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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z

-그게 무엇이든, 걱정하지 않았다.











‘아빠’는, 며칠 후 캐나다로 떠났다.

그 자리에, 다니엘은 오지 않았다. 온 것은 지훈 뿐이었다. 공항 로비에 나란히 앉아,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훈이 근처 카페에서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만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채, 조금씩 그 얼음이 녹아가고 있었다.


“아마, 빨리는 들어오기 힘들 거다. 좋은 일로 나가는 게 아니라서.”


그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빨라도 내년 연말, 더 늦어지면, 언제가 될지 모르고.”


지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의 말을 듣고 이런 저런 것들을 알아보다가, 지훈은 ‘아빠’가 자신을 위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되레 왜 이렇게까지, 내게 알리지도 않고 해 놓으셨을까 싶은 마음에 불편해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일정 부분, 자신의 앞으로 소유권 이전이 된 지금의 아파트 등기부 등본을 떼어본 후 느낀 것과도 일치하는 감상이었다.


“혼자 지내더라도 몸 챙기고, 밥 잘 챙겨 먹고.”
“아니요.”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동안, 참 당연한 듯 받고 있었던 이런 관심, 혹은 애정.

그러나 자신 또한 그의 친아들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거라면, 그 불공평함은 무슨 말로 어떻게 핑계를 대어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형…한테.”


그 말이 다니엘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들은 ‘아빠’의 눈썹이 짐짓 찡그려졌다.


“한 번이라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말을 그만 둘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런 말씀, 해보셨어요?”
“그건.”
“왜요.”


지훈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다니엘은 말했다. 어차피 자신과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이니까, 결국은 너와도 아무 사이도 아닌 거라고. 그런 사람에게, 괜한 말을 하면서 굳이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고. 맞닥뜨리기 싫은 것은, 할 수만 있다면 맞닥뜨리지 않는 것이 인생을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물론 그 말도 맞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것은 다니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속이었다.


“형이, 친아들이 아니라서요?”
“….”


쳐다보는 시선이 단박에 얼었다. 지훈은 담담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했다. 이미 각오를 했으면서도, 그 시선은 쓰라리게 아팠다. 묻고 싶었다.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를.


“사모님이 잘하셨다는 건 아니에요.”


엄마, 라는 말을 입에 올리던 다니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어서, 봄만 되면 재채기를 하셨다는 그의 엄마. 그런 엄마를 고쳐주고 싶어서, 원래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어린 다니엘의 이야기.

그것은, 친자니 아니니, 불임이니 아니니 하는 지저분한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건 두 분 사이의 문제잖아요.”
“지훈아.”
“두 분 사이의 자식으로 태어난 건 형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지훈은 생각했다. 다니엘은 언제 어디에서 나도 다니엘이었을 테니까. 감히 눈을 뗄 수도 없을 만큼 멋있었을 테니까.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나도록 근사했을 테니까.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다가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는 언제 어디에서 나도 그였을 테고, 자신은 그런 그를 사랑했을 테고.

그랬더라면, 이렇게 빙빙 돌아오지는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아이는, 세상에 없잖아요. 그렇잖아요.”
“지훈아.”
“그동안 제게 신경 많이 써주신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제 것이 되어 마땅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훈은 굳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집이랑, 다른 것들은 형이랑 의논해서 정리할게요.”
“그건 내가 네게 해 준 거다. 그놈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어.”
“형이 정리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정리하는 거예요.”


지훈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저한테 왜 그런 걸 해주셨어요? 엄마 때문인가요?”
“지훈아.”
“이사님의 친아들이 아닌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울컥, 눈앞이 매워졌다. 잠깐의 순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일을, 그는 일평생을 겪고 살았구나 생각하니 눈 앞이 아득해졌다.


“엄마한테 진 빚은 엄마한테 갚으세요. 저한테 갚으려고 하지 마시고요.”










하늘은, 푸르렀다.

공항 바깥으로 나와, 지훈은 한동안 그 자리에 발을 멈춘 채 쨍하니 맑은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 보았다. 미세먼지니 황사니, 바람 잘 날 없는 봄날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지훈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오후 2시 남짓이면, 한참 식곤증에 꾸벅꾸벅 졸고 있을 시간이겠구나 싶었다. 지훈은 전화를 걸어 귀에 댔다. 파란 하늘 아래로, 햇살이 뚝 떨어지듯 내리꽂히고 있었다.


[응, 왜.]


여전히, 길지 않은 대꾸였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바빠요?”
[바쁘지 그럼.]
“무슨 재벌 4세가 그래. 남들은 놀고먹어도 월급만 잘 받던데.”
[사람 요즘 뉴스에 나오는 이상한 년놈들이랑 같은 급으로 묶지 마. 삐지는 수가 있어.]


지훈은 웃었다. 오늘, 그렇게나 대놓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다니엘을 믿기에 가능했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 나도 잘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 같은 것. 그는, 굳이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자리가 없어도 빛났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애써 상처를 주려는 사람을 더욱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나 좀 데리러 와요.”
[어딘데.]
“인천공항.”


순간 핸드폰 너머의 감이 칼로 자르듯 뚝 끊어졌다.


[거긴 왜 갔어. 내가 너 거기 가라고 그 얘기 해준 줄 알아?]
“올만 하니까 온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 아직도 확신은 없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로, 그 가슴에 지금껏 내내 쌓인 앙금이 조금이나마 풀어졌을지는. 그러나 자신의 최선은 그 정도였다. 그 이상은, 아무리 다니엘이 걸려도 무리였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그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 그 사실까지 부인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올 거예요, 말 거예요?”


지훈은 일부러 볼멘소리를 내었다.


“벚꽃 보러도 결국 못 가고. 오면서 보니까 다 졌던데.”
[벌써 그렇게 됐냐?]
“달력 한 번 봐요. 지금이 몇 월인가.”


핸드폰 너머 감감하게 한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서는 어렴풋이 담배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 까짓 거.]


다니엘은 내뱉듯이 말했다.


[이 좋은 날씨에 애인 끼고 놀러도 못 가는 인생 살아서 뭐하냐.]
“어쩌게.”


이제는 되레 지훈이 긴장해, 굳어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땡땡이라도 치게?”
[그래볼까.]
“하지 마요. 그러다가 혼나면 어쩌려고.”
[누가 혼내는데.]
“음… 박 비서님?”


실은, 얼마 전 다니엘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진은, 단순한 비서가 아니라 다니엘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이야기였다. 어쩐지, 두 사람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싶었다는 말을 듣던 순간, 그 얼굴에 떠오른 착잡한 기색을 지훈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우진에게까지 덥석 형이라고 부를 엄두는 나지 않아, 박 비서님 정도로 부르고 있었다.


[금마는 말만 미리 해 놓으믄 괜찮다.]
“어.”


지훈은 걷던 걸음을 딱 멈추었다.


“형 방금.”
[방금 뭐.]
“다시 말해 봐요. 금마는, 뭐?”
[….]


그제야 어떠한 위화감을 느낀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사투리 쓴 거지.”
[….]
“맞지.”


지훈은 웃었다. 종종걸음을 걷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처럼.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살이 간지러웠다.


“좋아요.”


그게 무엇이든,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되는 일이 생겨도, 걱정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놀아준다. 빨리 와요.”


사랑하기에 좋은 봄날이었다.










+. 난반사亂反射 Fi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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