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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x

-나도, 그랬어요.











다니엘은 사흘째 회사에 결근했다.

기실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도 모르는 채로, 지훈은 무턱대고 다니엘의 회사로 찾아갔다. 정작 얼굴을 보게 되면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무턱대고 한 발 뒤로 물러난 채 그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싫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그가 들은 것은, 다니엘은 오늘도 결근이라는 비서의 대답 뿐이었다.

어디가, 정말로 아픈 게 아닐까.

마음이 아파서 몸이 따라 아픈 것은, 의외로 보기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가 아버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 때문에 정말로 몸이 따라 아플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몸이 굳이 아프지 않더라도,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는 문제였으므로.

3일째 헛걸음을 하고 사옥을 나오면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에 저장된 우진의 전화번호를 불렀다. 다른 게 아니라 정말로 아픈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그러니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없느냐고 한 번만 매달려 볼까. 그러나 지훈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우진은 다니엘이 아직 지훈의 사과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를 만날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이유가 그런 거라면, 지금 아무리 매달려도 그 대답이 다를 리는 별로 없어 보였다.

지훈이 할 수 있는 것은 하염없는 기다림뿐이었다.










별로 미적거린 것 같지도 않은데,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다.

식욕도 돋지 않는 밥을 억지로 챙겨 먹고, 지훈은 언제나처럼 오후 시간에 할 만한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 사이트 몇 군데를 헤맸다. 그러나 오늘은 어째 영 고만고만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뒤지는 능률도 나지 않아, 지훈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 버렸다. 텔레비전을 켰지만 오늘따라 눈이 5분 이상 가는 프로그램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일찍 잠이나 자는 게 남는 날인가 싶었지만 정작 자리에 누우니 잠도 잘 오지 않아, 지훈은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 비슷한 것이 들었다.

그 때, 꿈결처럼 바깥에서 초인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도대체 누구일까.

대번에 떠오른 것은 다니엘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일 리는 없었다. 그는 집 비밀번호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도, 열어주지도 않은 문을 제멋대로 열고 들어와 저만치 서서 한심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 떠올라 지훈은 피식 웃었다. 보나마나, 술이라도 한 잔 걸친 옆집 사람이 집을 착각해서―

아니, 옆집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지훈의 옆집에 사는 아저씨는 이 라인의 ‘군기반장’이었다. 그는 날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층간소음을 내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야단을 쳤다. 지훈도 쓰레기 내놓는 날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대서 그에게 몇 번이나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평생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얼마 전 퇴임했다는 그는, 지나는 말로 듣기로는 술은커녕 담배도 안 피운다고 한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이 새벽에, 남의 집 벨을 울릴 리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번째 벨이 울렸다.

긴장감에 온 몸이 굳어졌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 대상으로 무작위로 벨을 눌러서 일단 문을 열게 만든 후에 집에 침입하는 강도들이 많다던데, 혹시 그런 걸까. 지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았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 번째로 벨이 울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그제야 겨우 들었다. 한 번 확신이 들기 시작한 생각은 자꾸만 그리로 내달렸다. 지훈은 침대에서 내려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


바깥에 서 있는 것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다니엘이었다.

오늘 보는 그는 매우 낯설었다. 그것은 비단 며칠 만에 얼굴을 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검정색 트레이닝 저지 팬츠에 회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는데, 그 행색은 지훈이 기억하는 그 다니엘이 아니라 학교에서 작업 중에 맞닥뜨리는 한 두 학번 위 선배처럼 느껴졌다. 이마 위에서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은 감은지 얼마 안 된 듯, 부슬부슬하게 들떠 있었다. 꼭 그런 디테일한 것들이 아니어도, 지금 문 앞에 나타난 다니엘은 지훈이 알던 그 다니엘이 아니었다.

한 뼘 남짓 열린 문틈으로, 바깥과 안의 침묵이 천천히 흘러 섞이고 있었다.


“어.”


지훈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실장님.”


그는 이런 식으로, 지훈의 부름에 응답했다.


“웬일로.”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 말이 먼저였다. 그러나 전에 없이 유순한 눈매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과 눈이 마주친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과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들으려고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되레 뭔가를 말하려고 찾아온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건이 무엇이든, 그의 마음이 우선이었다.

그를 위해, 지훈은 잠시 자신의 할 말을 속으로 삼켰다.


