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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p

-당신은, 과연 나를 미워해서 그만큼 행복하냐고.











지훈은 도망이라도 치려다가 붙잡힌 포로처럼 다니엘의 손에 끌려갔다.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부대끼는 살갗이 아팠다. 그러나 걸음이 느려질수록 손목을 잡아끄는 악력이 아파서, 지훈은 피가 몰리도록 입술을 깨물고 다니엘이 끌고 가는 대로 잠자코 그 뒤를 따라갔다.

짙고 두터운 목재로 만든 문이 열렸다. 침실은 바깥의 분위기와는 또 달라서, 호텔에서 본 것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작은 탁자와 암 체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눈으로 채 훑을 틈도 없이, 지훈은 다니엘에게 떠밀려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다니엘은 스웨터 밖으로 드러난 지훈의 목덜미를 핥고 지그시 깨물었다. 턱이 떨렸다. 그 숨결이, 호흡이 귓가로 밀려들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여기 자국 난 건 알아?”


귀 아래 목줄기에 입술을 대며, 다니엘은 말했다.


“어떡하지. 아빠가 보면 화내시겠네.”


몸에, 흔적이 남았다.

이상한 흥분감에 지훈은 움찔 몸을 떨었다. 어째서일까. 다니엘은 이상하리만큼 자꾸만 아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떠는 자신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서일까.


“그래, 뭐라고 변명할 생각이야?”


그는 재미있다는 듯 물어왔다.


“아빠가 이걸 보고, 이거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 건데?”
“몰라요….”


그 질문은, 괴로웠다.


“몰라… 그런 거.”


괴로웠고, 그래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은 지훈을 밀어 넘어뜨리고 그 몸을 타고 올랐다. 위로 밀어 올려 벗긴 스웨터의 정전기에 머리털 몇 올이 들러붙어 나풀거렸다. 지훈의 몸은 푹신한 침구 속에 푹 파묻혔다. 이미 처음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옷이 벗겨지고 속살이 죄다 드러난 건 처음이었다. 다니엘은 지훈의 명치에 얼굴을 파묻고, 굳어지기 시작한 지훈의 유두를 실컷 물고 빨았다. 온 몸을 휩싸는 야릇한 기분에 지훈은 다급하게 이불 모서리를 잡아 쥐었다. 허리가 뒤틀렸다. 자신의 몸은, 이미 그를 원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뭐야, 방금 그건.”


지훈의 명치에 턱을 대고, 열이 오른 지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하면서, 벌써 느끼기라도 해?”
“….”
“사실은 꽤 밝히는 타입인 거 아닌가? 순진하게 생겨가지고.”
“….”


눈을 맞출 자신이 없어, 지훈은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까슬하게 수염이 돋아난 뺨이 가슴에 부대꼈다. 그만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지훈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다니엘의 어깨를 떠밀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되레 제 몸을 떠미는 지훈의 손목을 어렵지도 않게 붙잡아 아래로 내리눌렀다. 다니엘이 바깥으로 드러난 지훈의 가슴과 명치에 입술을 대고 핥는 동안, 지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리를 움찔대고 어깨를 틀었다. 지그시 깨문 입술 사이로 짓눌린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미웠다.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슬펐다. 왜 나를 그토록이나 미워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이유로, 그 입술이 닿을 때마다, 그 손끝이 몸을 훑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거 알아요?”


열에 달뜬 숨을 뱉으며, 지훈은 힘겹게 말했다.


“실장님 못됐어요.”


그게 고작이었다. 개새끼라는 욕설조차 아닌, ‘못됐다’는 애들이나 쓸법한 한 마디.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아니, 괴롭히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면서, 함부로 자신을 안아버린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 한 마디가 고작이었다.


“참, 못되게 말해요.”
“….”
“그런데, 그런 주제에.”


다니엘은 피가 몰려 굳어진 지훈의 유두를 지그시 깨물었다. 저도 모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결국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일 뿐인 것 같아서.


“눈빛이 쓸쓸해요.”
“….”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바라보는 그 눈이 유리처럼 금이 갔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사람은 있지, 누구에게나 마음에 박힌 가시가 있는 거야.

그 마음에 박힌 가시는 얼마나 크고 아파서, 매번 그런 눈을 하고 있는 걸까.


