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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s

-웃었다.











바라보는 눈빛은, 어쩐지 착잡해 보였다.

그 어설픈 플러팅에,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지금껏 본 그의 그 어떤 순간과도 달랐다. 그것은 경멸도 업신여김도 비웃음도 아니었고 분노나 냉소도 아니었다. 그저, 몸이 아파 누워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아주 평범한 눈빛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들어가.”


다니엘은 꿈틀거리며 몸을 뒤로 물리는 지훈의 옆을 밀고 들어와 그 머리를 팔 위에 뉘었다. 순간, 제가 먼저 그러자고 했으면서 지훈은 멍해졌다. 가만히, 어깨에 기댄 이마를 타고 사람의 체온이 온 몸으로 흘러들었다.


“침대가 왜 이렇게 좁아터졌어.”


다니엘은 대번 그렇게 투덜거렸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호텔도, 별장도, 그의 침대는 사람 서넛은 잘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그런 침대에서 자다가 이런 싱글 침대에, 그나마 사람 하나 껴안고 누우려니까, 뭔가 여의치 않기는 할 터였다.


“아빠한테 침대나 좀 크고 좋은 거 하나 사달라고 해.”
“안돼요.”


지훈은 다니엘의 목덜미에 묻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나 이 집에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빠한테 너무 폐 많이 끼쳤어요.”


사실은 아직도 궁금했다. 나를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내 어디가 그렇게 싫은지. 그런 걸 알 수 없어서,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도 여전히 자신이 밉다면,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아팠어요. 돈이 필요했는데 방법이 없어서 살던 집 보증금을 뺐거든요.”


보증금을 빼는 것도 그리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전세 계약은 어머니의 명의로 되어 있었고, 그 일을 당시 성인도 아니었던 지훈이 처리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정리가 다 끝난 후에도, 집 주인은 다음 이사 들어올 사람이 구해져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며 버티었다. 그 때 알았다. 그 정도의 더하고 덜하고가 있을 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 다 뭔가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을.


“그래서 집 빼고 고시원에서 몇 달 지냈는데, 그 때 아빠가, 친구 분 중에 되게 돈 많은 분이 있대요. 돈이 너무 많아가지고, 집을 막 몇 십 채씩 사서 세 놓고 그러는 사람이라고.”
“….”
“그 중에 한 채가 전세 들어 살던 사람이 갑자기 외국 발령이 나서 외국 가게 돼서 집이 비었다고. 자기가 말해줄 테니까 들어가서 살면 된다고 그래서.”


글쎄, 그런 편리한 일이, 과연 가능할까.

그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이, 다니엘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서야 들었다. 이 비싼 동네에, 전세계약까지 다 해놓고 살 사람이 없어져버린 집 같은 게,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나타난다는 게. 지훈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이런 일이,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다니엘이 말한, 인생 편하게 산다는 건, 이런 뜻이었을까.


“아빠가 그렇게 안 해줬으면 아직도 고시원에 살고 있겠죠.”


눈을 감았다. 아직도 그 때 서너 달 정도 지냈던 고시원의 풍경은 눈 앞에 생생했다. 얇고 좁은 벽, 다리를 뻗고 누우면 빠듯하게 맞던 좁은 방, 그리고 무엇보다도, 잔뜩 메말라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던 그 예민한 공기 같은 것들. 학교에 갔다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면 쓰러져 잠들기 바빴던 지훈에게도 그런 것들은 고스란히 전해졌었다.


“고시원 들어가면서 원래 살림들은 다 버렸어요. 놔 둘 데가 없으니까.”


이제 살 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정작 보증금을 빼던 그 순간보다도 고물상에서 세간들을 전부 실어가던 그 순간이었다.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옷장, 침대, 책상 같은 것들. 분명 살 때는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던 것들이 단돈 몇십만원에 팔려나가 사라져버리는 장면 같은 것. 이제야말로, 나는 이 땅에 발을 딛을 곳이 없어졌구나 하는 날카로운 현실감이 폐부를 찢고 들어오던 기억 같은 것.


“여기 있는 것들은, 다 내가 돈 벌어서 산 것들이에요. 이 침대도.”


집을 알아봐 준 후, 아빠는 말했다. 하다 못해 기본적인 거라도 있어야 ‘생활’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지훈은 그 말을 사양했다. 제일 처음 산 것은 냉장고였고, 그 다음이 세탁기였다. 고시원에서 쓰던 얄팍한 이불을 한 자락 깔고 한 자락 덮고 자는 생활을 2주쯤 한 끝에 지금의 침대를 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처음부터 다시 장만하는 세간들은,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집의 모든 것들은 다 그런 과정을 거쳐 처음부터 채워 넣은 것들이었다.


