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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회자정리會者定離 7











『명이 짧아도 못사느니 명만 길어도 복이 없이는 못사느니
짜른 명은 잇어주고 긴명은 사려 담어서 무쇠목숨에 돌끈달아 백세상수 누려살제』










회자정리會者定離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나니 이미 헤어짐이 있다










윤희가 지훈을 낳고, 삼칠일도 지나기 전에 당산나무에 목을 맨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었다. 제가 낳은 핏덩이를 내려다보던 얼굴이 처연하고 서글퍼, 모진 마음을 먹었구나 하는 것을 짐작은 하였다지만, 그래도 또 인간의 계집이란, 어미란, 제 속으로 풀어 낳은 것을 모질게 외면하지 못하여 기박한 제 팔자를 저만치 밀어놓고 독하게 입술 한 번 질끈 물고 그렇게 살기도 하기에 그리하려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윤희는 결국 그리 하지 못하고, 제 목을 제가 매다는 것으로 순탄치 않았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의건은 그렇게, 오래 전 제가 택했던 신제자(神弟子)의 넋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윤희야. 아가.”


이 한 목숨 이 한 평생 온전히 천신님 만신님께 바쳤으니 이 어리고 가엾은 것만이라도 제 팔자대로 살게 해줍시사 강짜 아닌 강짜를 부리는 유화의 서슬에 떠밀려 어차피 그 인생 평탄하게 풀리기는 그른 것을 알면서도 몸주로 들지 않았다. 그러나 신내림을 받지 않고도, 인간의 팔자가 사나워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윤희가 그랬다. 열 달 품은 핏덩이를 세상에 내놓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한창 때 장정도 쉽게는 못 오르는 뒷산 당산나무까지나 올라가 목을 매달게 만든 것은 귓것의 소행이 아니었다. 사람의 짓이었다.

네 이리 될 줄 알았더라면, 내 억지로라도 그 명을 붙들 것을 그리했던가.


“니 아들이다.”


이미 10년을 구천을 헤매 다녀, 넋은 이미 사람의 말을 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라는 그 말만은 알아듣던지, 넋의 얼굴은 단박에 고통스레 일그러졌다.


“니가 이러믄.”


유화를 당산나무 옆에 떼어놓고 오기를 잘했다고 의건은 생각했다. 제가 살리려다가 되레 죽여 버린 딸이, 여직도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다가 이제 하나 남은 손자의 몸주로 들려 하는 이 기막힌 꼴을, 일평생 만신으로 산 그녀라 해서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그것은 의건으로서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임마는 안온하게 못 산다.”


넋의 뺨을 타고 눈물 비슷한 것이 뚝뚝 흘러 맺혔다.

몸주로 들겠다는 마음 같은 건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제야 들었다. 어쨌든 그녀는 어미였다. 제 속으로 낳아 놓고, 첫 걸음마 떼는 것도 첫 입을 떼는 것도 보지 못했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학교에 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지훈이 자라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아들 옆에 있고 싶다.

지금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그 소원 하나 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니 마음은 알겠지만은.”


내키지 않는 말을 하려는 의건의 목소리는 떨렸다.


“니는, 여 있으믄 안 된다.”


순간 쐐액, 하고 새된 바람이 불었다. 얼핏 몸을 틀어 비켜섰으나, 이미 뺨으로 아주 얇고 가는 생채기가 생겼다. 뒤를 채 돌아오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칼날 같은 바람이 불었다. 아이가 있는 방 안이었다. 여기서 더 물러섰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의건은 손을 뻗어, 달려드는 윤희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윤희의 눈은, 헤매다니는 넋들이 흔히 그렇듯 새까맣게 죽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 눈에 가득한 적의를 읽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윤희는 제 손목을 붙든 의건의 손등을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난 상처에는 피가 어리기 시작했다. 뜨끔한 통증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의건은 끝까지 윤희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안 된다.”


의건은 윤희의 손목을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봐라. 니 아들이다.”


살이 물어뜯긴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의건은 윤희의 손목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의건의 손톱이 윤희의 손목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냈다. 그럴수록 윤희의 발버둥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의건은 손목을 틀어쥔 윤희의 몸을 억지로 돌려, 죽은 듯 잠든 지훈 쪽으로 돌려놓았다.


“니 아들도.”


사실 우스운 말이었다. 한 번도 인간으로 살아보지 못한 자신이, 그런 마음을 이해할 리가 없는데도.


“너거 모녀같이.”


그래도, 의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윤희를 찾기 전 유화가 어찌 살았는지까지는 몰라도, 윤희의 몸주신이 될 뻔 한 이후 그들 모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그래 살기를 바라나.”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이나마 버둥거리던 윤희의 손이 멎었다. 의건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는, 원래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면 본래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얼굴이었지만.


“10년이라, 오래도 있었다.”


그러나 의건은 윤희의 손목을 쥔 손을 놓지 않았고, 준 힘을 풀지도 않았다. 그 손아귀에 틀어잡힌 윤희의 손목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흔들거렸다.


“니 그 10년 동안, 젯밥이라도 옳게 먹고 다녔나.”


윤희의 손이, 팔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곱던 여자였다. 그 눈은 구슬 같기도 했고 만월의 달 같기도 했다. 둥글고 큰 눈에, 소리 없이 깜박여지는 속눈썹의 선이 유독 가련하던 것을 의건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제 손 안에 손목을 잡힌 채 떨고 있는 이 넋의 얼굴 어디에서도 그 눈매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의건은 순간 서글퍼졌다.


“인제, 수이 가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고작이었다.


“니 아들은.”


네 아들은, 네 아들이라도, 너와 같은 생을 살게 하지 않겠다는.


“내가.”


비록 인간의 말은 잊었다지만, 알아라도 들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잘 지킬 거니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손 안에 틀어잡힌 손목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억지로 버티던 것이 사라진 순간, 의건은 순식간에 몇 발을 비틀거려 물러났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방안을 살펴보았으나 이미 윤희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사라졌다. 그것을 성불이라 해야 할지, 소멸이라 해야 할지,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순간 등 언저리로 식은땀이 왈칵 솟았다.

10년이나 구천을 헤맨 넋의 최후치고는 서글펐고, 소슬했다.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생각한 인연의 정취는, 슬프게도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아들래미가 눈에 밟혀서.”


의건은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지훈은 방금 제 옆에서 어떤 활극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의건은 몸을 돌려 잠든 지훈의 어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의건은 손을 뻗어, 땀에 젖어 들러붙은 지훈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어미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이것도 인연이니.”


의건은 몸을 젖혀 지훈의 곁에 누워버렸다.


“사는 동안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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