“마음이 아파요.”
“….”


바라보는 그 눈은 분명히 흔들렸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그래 볼 기회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지훈은 팔을 뻗어 다니엘의 목을 제 품에 껴안았다.

그냥 딱 한 번만 안아주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곁이 허전한 느낌에, 지훈은 잠에서 깼다.

침대 옆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엉망으로 구겨진 시트만이, 이 빈 자리에 조금전까지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지훈은 손바닥으로 시트의 구겨진 자국을 가만히 쓸어 보았다.

허리인지 골반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어디인지, 몸의 한 구석이 뻐근하게 아팠다. 지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대체 몇 번이나 절정을 맞았는지 셈도 채 되지 않는 지난밤의 마지막 기억은, 이러다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어린애처럼 울며 그 품에 매달리던 것과 어째서인지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가만히 등을 쓸어주던 그 손끝 같은 것이었다. 그냥, 이 순간 하나로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자신의 착각이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선잠 중에 꾼 꿈이었을까.

나는 알아서 갈 테니까 여기나 나중에 좀 데려다 주라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새, 돌아가 버린 것일까. 아무래도 나하고는,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그새 그렇게. 지훈은 침대 모서리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르게 아팠다. 지훈은 천천히 바닥에 팽개쳐진 옷가지들을 주워 입었다. 벗은 몸으로, 혹은 셔츠 하나만 주워 입고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이 공간의 주인과 최소한의 마음을 나누어가진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좁고 긴 복도를 지나, 지훈은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우뚝, 그 자리에 발을 멈추었다.

다니엘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흐릿한 담배 연기가 났다. 설마 담배를 피우려고 여기까지 일부러 나온 건 아니었을 테고, 그냥 같이 있기 싫어서였겠지만.

그래도, 가 버린 건 아니었구나.

지훈은 조심조심, 잠이 든 다니엘의 머리맡에 앉았다. 잠이 든 그의 얼굴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잠든 얼굴이 악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도 그랬다. 그렇게나 차갑고 낯설던 그 역시도, 잠이 든 얼굴은 그저 평온하고 고요해 보였다. 지훈은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살짝, 아주 살짝 그의 머리칼을 만졌다. 염색기 하나 없는 새까만 머리칼은 보드라운 물처럼 지훈의 손끝에 감겨 왔다.


“뭔가, 있는 거죠.”


그냥,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갑질’하는 재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어느 한 구석이 말도 안 되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끊임없이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아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입만 열면, 틈만 나면 빈정거리는 그 못되고 아픈 말들도 전부 그래서라고. 그러나 언뜻언뜻 스쳐가는 그 텅 빈 눈동자가 마음이 걸렸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왜 나를 그렇게 미워하냐고 물으면, 대답해 줄까.
그래서, 나를 그렇게 미워해서, 당신은 그만큼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건,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고. 쓸데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을 다 태워버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때로는 목적도, 이유도 잊어버린 채 그저 그 사람에 대한 미움만 남아 그 감정이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느라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 아프고 힘든 감정을 품고, 당신은, 과연 나를 미워해서 그만큼 행복하냐고.

그렇게 믿을 근거 같은 것은 실은 아무 것도 없었다. 눈 앞의 이 사람은, 그냥 돈 하나 믿고 세상 모든 게 제 발 밑에 꿇어 엎드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재벌가 망나니일 뿐일지도 몰랐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마다 찾아와 삐딱한 말투로 시비를 걸고, 대놓고 내가 너를 너무 미워해서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심지어 서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 곳까지 자신을 끌고 와 함부로 낙인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은 아팠다. 칼에 베이는 것처럼, 뜨거운 것에 살이 지져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 남은 그의 모든 흔적은 고스란한 통증이었다. 몸속을 파고들던 그 느낌 하나하나가 아프도록 생생해, 지훈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눈빛이 쓸쓸하다던 말에 순간 금이 가던 그 눈빛은,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일 뿐인 게 아닐까.

지훈은 천천히 몸을 숙여, 잠이 든 다니엘의 입술에 아주 살짝 입술을 대었다. 늦게 든 잠이 곤했던지, 그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잠시 멈칫거리다가, 지훈의 입술은 다니엘의 입술 위에 한참을 머물렀다.

가슴에 얼음조각이 박힌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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