방법으로 잠에 떨어진 그 순간을 기억해 내는 것이 어슷하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아닌 경우라면 대충 자신의 의식이 어느 순간부터 멀어졌는지를 정확히 복구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전날 밤 잠을 설쳐 몹시 지친 상태에서, 히터를 잔뜩 튼 고속버스 안과 같은 곳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지훈이 눈을 뜬 것은 목적지 도착이 거의 가까워 오는 어느 순간이었다. 졸다 깬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으로는 어딘지 알 수도 없는 전원의 풍경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눈이 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지훈은 생각했다. 눈 오는 날의 출장이라니, 딱 질색이었다. 어차피 인터뷰는 아틀리에 내에서만 진행될 예정이라 차를 가져 오지 않은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오늘은 규원의 비서가 터미널로 픽업을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날이 추워진 탓인지 반짝 맑아진 하늘에는 드문드문 새털 같은 가벼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해도 선뜻 오한이 들어, 지훈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몇 번 동동 발을 굴렀다.

편집장의 말마따나 내일까지는 굳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 인터뷰를 하고 내일 아침쯤 서울로 돌아가 밤까지 초고를 쓰고, 그 내용을 다듬어 모레쯤 기사로 낼 예정이었다. 아니, 기사로 내는 타이밍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화급을 다투는 특종도 아니고 유통기한이 있는 스캔들 기사도 아니니까. 기사의 내용을 보아 가며 편집장과 공개하는 시기를 결정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딱히 커피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저절로 따뜻한 것이 생각났다. 지훈은 터미널 입구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온장고 속에 든 가장 뜨거운 캔 커피를 계산하고는 손바닥 안으로 굴렸다. 추위에 곱아진 손이 녹자 그래도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해마다 늘 이런 식이어서, 끼지도 않을 장갑을 샀다가, 귀찮아서 끼지 않고 옷장 속에 처박아버리거나 술김에 한 짝을 잃어버려 남은 한 쪽도 버리거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머리 속을 스쳐갔다. 이게 다 손이 시려서 그럴 것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괜히 코트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전화가 온 곳은 없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도 있는데 이 근처에서 사람 픽업하러 온다는 사람이 이렇게 늦다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핸드폰 번호를 모르니 연락 같은 것을 해 볼 수도 없었다. 사방에서 찬바람이 밀려들어오는 이 작고 허름한 터미널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데리러 올 때까지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지훈을 짜증나게 했다. 시간이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손 안에 굴리고 있던 캔 커피는 슬슬 식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커피는 완전히 식어, 들고 있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될 터였다. 그러기 전에 따서 마시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지훈은 캔 커피를 몇 번 흔들어 땄다. 커피 주제에, 탄산음료처럼 몇 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입 속으로 들어온 커피는 이젠 따뜻하지조차 않은 미지근한 온도였다.

날씨가 이렇게 춥지만 않으면 담배라도 한 대, 하는 생각을 막 하던 순간이었다.

핸드폰 위로 낯선 번호 하나가 떠올랐다. 지훈은 지그시 미간을 찌푸리고는, 미처 삼키지 못한 커피를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박지훈입니다.”
[아, 박지훈 기자님?]


그 목소리가 낯이 익어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그것은, 머리 속에 든 음성 데이터들을 일일이 비교 대조해 보기도 전에 발작적으로 일어난 반응이었다.

분명, 아는 목소리였다.


[저쪽 편의점 앞에 회색 코트 입으신 분 맞죠. 갈게요.]


전화는 지훈이 뭐라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뚝 끊어져 버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아주 급격히 나빠졌다. 이 목소리는, 그랬다. 어딘지 알지 못할 구멍으로 한 방울씩 새는 물처럼 지훈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뭔가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대화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억지로 마음 한 편에 묻어놓은 어떤 것과, 조금 전 핸드폰 너머 들린 목소리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데는.


“박지훈 기자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강…의건?”


지훈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3년 전 지훈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바로 그 사람이었다.










+) 존버 맞이 지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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