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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w

-많이 아프죠. 마음이.











박우진이라는 남자는 물이 없이는 한 입도 삼키기 힘든 파운드 케익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체구에 비해 몸가짐이 무거운 사람이었고, 쓸데없는 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저런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랑도 자 봤느냐고 다니엘에게 물었던 기억이 나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지훈이 앞으로 다가오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것은 요식 같은 것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고, 나름의 진심이 묻어 있어 오히려 지훈을 당황하게 했다. 지훈도 그 자리에 멈추어선 채 엉거주춤하게 마주 인사를 했다. 우진은 능숙하게 지훈을 자리에 앉히고는 커피는 뭘 마시겠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지훈이 무어라고 말도 하기 전에 지훈이 말한 카페라떼 한 잔을 받아다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 태도 하나하나에는 남을 챙기는 것에 익숙한 사람 특유의 능숙함이 배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지훈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우진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지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 안녕하세요. 박우진입니다. 실장님 수행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화가 아닌 실제로 듣는 그의 목소리는 훨씬 더 굵고 낮았으며, 사투리 억양도 조금 더 짙었다. 수행비서라는 건 정확히 어떤 일일까. 사무실에 가면 늘 있는 그분과는 조금 다른 역할일까. 그러나 그런 것을 굳이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뭐, 별 일은 아니고.”


그러나 그런 지훈의 속을 이미 다 읽기라도 한 듯, 우진은 설명을 시작했다.


“남이 알아도 상관없는 일은 사무실에 있는 비서가 하고.”
“….”
“남이 알믄 좀 곤란한 일은, 제가 합니다.”


남이 알면 곤란한 일이라면, 어떤 일일까. 지훈은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그 남이 알면 곤란한 일의 범주에 자신도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박지훈 씨 뭐하는 사람인지, 어디서 일하는지, 어디 사는지 하는 거 싹 다 조사해서 실장님한테 알려드린 사람이, 접니다.”
“….”
“그리고, 뭐, 잘한 일은 아니지만.”
“….”
“엊그제 결석하고 집에 있을 때, 실장님한테 집 비밀번호 알려드린 사람도, 접니다.”


지훈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그 말은 다니엘을 자신에게로 이끌고 온 것이 눈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지훈은 고개를 돌리고 몇 번 헛기침을 했다.


“대단하시네요.”


지훈은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건 다 어떻게 알아내시는 거예요?”
“꼭 궁금하믄, 뭐, 대답해 줄 수는 있는데.”


우진은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제일 궁금한 게, 그겁니까.”


지훈은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잠시 억눌려 있던 수많은 질문들이, 말들이 동시에 튀어나와 입 속을 맴돌았다. 그 중 어느 것이 제일 급한지, 지훈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만큼.


“이틀이나 결근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한참이나 말을 고르던 지훈은 조용히 입을 떼었다.


“어디 많이 아프신 건가요?”


우진은 말없이 지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은, 그의 마음에 들었을까.


“많이 아프죠.”


그리고 그의 대답은, 그리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나왔다.


“마음이.”
“….”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우진의 그 대답이 마치 자신의 탓이기라도 한 듯, 지훈은 고개를 떨구었다. 이틀째 결근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 일 때문만은 아니기를 애타게 바랐다. 그러나 그건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디까지, 압니까.”


우진은 뜸도 들이지 않고 대뜸 그렇게 물어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지훈은 한참이나 좌우로 눈동자를 굴렸다.


“아는 건 아니고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지훈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 그 누구에게서도 확인 같은 건 받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짐작만 할 뿐.


“그냥,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말하기가 영 껄끄럽습니까.”


우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영 그러믄 뭐, 내가 대신 말해줄까요. 예. 실장님, 지훈 씨 뒤봐주는 그 양반 아들 맞습니다.”
“….”


아마도 낭떠러지에서 뚝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지훈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아, 앞에 앉은 사람을, 그 뒤의 진실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지훈은 한동안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고스란히 굳어져 있었다.