“아프다며요. 괜찮아요?”


그래서 결국, 그를 맞닥뜨린 첫 말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사흘이나 결근했다면서요. 회사에 소문 쫘악 났던데.”
“….”
“어디가 아팠던 건데요.”


아마도, 마음이.
미워서, 그지없이 미워하려고 했으면서, 결국은 제대로 미워하지도 못하고 만 그 마음이.
기껏 독한 마음을 먹고 조롱하고 비웃고 빈정거려놓고, 결국은 눈에 밟혀 제 품을 내주고 만 그 마음이.


“혹시, 저.”


가만히, 지훈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다니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때, 우리 집에서 자고 갔을 때.”
“….”
“나한테서, 옮은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러나 결국,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지훈은 생각했다.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매가 변한 것을 지훈은 느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으로, 지훈은 알 수 있었다. 지난 며칠 간,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가 하는 사실을.


“그런 거구나.”
“….”
“나 진짜 쓸데없네. 아픈 거나 옮기고.”


한 번도, 어머니와 아빠가 어떤 관계인지를 심각하게 궁금해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건 아마도 지금과 같은 순간을 예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존재가 다른 누군가의 상처가 되는 순간을. 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하는 독한 회의가 지훈의 의식 속으로 밀려들었다.


“근데요.”


지훈은 피식 웃었다.


“가끔은, 좀 아파 봐요.”
“….”
“맨날 정장 입고 머리 넘기고 그러고 있는 것만 봐서, 아니, 뭐 그런 것도 멋있고 좋긴 한데요.”


지훈은 눈치라도 보듯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 눈동자를 한 옆으로 굴렸다.


“다른 사람 같아요.”
“….”
“그냥, 어, 형―이라고 불러도 될 거 같은 그런 거.”


지금의 다니엘은, 새벽에 내리기 시작한 안개비 같았다. 오는 줄도 모르다가, 문득 쳐다본 창문에 가느다란 빗자국을 새겨놓고 있는.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입술에 새삼 마음이 설렜다.

문 밖에 서 있는 그에게서는 새벽에 내린 비의 냄새가 났다.


“언제까지 밖에 서 있을 건데요. 들어와요.”
“….”
“옆집 아저씨 무서워요. 얼른요.”


소매를 잡아당기는 손길에 끌려, 다니엘은 못이긴 듯 한 발을 떼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등 뒤로, 두텁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근데, 진짜 무슨 일이에요?”
“….”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여기까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요.


“저기, 나 좀 뻘쭘해질려고 그러는데.”


말꼬리 끝으로 민망한 웃음이 섞였다.


“대답 좀 해주면, 안 되나.”
“….”


그 채근 아닌 채근에 다니엘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는 손을 뻗어 지훈의 몸을 품속에 껴안았다. 허리를 감싸고 등을 껴안은 그 팔은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지훈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발 아래로 떨어졌다.


“박지훈.”


다니엘의 품 안에 갇힌 지훈의 눈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그는 이런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입에서 불려지는 자신은, 언제나 이봐, 혹은 박지훈 씨 정도의 서름하고 낯선 존재였다. 이렇게 애달프게, 이렇게 다정하게, 이렇게 상냥하게 그 이름을 불러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숨이 멈추었다. 온 몸이 커다란 심장이 된 것 같았다. 멈칫 놀라 호흡을 멈춘 목덜미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키스를 하고, 맨살을 맞대고, 가장 깊은 순간의 신음을 함께 뱉았으면서도, 정작 이렇게 말없이 끌어안고 서로의 박동을 듣고만 있는 것도 지금이 처음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요―
새벽에 내리는 비처럼 나타난 당신은.


“보고 싶었어.”
“네?”
“보고 싶었다고.”


너 때문이라고 말했더라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보고 싶었다는 그 말은, 모래사장에 스미는 파도처럼 지훈의 마음으로 스며들어 그를 붙잡았다. 달아날 수 없게. 돌아설 수 없게. 더 이상은, 저항할 수도 없게.


“내가 너 보고 싶었다고요, 박지훈 씨.”


그제야 지훈은 깨달았다. 지난 사흘 동안, 자신이 다니엘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고 다 내 탓이라는 말도 아니고, 그저 보고 싶다는 그 말 한 마디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눈 앞의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아들어요?”


나도, 그랬어요.

지훈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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