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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회자정리會者定離 3











『장인 삼촌 복채살 동네 방네는 불난살 이웃지간 회살살이요
도적난 데는 실물살 흙을 달아 토살인데 돌달으면 석살이라』










회자정리會者定離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나니 이미 헤어짐이 있다










귓것.

‘사람이 아닌 것’을, 조모는 그렇게 불렀다.

그 귓것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훈은 정확하게는 몰랐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훈은 어려서부터 겪어서 알았다. 누구에게 올리는지도 모르는 제사상에 차려놓은 밥 위에 나 있는 새의 발자국이라든가, 분명 잠가 놓은 문이 열려 있다든가,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 만큼 더운 여름밤 이상하게도 서늘한 기운이 도는 조모의 방 같은 것들, 그리고 오늘 자신이 겪은 그런 일들까지. 자신의 주변에 사람이 아닌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린 지훈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어서, 지훈은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문지방을 넘는 지훈의 귀에, 착 가라앉은 조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가 어디라고 따라가?”
“….”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구 그리 낼름 따라나서?”
“….”


입을 꾹 다문 지훈이 대답을 하지 않자, 성큼 마루를 내려 지훈의 앞까지 다가온 조모는 마르고 여윈 손으로 다짜고짜 지훈의 등짝을 몇 대 때렸다.


“그 놈이 어떤 놈일 줄 알고 그리 냉큼 쫓아가느냐. 응?”
“….”
“낯 모르는 인사랑은 말도 섞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입이 닳도록 일렀는데, 어찌 이리 조심성이 없어?”
“아까 그 사람.”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지만 등짝을 때리는 기세는 매서웠다. 그 손에 어린 등을 몇 대고 맞다가, 지훈은 불쑥 입을 열어 그렇게 물었다.


“‘귓것’이야?”
“….”


느닷없는 지훈의 질문에 조모는 뜨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조모는 무당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늘 득실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그런 것들에 대해 지훈에게 입을 열어 설명하지 않았다. 마치 알면 오히려 독이 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은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지훈이 조모 유화에게 ‘귓것’이라는 말을 직접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귓것이나 마나.”


헛기침을 해 목을 돋우는 조모의 목소리는 흐릿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가 알아서 좋을 일 없는 놈이니, 행여 앞으로도 마주치거들랑 아는 척도 말어. 알겠냐?”
“….”
“아 그놈 주둥이가 붙었나, 어찌 대답이 없어?”


그러나 지훈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산에서 혼자 놀다가 ‘귓것’을 만났고, 그 돌팔매질을 피하려다가 바위 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거기서 데려다가 집까지 끌고 온 것은, 아마도 방금 돌아간 그 사람일 것이었다. 그런 거라면, 그가 자신을 살려준 게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마저 저렇게 날을 세우는 조모를, 지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번 세 번 재우쳐도 지훈이 대답을 하지 않자, 조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여 들어가 눕거라.”


한 풀 꺾인 목소리로 조모는 말했다.


“놀랜 몸에 찬바람 들면 오래 간다.”


대충 여기까지였다. 그 남자를 따라 나갔다 온 것이 어느 정도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조모는 이쯤에서 일을 쓸어덮을 모양이었다. 지훈은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생각보다는 크게 야단을 맞지는 않았다는,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훈아.”


조모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지훈을 불렀다.


“뭐라더냐.”
“….”
“아까 그 놈 말이다. 그 놈이 뭐래?”
“할머니 말씀 잘 들으래.”


지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혼자 산에 가서 놀지 말고, 해지면 집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미친 놈.”


조모의 목소리는 끝이 뒤집히고 있었다. 그녀는 표가 나게 언짢은 기색을 내더니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조모는 담배를 피우기는 했지만 골초는 아니었고, 더군다나 지훈이 보는 앞에서는 어지간하면 담배를 입에 물지 않았다.


“그러게, 산엔 뭣허러 혼자 갔어?”
“….”
“놀려면 혼자 놀아. 쓰잘데없는 것에 이름 붙이지 말고. 이름 하나에 신이 하나씩 나리는 거여. 이름을 정해놓고 자꾸 부르면, 거기에 귓것이 붙는다 그 말이여. 알었냐?”


한참만에야, 지훈은 그것이 혼자 땅따먹기를 하는 것이 지루해 상대를 정해놓고 그 몫으로 땅따먹기를 한 것에 대한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름에 신이 내린다는 말은 지훈으로서는 아직은 알아듣는 것이 무리였지만, 이름을 정해놓고 자꾸 부르면 거기에 귓것이 붙는다는 말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산 같은 데 가지 말고, 동네 안에서 친구들과 놀라고 했던 아까 그 사람의 말도 결국은 같은 뜻일까.


“할머니.”


그래서, 결국 지훈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 사람, 누구예요?”
“네가 알면 뭘해?”


범상한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모의 대답은 퉁명스러웠고 동시에 더없이 거칠었다.


“앞으로는 두 번도 볼 일 없는 놈이니, 그 면상일랑 싹 잊어버리고 생각도 말어라.”
“나쁜 사람 아닌 것 같았는데.”
“나쁜 사람이나 마나.”


조모는 더럭 역정을 내었다.


“그 놈을 또 보는 날은 네가 죽는 날이니, 그리 알고. 먼발치에서라도 보이면 피해라.”
“….”
“빈 말 아니여. 참말이다. 그 놈을 또 보는 날은, 그 날이 네가 죽는 날이여. 명심해라.”


지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왜 그 산 중턱씩이나 올라와서 쓰러진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입을 열어 그 말을 조모에게 물을 엄두는 차마 나지 않았다. 지훈은 입을 꾹 다물고 순순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려면 불을 꺼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선뜻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훈은 방을 밝힌 형광등불을 그냥 그대로 둔 채,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오늘 자신의 곁에 무언가 사람이 아닌 것이 아주 가까이 왔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해악을 끼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 꼭 그 ‘귓것’이 아니어도. 밤이 내린 산은 춥다. 그 바위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은 채 산에서 밤을 지냈다가는, 그 추운 산의 밤공기가 그 어린 목숨에 어떤 해를 끼쳤을지 그것부터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오늘 정말로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훈은 쿨럭, 하고 마른 기침을 토했다. 눈꼬리 끝으로 눈물이 맺혔다.

다른 아이들은 아마도 이런 기분이 들 때 엄마를 부르며 우는 모양이던데,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선뜻 부를 용기 같은 것은 아무래도 나지 않았다.










그날 밤 지훈은 굳게 닫힌 방문 너머 조모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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