“이거 나름 좋은 회사 건데, 옆에 보면 스크래치가 좀 길게 나 있어요. 침대 옆에 스크래치 나 있나 아닌가 그거만 쳐다보는 사람이 어딨어요. 어차피 이불 덮어 놓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건데. 그래서, 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산 거예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금수저 재벌 4세. 인생 쉽게 살기로야, 당신만 하겠냐고 말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이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은 없을 터이니까. 그러나 그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는 언제나 ‘돈이 있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싸우며 살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할 터였다.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들.


“아프다더니 말만 많네.”


묵묵히 지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니엘은 그렇게 한 마디 했다.


“안 아픈 거면 나 가고.”
“아파요.”


등 뒤로 두른 팔에 꼬옥 힘을 주어 매달리며,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정갈했던 수트가 함부로 구겨지는 느낌이 나서, 그건 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훈은 까슬한 수트의 감에 뺨을 부볐다. 그냥, 지금은 다른 생각 같은 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열도 나잖아.”


그는 다니엘의 손을 끌어다 제 머리 위에 댔다. 식은땀이 드문드문 맺힌 이마로는 꽤 뜨끈한 열이 올라 있었다.


“잠이나 자. 그만 떠들고.”


다니엘은 꼼지락거리는 지훈의 뒤통수를 꾹 눌러 품에 파묻었다. 구겨지는 데 익숙하지 않은 옷이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니엘은 가만히 소매 끝으로 지훈의 목 뒷덜미에 흥건한 땀을 훔쳐냈다.

그 날, 별장에서, 마지막 순간 자신을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던 그 손길은, 꿈 같은 게 아니었다.


“실장님, 있잖아요.”


그의 품 속에 파묻힌 채로, 지훈은 웅얼거리며 말했다.


“안 그런 척 하는데.”
“….”
“좋은 사람인 거 같아요.”
“왜.”


대답이 궁했다. 그것은 그냥 자신의 감일 뿐이어서. 그냥, 그 품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어서. 그러나 그는 아마도, 그렇게 대답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게 뭐야. 그 퉁명스러운 대꾸를 상상하고, 지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엄마 아프셨다더니 어떻게 됐냐, 이런 거 안 물어보잖아.”


그래서, 보증금씩이나 빼서 병원비까지 댔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는데.

그거야 생각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을 이야기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금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 후의 일은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신경하게 묻는 사람을 지훈은 많이 만났다. 그리고 조금은 의외다 싶게, 정작 제일 먼저 그런 말을 할 것 같았던 다니엘은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나 마음 아플까 봐.”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도, 아니라는 말도. 그저 가만히, 아주 가만히 몸을 껴안은 팔에 지그시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 지훈은 한참을 부스럭거려 그 품에 온전히 뺨을 기댔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덮어도 가시지 않던 오한이 조금씩 잦아드는 느낌이었다.


“따뜻해….”


조금은 민망했던지, 다니엘은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잠이나 자랬지. 무슨 사내자식이 이렇게 말이 많아.”
“실장님이 말이 너무 없으니까 그렇지.”
“뭐?”
“그렇잖아요. 둘 중 하나잖아. 못되게 말하거나, 아님 아무 말도 안 하거나. 그러니까 나라도 말해야지 뭐.”


피식 웃는지, 목덜미가 살짝 들먹였다. 기쁘고 좋아서 활짝 웃는,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웃었다.”
“뭘 웃어.”
“웃었는데.”


다시, 다니엘은 지훈의 꿈틀거리는 뒤통수를 꾸욱 눌러 품 속에 파묻었다. 쳐다보지 못하게라도 하려는 듯이.


“자던 잠이나 마저 주무시죠.”
“싫어요.”


지훈은 다니엘의 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도리질을 했다. 얼굴을 묻은 셔츠 깃에서는 흐릿한 담배 냄새가 났다.


“자면, 갈 거잖아.”
“그럼 자는데 가지. 자는 거 얼굴이나 쳐다보고 있으라고?”
“좀 그래 주면, 안 되나.”


벌써 한 번쯤은 친한 척 하지 말라는 날선 말이 날아들었을 것도 같은데, 그는 말없이 지훈의 어리광을 듣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아파서 그런 걸까. 이런 거면, 가끔씩 아픈 것도 괜찮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눈 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잠들면 가버릴 걸 아는데, 분명히 그럴 것 같은데, 가만히 몸을 껴안은 그 품이 너무나 따뜻해서 가물가물 정신이 깜빡거렸다.

아주 많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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