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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m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평생 못 잊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 가는 건지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어봤자 대답을 해 줄 것 같지 않아, 지훈은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다니엘이 지훈을 데리고 간 곳은 서울을 한참 벗어난 그 어딘가였다. 길을 지나치며 온 거리에 붙은 표지판으로 봐서 양평 어딘가가 아닌가 싶었다. 좁은 2차선 도로를 한참이나 지나, 인적이 드문 저수지를 낀 길을 꽤나 오래 달려 다니엘은 한 별장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긴 도대체 어디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아 아무 말도 못했다.

지훈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별장 앞을 지나는 강 위로 솟아 있는 연대들이었다. 비가 드문 계절을 만나 물이 말라버린 강 위로, 시든 채 솟아나 있는 연대들은 어딘가 섬뜩하기까지 했다. 지훈은 그 기괴하기까지 한 광경에 한참이나 눈을 빼앗기고 섰다가, 화급히 다니엘을 따라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별장 안으로 들어간 다니엘은 재킷을 대충 벗어 소파 위에 내던지고, 타이의 매듭을 몇 번 잡아 늦추었다. 지훈은 그 몇 발 뒤에서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섰다. 그는 못 올 곳에라도 온 것처럼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낯선 공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결이 그대로 드러난 원목에, 다소 거친 질감의 직물로 만든 패브릭들로 꾸며진 별장 안은 호텔 객실보다 조금 편안해 보이기는 했다.


“앉아.”


좀체로 의자에 앉으려 하지 않는 지훈에게, 다니엘은 턱짓으로 제 옆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별로 옆에 가서 앉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주보고 앉을 자신도 없었다. 지훈은 머뭇거리며 다니엘의 옆에 가서 앉았다. 다니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는 노골적으로 지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하는 만큼, 지훈은 무릎에 얹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안절부절 했다.


“왜요.”


지훈은 한참만에야 온 몸의 용기를 전부 짜내어 물었다.


“저 뭐 이상해요?”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여기 볼 게 그대 밖에 없잖아, 박지훈 씨.”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울대가 가만히 출렁거렸다.

원래도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다니엘의 눈매 자체는 그리 날카롭거나 차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날이 서 있는 그 눈동자 때문인지, 그 시선은 언제나 따가웠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야말로 남자다운 인상을 자아내는 이마며 눈썹에 비해, 그 턱은 또 제법 선이 가늘고 보기에 따라서는 갸름하기도 했다. 그러나 꾹 다물린 선 굵은 입매 때문일까, 별로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저기.”


한참이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 다음 말을 하지 않는 다니엘에게, 지훈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초콜릿, 별로였어요?”
“그건 왜?”
“화난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목덜미가 가볍게 들썩거렸다.


“제가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그래도 좀 좋은 거긴 했는데.”
“….”
“실장님 입에는 별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전에야 들었어요.”


‘강다니엘’이라는 이름을 검색엔진에 검색해 보고, 지훈은 그가 그 사옥 건물을 가진 한 재벌 기업의 4세임을 알게 되었다. 여섯 개에 2만원이나 하는 이 초콜릿은, 자신에게는 대수롭지만 그에게는 밥을 먹고 난 후 입가심 삼아 집어 먹는 알사탕 하나 정도의 가치밖에는 없을지도 몰랐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맛있었어요. 적당히 싸구려 같고.”


그는 웃었다.


“박지훈 씨처럼.”


그 말은 잘못 꽂은 스테이플러의 철심처럼 마음 한 구석을 푸욱 찌르고 들어왔다.


“사 줘 놓고, 본인은 맛은 봤나?”


다니엘은 손을 뻗어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본래 여섯 개가 들었던 상자 안에는, 이제 초콜릿 다섯 개가 남아 있었다. 다니엘은 그 중 하나를 집어 지훈에게 내밀었다.


“자. 먹어 봐요.”
“괜찮아요. 저는….”
“나한테는 먹여 놓고, 본인은 안 먹겠다는 건 무슨 심보야? 독이라도 탄 건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도리 없었다. 지훈은 손바닥을 내밀어 다니엘이 주는 초콜릿을 받았다. 받아놓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초콜릿을 집어 입 속으로 삼켰다. 별로 크지도 않은 초콜릿이었는데, 그 초콜릿을 문 지훈의 입술은 대번에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 순간, 다니엘은 지훈의 목을 휘어감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입에 문 초콜릿의 탓일까, 앞전처럼 지훈은 야멸치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설프게 다물려진 입술을 사정없이 헤치고 들어가, 다니엘은 지훈의 입 속을 헤집었다. 초콜릿의 맛, 딸기 맛, 벚꽃 맛, 타액의 맛, 담배 맛, 입술의 맛, 이런 것들이 전부 뒤섞인 키스는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지훈은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런 지훈의 몸을 끌어안고, 다니엘은 실컷 그 입술을 깨물고 빨았다. 그 어깨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왜 그래?”


