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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u

-제가, 그 사람한테, 상처를, 줬어요.











가게는, 그냥 내일부터 닫을 예정이라고 사장은 말했다. 너도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 찾아야 할 테고, 어차피 매상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 가게 미련스레 며칠 더 붙잡고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산된 아르바이트 비를 입금하고, 그녀는 웃는 얼굴로 지훈에게 그동안 수고했고 모자란 사장 때문에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지훈 또한 웃는 얼굴로, 하시는 모든 일 다 잘 되시길 바란다는 말로 그 인사에 대답했다.

이제 볼 일은 끝났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기는 어쩐지 아쉬웠다. 마음에 굳은살이 앉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을 실컷 좋아하라던 사장의 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훈은 무턱대고 회사 앞으로 가서 다니엘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퇴근 시간이니까. 오늘은 그가 어떤 못된 말을 해도 다 웃으며 대답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니엘의 회사 사옥 1층에는 조그마한 카페가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을 전부 다 볼 수 있는, 나름 좋은 위치에 있었다. 카페 안쪽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훈은 정작 받아온 아메리카노는 별로 마시지도 않고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면 놀라겠지. 그 놀라는 얼굴에 대고, 무슨 말을 해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지훈은 한참동안이나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아빠였다. 생각해 보면 꽤 오랜만에 오는 전화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의 전화는 반갑지가 않았다. 아빠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에 이런 류의 좋지 않은 예감이 든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지훈은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어디니.]


대뜸 물어오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의 그런 음성은 낯설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해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지그시 입을 다물었다.


“밖인데요.”
[지훈아, 너.]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네?”


분명 자신을 야단치려는 듯한 말투였다. 아울러 그에게서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말투이기도 했다.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컵을 집어들었다. 어쩐지 실내에서 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통화가 될 것 같았다.


“제가, 뭘요?”
[너 전에 말했던 그 좋아한다는 사람.]


거기까지만 들었는데도, 이미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도대체 아빠는, 그에 대한 일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사내자식이냐?]
“….”


지훈은 우뚝 그 자리에 서 버렸다.

다니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했을 때, 칭찬받고 축복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조금은 때 이르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다가왔다. 하필이면, 가장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아빠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게 너무나 많은 신세를 졌고, 어지간하면 그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존재했다. 이를테면, 지금과 같은.


“안 돼요?”


그래서, 지훈은 그렇게 물었다.

핸드폰 너머로 감감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당황한 것 같기도 했고, 몹시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지훈은 지그시 입술을 깨문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과연 자신에게, 아빠를 이렇게 화나게 할 자격이 과연 있는가 하는 점을 곱씹으면서.


[그 새끼가.]


그러나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훈의 예상을 한참 벗어날 만큼 격했다.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인지, 지훈은 알았다. 그리고, 아빠가 바라는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첫 키스도, 첫 섹스도, 모두가 그의 뜻대로 끌려갔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자신의 마음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요.”


지훈은 짤막한 대답을 해 놓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냥, 제가 그 사람 좋아해요.”
[지훈아.]
“남자면, 안 돼요?”


딱히 남자에게 끌리는 성벽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리고 지훈을 파고 들어왔다. 이제 와서, 그 성별을 문제 삼을 엄두 같은 건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나 문제이고, 잘못이냐는 반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제가 그 사람 안 좋아해도, 그 사람이 여자이기만 하면 안 이러시는 거예요?”


얼마나 허를 찔린 것인지,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훈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 안 될 것을 알았다. 그러나 도리가 없었다. 아마도 아빠가 하려는 말에 대해, 자신은 그런 식으로밖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지훈은 중얼거렸다.


“아빠 저한테 되게 잘해주신 거 알아요.”
[….]
“그렇지만, 그렇다고.”
[….]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안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해해 주세요. 지훈이 하려던 말은 그 정도였다. 그러나 아빠의 대답은 지훈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생각지도 못한 궤적을 그리며 튀어나왔다.


[왜 그놈이냐.]


아빠는 치를 떨 듯 물었다.


[왜 하필이면 그놈이냐. 그놈이 어떤 놈인지, 어떤 개새끼인지 알기는 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말투.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한, 상대가 남자여서가 아니라, 다니엘이라서 힐책하는 듯한, 그런 말투.


[어디 마음 줄 데가 없어서 그 새끼한테.]


이상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천천히, 머리 속에서 뭔가가 맞아 들어갔다. 아빠의 이름. 그리고, 그의 이름. 강 씨라는, 희귀하다고까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흔하지도 않은 성씨. 잔뜩 상처가 난 그의 눈빛.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독 더 빈정거리던 그 목소리, 말투, 표정들.

그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빠는, 아빠의 자식들에게 나에게만큼 살가울까. 다정할까. 따뜻할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지훈은 늘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아빠의 진짜 자식들에게 자신은 아주 나쁜 사람일 테니까. 단 한 순간도, 자신은 그런 걸 원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설마, 그랬던 걸까.

많이도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단 한 마디만 물어보면 되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까 봐. 그게 사실이라고 할까 봐. 상처를 입힌 건 그가 아니라, 너라고 할까 봐. 상처를 입은 건 네가 아니라 그라고 할까 봐.

태양이 우리의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만큼 쉽고 단순한 그 사실이, 당대엔 얼마나 큰 파란을 몰고 왔을 건가, 하고 지훈은 생각했다. 이런 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고 하던가.

늘 생각했다. 피해자는 자신이라고. 다니엘의 변덕에, 난폭함에, 휘둘리고 끌려다니며 상처를 받는 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혼자 제멋대로 상처받고, 제멋대로 원망했다. 내게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왜 이렇게까지 내게 못되게 구는 거냐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잘못된 것은, 자격이 없는 것은 자신 쪽이었다.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박지훈 자신이었다.


“아니요.”


비명을 지르듯 대답하는 지훈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제가, 그 사람한테, 상처를, 줬어요.”


응당 그의 것이었을 것을 마음대로 빼앗고,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제가, 그 사람한테, 상처를, 줬다고요.”


그것도 모자라 왜 내게 이렇게 못되게 구느냐고 뻔뻔스레 칭얼거리기만 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몰랐던 주제에.


“개새끼, 라고, 하지 마세요.”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심장의 어느 한 구석이 잡아 찢기는 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그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해 버린 것일까.


“아빠도, 이젠, 다 알잖아요.”


아빠.

그의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던 그 수많은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금이 가던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별장에서, 키스를 하고 몸을 만지던 순간 그가 했던 말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대답들. 아니, 자신이 숨쉬고 살아있는 그 수많은 순간들에 대해.

순간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을 보던 모든 순간,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자신이 가졌어야 마땅한 것을 가져가 버린 불청객, 혹은 이물질에 대해.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괴롭히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상처 주고, 빈정거리고, 경멸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그는, 어젯밤 그런 자신의 곁에서, 하룻밤 내내 자신의 체온을 나눠 주었다. 눈빛이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주제에, 단 한 번도 그가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그런 걸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훈은 돌아섰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퇴근시간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그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던 그 모든 것은, 물이라도 엎지른 것처럼 까맣게 지워져 버렸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가슴에 박힌 얼음조각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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