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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l

-투 비 컨티뉴니까.











여섯 개에 2만원이나 하는 초콜릿은, 자기가 먹을 거라면 죽어도 사지 않았을 거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핑크색 상자에 은색 리본을 두 겹으로 매어 포장한 것을 들고, 지훈은 가게를 나왔다. 일단 이걸 전해주고 그린 게이블스로 갈 생각이었다. 직접 보고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나 보낸 문자들에 한 통도 대답이 없는 걸로 봐서 만나주기나 할지도 의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훈은 그냥 1층 인포메이션에 초콜릿을 맡겨놓기로 했다. 성함을 말씀해 달라고 두 번 세 번 묻는 여직원에게, 그는 어제 기다리다가 집에 간 사람이 드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사옥 건물을 나와, 지훈은 지하철 역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다니엘과 자신의 관계는 정확히 어떤 것이며, 앞으로도 어떻게 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가 왜 그렇게나 자신을 싫어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아직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초콜릿이라. 그가 어떤 얼굴로 이 난데없는 선물을 받게 될지, 지훈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봄이니까.”


그렇게 못돼 가지고서야, 누가 봄이라고, 핑크색 나는 초콜릿 같은 거 아무도 안 사줄 거 같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지훈은 피식 웃었다.

[카페 근처에 유명한 초콜릿 가게가 있어요 거기서 4월 한 달 동안만 파는 초콜릿이에요]

반쯤은 농담으로, 그렇게 냅다 초콜릿만 전해주면, 누가 독이라도 타서 선물하는 것일까 봐 안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문자를 보냈다.

[어제 고마웠어요]

이렇게 문자질 따위 해 봐야, 또 다 읽고 씹기나―


“….”


그러나 그런 지훈의 생각을 반박이나 하듯, 다니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지훈은 멍해졌다. 문자도 아니고, 전화라니. 솔직히 그랬다. 이딴 걸 누가 먹는다고 보내냐고, 당장 가져가라는 문자 정도는 각오했다. 못된 사람이니까. 그러나 전화까지나 할 줄은 몰랐어서, 지훈은 한참이나 눈만 깜박이미 핸드폰 위에 떠오른 다니엘의 전화번호를 노려보았다.


“여보세….”
[뭐죠, 이건.]
“네?”


대뜸,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물어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


“초콜릿인데요.”
[설마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걸까?]


그 반문은 낮고 빨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게. 그건 초콜릿이었다. 그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마도, 그런 대답을 바라고 저런 질문을 하진 않았을 거였다.


[고맙다는 건 무슨 뜻이지?]


아직 대답할 말을 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다음 질문은 쏟아지는 비처럼 지훈에게로 떨어졌다.


[내가 어제 필요 이상으로 바쁘지만 않았다면.]


바빴구나.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그거였다. 정말로 바빴구나. 그래서였구나. 그렇게 문자를 보내도 대답 한 마디 없던 건, 그래서였구나.
내가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대체 뭘 하자고 박지훈 씨를 그리로 부른 것 같아요, 내가?]


그러나 그런 감상에 젖어있을 틈 따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다니엘의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지훈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넓고 좋은 객실에서 샴페인이나 마시자고? 그 푹신한 침대에서 숙면이나 취하자고?]


몰랐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입술이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건.]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는 은근한 쇳소리가 났다.


[날 건드려 달라, 뭐 그런 뜻인가?]


순간 온 몸이 찌릿하게 굳어졌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지훈은 그저 순식간에 메말라버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익숙했다. 갈비뼈 아래가 저릿해 오는 이 불온한 박동은, 멀지도 않은 그 날 새벽 거리에서 느꼈던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저는 그냥.”


더듬거리며 떨려나오는 목소리는, 어설펐다.


“어제 너무 좋은 곳에서 하룻밤 편하게 자서요.”