타액이 묻어 반질거리는 입술에 입술을 대고 부비며, 다니엘은 물었다.


“고맙다며. 좋은 데 데려가 줘서.”
“….”
“고마우면.”
“….”
“하려던 거 해야지. 어제.”


상대의 귀에까지 들리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지훈의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하려던 거…요?”
“말한 거 같은데.”


피하지도 않고 눈을 쳐다보는 다니엘의 눈에서 새파란 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넌 나랑 자게 될 거라고.”
“….”


움찔, 어깨가 굳어졌다. 그러나 떨다 못해 굳어진 어깨와는 달리, 이미 남의 혀가 그 속살을 헤집는 걸 허락해 버린 입술은 무방비하게 열린 채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입 속에서 녹아버린 초콜릿이 목을 타고 한 모금씩 넘어갈 때마다 가슴은 점점 더 애타게 뛰고 있었다.


“한 가지는 선택권을 줄까.”


다니엘은 지훈의 입술을 빨며 물었다.


“여기서 할까, 들어갈까.”
“….”
“아니면 테라스도 좋고, 바닥도 좋고.”
“….”


서럽게 입술이 달싹였다. 그러지 말라고. 너무 무섭게, 그러지는 말라고. 별로, 그런 걸 생각해 주고픈 마음 같은 건 없겠지만, 내게는 지금이 처음이라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평생 못 잊을 텐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그때, 핸드폰의 진동음이 둔하게 울렸다. 이 시간에 지훈에게 전화를 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설마. 지훈은 어깨를 뒤틀어 간신히 몸을 빼내고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파란 액정에, 너무나 잘 아는 전화번호 하나가 생생하게 떠올라 있었다.

아빠였다.


“저기….”


지훈은 힘겹게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전화 받아야 돼요.”
“누군데.”
“아빠요.”


순간, 다니엘의 눈매가 흘끗 가늘어졌다. 몹시도 언짢다는 듯이.


“나이가 몇 갠데 아버지를 그따위로 불러.”


그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친아버진가?”
“아…니요.”
“그럼 뭐야. 의붓아버지야?”
“….”


지훈은 대답을 못했다. 그러게. 이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해명’해야 할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자신에게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러나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자신조차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친아버지도 아니고, 의붓아버지도 아니면, 그냥 아저씨야?”
“네….”


아빠도 아니면서,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는 낯선 사람. 더없이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 외의 사실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 ‘아저씨’라는 말 따위로 내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을 부를 더 적당한 말을 지훈은 알지 못했다.


“근데, 왜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러?”
“그냥….”


지훈의 대답은 굼떴다.


“그렇게 부르래서요…. 저는 아빠가 없거든요….”
“그럼.”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남이네.”


그 말은, 살갗에 붙어 있는 뭔가를 억지로 잘라내 가는 듯한 통증이었다.


“받지 마.”
“저기….”


지훈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호소하듯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받게 해주세요.”
“….”
“한 마디만 하고… 끊을게요.”


그 전화가 신경 쓰이는 건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마르게리타 피자를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가,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쓸쓸히 돌아갈 것이 걱정되어서였다. 모르긴 해도, 그의 가족들은 그가 사들고 오는 피자를 별로 반가워할 것 같지가 않아서.


“저 오늘 집에 없다고….”


다니엘은 손을 뻗어 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뭔가를 확인한 듯, 그의 미간이 아주 조금 꿈틀거렸다.


“집에도 찾아오고, 뭐 그런 사이인가?”
“네 그냥… 가끔….”
“남이 왜 집에 찾아와?”
“….”


다니엘은 물끄러미 지훈을 쳐다보았다.


“설마, 애인이야?”
“….”


지훈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애인이라니. 그런 불경한 말은,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그냥 자신에게 과분하게 좋은 사람일 뿐이었다.


“받지 마.”


다니엘의 손 끝이 지훈의 목덜미를 쓸었다. 이미 키스를 했고, 누가 봐도 섹스 직전의 전희를 하는 중에 새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기묘했지만, 그 손끝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지훈의 목덜미 핏줄을 따라 몸을 더듬었다.


“받으면, 죽여 버릴 거야.”


이미 피가 몰려 화끈거리는 귓가에 입술을 대고, 다니엘은 낮고 고운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였다.


“섹스하는 중에 전화 같은 거 받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박지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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