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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v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더없이 무서운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와, 지훈은 불도 켜지 않고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몸이 무거웠다. 머리가 아팠다. 이게 다 어찌된 일인가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별로 우연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아마도,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지를 알고 그린 게이블스로 왔던 것이 틀림없었다. 물색 모르는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일이 화가 났을 것도, 지금 생각하니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그런 태도를, 어느 정도는 위악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최소한, 솔직했다. 사실을 다 말해주지 않았을 뿐.

그 눈에 비친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거가에 생각이 미친 순간,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싶어졌다.

그놈이 어떤 놈인지, 어떤 개새끼인지 알기는 해?

아빠의 그 말은, 마음에 걸렸다. 그는, 자신이 아닌 다니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치, 다니엘의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가 되기라도 한 듯이. 다니엘과 그런 사이가 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왜 그런 놈을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그 점에 대해 질책하듯이. 지훈은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의 기억 같은 건, 거의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지, 잘은 몰랐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대뜸 아들을 ‘개새끼’라고 부르는 아버지가 일반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당신은, 그 사람의 아버지지 내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그 사람의 편이어야지, 내 편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가족이란 건, 그런 거잖아요. 그래야 되는 거잖아요.

아빠는, 아빠의 자식들에게 나에게만큼 살가울까. 다정할까. 따뜻할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지훈은 늘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아빠의 진짜 자식들에게 자신은 아주 나쁜 사람일 테니까. 단 한 순간도, 자신은 그런 걸 원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 짧은 대화에서마저도, 지훈은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아빠는, 다니엘에게 따뜻한 아버지가 아니었을 거라는 것을. 자신에게 베풀어진 그 모든 것들은 아마도 다니엘에게는 절반도 채 돌아가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자신을 향한 다니엘의 비뚤어진 태도는, 자신이 가져야 마땅한 것을 가로채어가 버린 자에 대한 합당한 분노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지훈은 팔을 들어 눈 위를 덮었다.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갖가지 생각들에 짓눌리다 깜빡 잠이 든 지훈이 깨어난 것은 그날 한밤중이었다. 지훈은 힘이 빠진 손을 들어 핸드폰을 집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액정을 살폈지만 다니엘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하기야, 원래 먼저 연락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도대체 아빠는, 이 일을 어쩌다가 알게 된 걸까. 순간 지훈은 누가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빠는, 과연 아까 그 말을 자신에게만 했을까. 다니엘에게도 똑같이 하지 않았을까.

설마, 그런 거라면.

지훈은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발작이라도 하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거기 그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 확인받고 싶었다. 다정한 말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전화를 걸면 받을 정도의 마음이라도 남아있다는 사실만이라도. 그러나 신호가 꽤 오래 울리도록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누군가가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그 말들을 끝도 없이 되뇌이고 있을 때, 신호음이 끊어지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왜.]


그의 대답은 짧았고, 무뚝뚝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건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 무덤덤한 음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빠져, 지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해요?”


애써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실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건지, 그걸 알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인지, 괜찮으냐는 말이 먼저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서.


“바빠요?”
[설마.]


아빠는,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떤 식으로 했을까. 짐작도 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지훈이 바랄 수 있는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상처를 주지 않는 것.


[안 바쁠 거라고 생각하고 전화한 건가?]


바쁘구나.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바빴기를, 너무나 바빠서 다른 사람의 전화 같은 건 받을 새도 없었기를, 그래서 지금도, 싸들고 온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전화를 늦게 받은 것이기를 지훈은 간절히 바랐다.


“나 실장님한테 전화한 거 맞구나.”


아주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웃었다. 자신의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이 ‘그’ 다니엘이라는 사실도, 그가 그래도 많이 상처받지는 않은 것 같다는 사실도, 자신의 전화를 받아줄 만큼의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도.


“전화 좀 착하게 받아주면 안 돼요?”


무리라는 걸 알았다. 그럴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러나, 모르지도 않으면서, 뻔뻔하게 그렇게 졸랐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의 목소리 앞에서 평온을 유지할 자신 같은 게 없었다.


[끊는다.]


그 목소리는 조금은 화가 난 것 같이도 들렸다.


“아, 진짜. 비싸게 좀 굴지 말고.”
[끊어. 들어가 잠이나 자.]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정말로 끊어져 버렸다.

지훈은 멍하니,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뭐가, 왜 미안하냐고 되물어오면, 그 말에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는 있었을까. 뭐가 미안하냐는 물음에 대답할 자신도 없으면서 하는 미안하다는 말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일 수 있는 것일까.

그냥, 전부 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린 게이블스를 그만두면서, 다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의 시간이 비게 되었다.

처음엔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는 아예 꺼져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예 꺼놓고 있다는 사실은,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건 비단, 자신을 향해서만 하는 의사소통 거부의 표시는 아닌 것 같아서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훈은 다니엘의 회사 사옥 앞으로 갔다. 일단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독하리만큼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제 편에서 알아서 해결되어주는 편리한 일 같은 건 세상에 없었다. 엉켰다면, 어긋났다면 더 엇나가기 전에 바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기껏 찾아간 사무실에는 비서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다니엘은 오늘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제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바쁘다더니. 안 바쁠 거라고 생각하고 전화한 거냐고 퉁명스레 대꾸하던 그 순간, 그는 바빴던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걱정하던 일은 실제로 일어나 버린 것 같아 지훈은 잠시 멍해졌다. 거기서 비서를 붙잡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게 고작이었다. 지훈은 맥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뒤를 돌아 나왔다.

밖으로 나와, 지훈은 다시 다니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그 사람은 참, 잘도 나를 찾아냈는데. 내가 누군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 사는지 하는 것들을, 참 쉽게도 알아내 나를 찾아왔는데. 그러나 자신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디에 사는지, 좋아하는 건 뭔지, 힘들 때는 어디에 가는지, 이런 순간에, 어디에 가면 그를 찾을 수 있는 건지.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훈은 핸드폰을 뒤져 다니엘에게서 받은 문자 메시지를 뒤졌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찾아냈다. 다니엘이 사투리를 쓰는 모습은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보일만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지금쯤 다니엘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번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고, 지훈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벨이 세 번쯤 울렸을 때, 핸드폰 너머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 기척이 들었다. 저도 모를 긴장감에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순간, 지훈은 자신이 이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우진입니다.]


핸드폰 너머의 남자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밝혀왔다.

그 목소리는, 다니엘의 것과는 또 조금 다른 느낌의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름을 대는 그 짧은 말 한 마디에서도, 꽤나 짙은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억양이 묻어났다.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지훈은 생각했다. 이런 사람과 이야기를 하느라, 자연스럽게 남 앞에서는 안 쓰는 사투리를 쓰게 되는 것이구나, 하고.


[박지훈 씨죠.]
“….”


지훈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전화했습니까.]


그는 매우 담백하게, 그렇게 물었다. 지훈은 커다랗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는, 자신이 용건을 밝혀야 할 차례였다.


“강다니엘 실장님 비서시라고 들었습니다. 맞으세요?”
[예.]


그의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없이 나왔다. 마치 자신이 할 말을 이미 다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제가, 실장님께 꼭 해야 될 말이 있는데.”
[….]
“전화도 꺼져 있고, 출근도 안 하신 것 같고요.”
[….]
“어떻게 하면, 좀 만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요.”


가까스로 자신의 용건을 밝히고, 지훈은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과연 이 사람은, 자신을 다니엘에게로 안내해 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런데 그 전에, 내부터 좀 보지요. 박지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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