사실은, 아직도 믿고 있었다. 결국 만나지 못했지만 그렇게 좋은 곳에서 만난 그는, 마냥 그렇게 못되지만은 않았을 것을.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 건지 다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다정했었을 것을.


“그냥 그게 고마워서.”


핸드폰 너머로 감감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훈은 알 수 있었다. 이 짧은 대화 중에서도, 자신의 어떠한 말이 또다시 그를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그가 말하는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와 맥이 닿아 있으리라는 것을.


[지금 어디에요?]
“네? 그건 왜요?”
[고맙다며.]


쏘아붙이는 목소리는 건조하다 못해 무신경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고마운데, 이까짓 초콜릿 한 상자로 퉁치려는 거야? 너무 양심 없지 않나?]


다시, 조금은 잦아들려던 박동이 가파르게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 짤막한 한 마디에.


“저…는 지금 지하철 타러 가려고….”
[내가 나가기는 애매하네.]


다니엘은 내뱉듯이 말했다.


[기어들어와. 당장.]










20층에 내려, 전에도 한 번 와 본 다니엘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는 전에 앉아있던 그 비서는 없었다.

그 앞을 한참이나 우물거리다가, 지훈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노크를 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한참을 어쩔 줄을 몰라 망설이다가, 지훈은 다시 한 번 노크를 하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까지를 세고 문을 열었다.

다니엘은 책상 뒤에 앉아, 입구 문 쪽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을 뿐, 지훈은 그 자리에 붙박힌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다니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진공과 같은 침묵이 수 초, 그렇게 흘러갔다.


“박지훈 씨는,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이런 거지.”


다니엘은 손을 뻗어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 고스란히 굳어진 채, 다니엘의 긴 손가락이 라이터를 열어 담배 끝에 불을 붙이는 것을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거.”
“….”
“말 잘 듣는 애완견같이.”


몰랐던 건 아니지만, 역시 못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지훈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당신의 가시는 어디에 어떻게 박혀 있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크고 아픈 가시가 박혀 있기에 이렇게 매번 못된 말만 하는 거냐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요.


“왜.”


다니엘은 입 가로 담배를 깨문 채, 지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쉬웠나?”
“네?”
“어제.”


가늘게 찌푸려지는 미간 아래, 날카로운 눈매가 지훈을 향했다. 어째서인지, 깨진 유리조각 같은 눈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둔하게 사람의 마음을 베고 지나가는.


“기대했던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냐고.”
“그, 그건.”
“그래서 이렇게 질질 흘리는 거 아닌가?”


그는 전에 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음성은 또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더욱 뼈에 저렸다.

그냥, 보고 싶어서 기다렸을 뿐이었는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투 비 컨티뉴니까.”


다니엘은 나른한 손짓으로 입에 물었던 담배를 재떨이에 느긋하게 비벼 껐다.


“들어오면서 봤는지 모르겠는데, 비서도 퇴근시켰어요. 나 지금 이 시간부로 오프할 거라서. 조금은 영광으로 생각해 주면 고맙겠네. 나 이 회사 들어온 이후로, 이따위 일로 회사 일 째는 거 처음이거든.”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다니엘은 재킷 자락 사이로 주머니에 손을 찌른 후, 지훈의 눈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제 못 한 만큼, 오늘 다 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그는 웃었다. 그러나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그의 눈은, 나는 지금 네가 싫어서, 너를 괴롭히기 위해 쫓아다니는 거라고, 편의점 매대 너머 말하던 그 순간과 터럭만큼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호텔은 안 가. 박지훈 씨가 너무 좋아하는 거 같아서.”
“….”
“괴롭히러 가는 건데, 너무 좋아해 버리면, 내가 좀 그렇잖아. 안 그래요?”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런 게 아니라고,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라고, 그 비슷한 말이 끝도 없이 입 속을 맴돌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중 어떤 것도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얼굴 하지 마.”


다니엘은 지훈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안 먹히니까.”


그의 마음 속에 박힌 건, 가시가 아니라 얼음조각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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