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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회자정리會者定離 8











『오동나무 상상가지 봉황같이도 잘살 때 건구건명 이댁 가정
천금같은 아들따님 성명삼자로 저달만 그린 듯이』










회자정리會者定離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나니 이미 헤어짐이 있다










지훈이 깨어난 것은 윤희가 소멸한 그 밤이 지난 새벽이었다.

지훈은 소리 없이 일어나더니 이불을 걷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여상스레 운동화를 꺼내어 신고, 그는 마치 바깥에서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의건은 말없이 몇 발 뒤에서 지훈의 뒤를 따라갔다.

지훈의 걸음은 빠르지는 않았으나 느리지도 않았고, 멈추어 서지도 않았다. 지훈은 저 앞에서 무언가가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집을 나가 길을 따라 뒷산을 향해 갔다. 그 발걸음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흐릿하게 짐작이 갔다. 그리고 의건의 생각대로, 지훈의 목적지는 뒷산의 당산나무 앞이었다.

유화는 그 곳에서, 목을 매어 숨져 있었다.

의건은 와락 달려들어 지훈을 끌어안고 그 눈을 가렸다. 아이의 몸은 더우면서도 차디찼고, 그 심장의 박동은 분명 뛰는 듯 하면서도 그 자리에 멎어있는 듯도 보였다. 지훈은 떨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제가 본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만큼.


“지훈아.”


거듭거듭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들숨날숨을 몰아쉬는 숨결에서 색색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허옇게 마른 입술 사이로 내쉬는 숨결에서는 옅은 단내가 났다.


“가자.”


지훈을 달래는 의건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조금 떨리고 있었다.


“감기 든다.”


지훈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아, 의건은 할 수 없이 아이를 제 품에 한껏 끌어안은 채 몸을 돌렸다. 품속에 싸안기에는 조금 자란 나이였지만 목을 맨 제 조모의 꼴을 더는 보여줄 수 없어 품속에 고개를 처박듯 끌어안은 채 최대한 걸음을 빨리 했다.

이 어리고 가엾은 것에게 도대체 얼마나 못 볼 꼴을 더 보여야 하는 것인지, 의건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본래 지훈이 누웠던 이부자리 위에 지훈의 몸을 내려놓고서야 의건은 저도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흘끗 돌아본 뒷모습에는, 이제 새기 시작한 아침 햇살의 반대 방향으로 희미한 그림자가 져 있었다. 새삼, 유화가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새삼 눈앞이 캄캄해 오는 느낌에 의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제부터는,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저기.”


한참만에야, 지훈은 고개를 들어 의건을 바라보았다.

잔뜩 잠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그야말로 털끝만큼의 떨림도 없이 착 가라앉아 있어 오히려 의건을 당황하게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떼는 것인지, 저도 모르게 긴장될 만큼.


“아까 그거.”


아이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만큼 차분했다.


“할머니죠.”
“….”


의건은 잠시, 대답할 말을 잃었다.

이 일을, 물론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꼭 지금이어야 할까. 이제 겨우 열 살 먹은, 세상에 제 피붙이라고는 하나 남김 없이 죽어버리고 저 혼자 남은 아이에게. 네 조모는, 네게 들 액을 막고자 제 목숨을 살라 나를 네게 붙였다고, 그 말을 굳이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일까. 제 아무리 천신이라 해도, 그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서, 의건은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너거 할머니.”
“….”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의건은 자신을 쳐다보는 지훈의 말간 눈과 마주했다.

하마터면, 그놈 참, 하고 중얼거릴 뻔 했다. 이제 겨우 열 살, 그러나 지훈의 눈은 의건의 기억 속에 있는 윤희의 눈과 너무나 닮아 있어 저도 모를 탄식이 입술 밖으로 밀려 나왔다. 그 눈은 구슬 같기도 했고 만월의 달 같기도 했다. 둥글고 큰 눈에, 소리 없이 깜박여지는 속눈썹의 선이 유독 가련하던 것을 의건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훈의 눈은 벌써, 혹은 이미 그런 어미의 눈을 닮아 있었다. 아니라는 말은 입에 발린 말로라도 하지 못하게끔.


“너거 할머니가.”


그러나 이미 의건은 알았다. 이 녀석은, 이미 모든 걸 눈치 채 버렸다는 것을.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할머니가 저를 혼자 남겨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전부 알아버렸다는 것을. 제 어미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미의 일과 마찬가지로.


“왜.”


그래서, 힘을 주어 부정하는 목소리는, 어쩐지 맥이 없었다.


“니를 놔두고.”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게 맥이 풀려, 의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이를테면, ‘타협’이었다. 정말로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으로 해 두겠다는 뜻이었다. 정말로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으로 해 두겠다는 말이니, 앞으로 다시는 할머니가 어디에 갔는지, 왜 가는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 하는 것들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그렇게 덮어두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증거로, 지훈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럼, 할머니가 어디에 갔는지, 왜 갔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하는 것들을. 그저 그 자리에 그린 듯이 앉아 눈만을 깜빡이며, 저보다 한참이나 키가 큰 데다 서 있기까지 한 의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훈은 콜록, 하고 마른기침을 토해 놓았다.

그것은 누가 들어도, 억지로 하는 기침이었다. 딱히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목을 돋우어 억지로 뱉는 기침이었다. 그렇게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다가, 지훈은 훌쩍이기 시작했다. 목구멍으로 잘못 넘어간 침에 사례가 들리기라도 했는지, 제법 쿨럭거리는 기침을 몇 번 하고, 지훈은 숫제 어깨를 늘어뜨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이, 열 살 먹은 어린아이가 어렵사리 찾아낸 울어도 되는 핑계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의건은, 지훈의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아 그 어린 몸을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앞섶이 젖도록 눈물만을 흘리다가, 지훈은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목구멍 안쪽이 울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말없이 어깨를 끌어안고 토닥거리자 지훈은 그제서야 조금씩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나마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 정도나 겨우 내더니, 한참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제 신세가 가련해졌던지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열 살 먹은 어린애의 팔자가 이렇게나 기박하기도 쉽지 않노라 싶은 마음에 의건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


운다고
울어서
무언가가 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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