“실장님이 그간, 좀 사람 험하게 다뤘지요. 미안합니다. 제가 중간에서 실수한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네?”
“이사님이, 아, 그러니까, 지훈 씨도 아는 그 양반 말입니다. 원래 아무한테나 그렇게, 집 사 주고 그러는 사람 아닙니다. 그것도 강남 한 복판에 있는 아파트 같은 거는.”


집을 사주다니. 지훈의 눈이 멍하게 질렸다. 그러니까 저 말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그 집이 전세 같은 게 아니라 아예 내 앞으로 돼 있다는 뭐 그런 말일까.


“처음에는 밖에서 낳은 아들인가 했는데, 그건 또 아니라서.”
“….”
“그래서, 애인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지훈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아빠의 이야기를 하며, 애인이기라도 하느냐고 빈정거리던 다니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인생 쉽게 살려고 한다던 말들과, 그런 주제에 열심히 사는 척 한다던 말들과, 매사 그렇게 남이 떠먹여주기만을 기다리느냐는 말들. 그리고 처음으로 몸을 섞던 그 순간 애타게 걸려오는 아빠의 전화를 바라보던 그 텅 비어있던 눈빛까지도.

모든 일은, 그렇게 된 거였다.


“아니요.”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런 오해 때문에 조금 더 심했을지는 모르겠지만.”
“….”
“그런 사이가 아닌 걸 실장님이 아셨더라도.”


차마 나오지 않는 말을 하려는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제가, 제 몫이 아닌 걸 빼앗아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지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다니엘에게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성애의 대상과, 자식에게 주는 애정은 그 근본이 다른 것이니까. 정말로 자신과 아빠가 그런 사이였다면, 다니엘이 느꼈을 박탈감은 조금은 덜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최악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실장님은, 왜 찾습니까.”


우진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굵고 낮은 음성의 파장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투리를 쓰는 억양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다니엘과 많은 점이 비슷했다.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 목소리의 ‘물기’였다. 우진의 목소리는 다니엘의 목소리에 비해 건조했고, 훨씬 감정의 진폭이 적었다.


“속속들이 다는 모르지만은, 그래 꿀 떨어지는 사이는 아니었던 거로 아는데요.”
“….”
“일도 이래된 마당에, 굳이 얼굴보고, 무슨 말을 할 생각인데요.”
“사과하려고요.”


울컥, 목소리가 흔들렸다.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뭐가 미안한데요.”
“그간.”


지훈은 더듬더듬 입을 열어 말했다.


“실장님이 가졌어야 하는 걸.”
“….”
“제가 대신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마르게리타 피자. 순간 어째서인지, 지훈은 아빠가 자주 사들고 들어오던 마르게리타 피자의 맛을 떠올렸다. 딱히 맛있지도 않고 딱히 맛없지도 않은 그 피자의 맛. 그는 문득, 그런 피자를 한 번이라도 자신의 아들에게 사 준 적이 있었을지가 궁금해졌다. 야구를 보며, 예능을 보며, 치즈가 늘어지는 피자를 입 속으로 욱여넣는 종류의 기억을, 자신의 진짜 아들과 나누어 본 적이 있는지가.


“사과하려고.”


우진은 조용히, 지훈의 말을 따라 외었다. 그는 검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물끄러미 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그래 생각하믄,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금 그 양반이, 지훈 씨한테 사과 받을 상태가 아닐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제가 얘기해줄 수 있는 거는, 여까집니다. 나머지는, 본인한테 직접 들으세요. 말 안해주믄, 뭐 할 수 없고.”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건가. 지훈의 뒤통수가 움찔 굳어졌다. 마음이 급해져, 지훈은 하소연하듯 입을 떼었다. 그러나 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몇 년째 모시고 있습니다만은, 사석에서는 형님 같은 분입니다.”


어쩐지, 그 눈가에 떠오른 표정이 전에 없이 착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훈 씨가, 좀만 더 기다려 주세요.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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