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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i

-예쁘다고 하면 화낼 것 같은 타입이에요.











지훈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새벽 두 시까지였다. 그 시간이 다 되도록, 지훈은 멍하니 매다 뒤에 몸을 기대고 선 채 정신을 놓고 있었다. 교대하기로 되어 있는 사장이 30분 가까이 늦게 나왔지만 그런 것을 탓할 정신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은 거리여서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며, 지훈은 저도 모르게 손 끝으로 입술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제 손끛에 제 입술이 닿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우뚝 그 자리에 서 버렸다.

키스했다. 그 사람이랑.

순간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올라, 지훈은 누가 쳐다보고 있기라도 하듯 후다닥 고개를 숙였다.


“미쳤나봐.”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모를 말을 내뱉고, 지훈은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웅얼거렸다.

생각건대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그 키스는 다분히 강압적이었고, 심지어 자신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분명한 것은, 아까 그 순간 이후로 빨라지기 시작한 심장의 박동이 좀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인 거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걱정스러울 만큼.

지훈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조금 전 문자 한 통이 들어와 있었다. 아빠였다.

[집에는 잘 들어갔니? 요즘 세상이 험하니 늘 조심하렴]

순간 심장이 터져나갈 듯 뛰기 시작했다.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입이 탔다. 누구든 붙잡고, 무슨 말이든 말해버리고 싶었다. 명색이 첫 키스였다. 그 비밀 아닌 비밀은, 아직 어린 가슴에 혼자 담아두기에는 조금은 벅찼다. 그래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새벽 두 시가 한참 넘은, 이 늦은 시간에. 남의 남편, 남의 아버지인 것을 알면서도.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에는, 제 속에 들어찬 열덩어리가 너무나 뜨거워서.


[그래, 지훈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오늘 밤에 일하는 날이지? 집에는 잘 들어왔어?]
“아뇨. 조금 전에 마쳐서 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대답하는 목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별로 힘이 없었다.


“제가 전화를 너무 늦게 드렸죠.”
[아냐, 괜찮다. 잠이 잘 안 와서 서재에서 혼자 빈둥거리던 중이었으니까.]


담배라도 피우려는 것인지, 핸드폰 너머에서 뭔가를 집는 듯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아니요.”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요.”


그러나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게 말이 되는 것일까.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인데.]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도 되는 걸까를 생각하고 있을 그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지훈은 뜨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지만 핸드폰 너머에서는 나직하게 웃는 소리가 났다.


[뭐, 네 나이에 할 만한 고민이라야, 뻔하지.]


그 말은, 어쩐지 묘했다. 자신에게는 그것 말고도 해야 할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아빠는 단박에, 네 나이에 할 만한 고민은 뻔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아빠에게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 사람에 대해 가지는 이 감정이 과연 좋아하는 것인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까지도.


[몇 살이야? 친구? 동생? 누나?]


지훈은 다시 한 번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까지는, 아무리 아빠에게라도 차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보다 나이 많아요. 회사 다니고.”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나 보네.]
“네.”


아빠는 한참이나 나직하게 웃더니 물어왔다.


[이뻐?]


그 질문은 지금 자신의 상황과 너무나 언밸런스해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 예쁘다고 하면 화낼 것 같은 타입이에요.”
[그렇구나. 좀 드센 타입이야?]
“드세다기보다는, 좀, 차갑다고 해야 될까요.”
[아, 좀 도도하고 콧대 높은 스타일? 지훈이 의외로 그런 타입에 약했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컴컴한 새벽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뚜껑이라도 덮인 듯 새까만 밤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바라보았던 다니엘의 눈처럼.


[어디서 처음 만났어?]


아빠는, 지훈의 풋사랑 이야기가 퍽이나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저 일하는 카페에서요. 거기 손님으로 왔었어요.”


그날,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까. 그래서 그 때부터 나를 미워하게 된 걸까. 지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그날 특별한 잘못 같은 걸 한 기억은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똑같이 대했는데. 그런데 왜, 나를.


“근데요, 이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왜?]
“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아니, 저 싫어한대요. 오늘 직접 들었어요.”
[싫어한다니, 너를?]
“네.”


울컥, 목이 메었다.


“제가 너무너무 싫어서, 저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중이래요.”
[그런 게 어딨어.]


아빠는 한참이나 소리를 내어 웃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야. 그 아가씨가 정말로 너를 싫어하면, 네 눈앞에도 안 나타나겠지.]
“그래도.”


지훈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까지 해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저기, 오늘… 키스를… 했어요.”
[….]
“그런데 그것조차도, 제가 좋아서 한 게 아니래요.”


그 말은, 실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생 쉽게 산다고 빈정거리고 비웃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키스라니.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것인지.


[그 아가씨, 수줍음이 많은가보구나.]
“아니에요.”


가슴이 먹먹해 오는 와중에도, 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 아니에요. 말도 잘하고, 성격도….”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모르는 거야.]


그러나 아빠는 조용하게, 지훈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듣기에, 그 아가씨는 이미 너를 많이 좋아하고, 그런데 한참이나 어린 너를 좋아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 같은데?]
“….”


그럴까요. 그렇게 되묻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지훈은 한참을 미적거렸다.


[내일 아침에, 굿모닝 하고 문자 한 통 보내줘라.]


핸드폰 너머에서,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은 네가 그렇게 응해 줘야, 조금 더 다가올 용기를 낸단다.]










거의 밤새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지훈은 아침 여섯 시가 조금 지나 잠에서 깼다.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기지개를 켜고, 지훈은 베개 옆에 놓인 핸드폰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아직도 믿을 수는 없었다. 그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그의 그런 차갑고 싸늘한 말과 행동이, 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이라는 걸.

과연 그 말을 믿어도 될까.

지훈은 핸드폰을 켜고,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듯 문자 한 통을 보냈다.

[굿모닝]

문자가 발신되자마자, 지훈은 아주 부끄러운 뭔가를 숨기기라도 하듯 핸드폰 액정을 아래로 엎어 놓았다. 과연, 반응은 올까. 온다면, 문자일까 전화일까. 혓바닥이 입 천정에 들러붙는 것도 모르고, 지훈은 살그머니 다시금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다니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먼저 전화를 건 주제에,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어색한 침묵은 제법 수 초를 갔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지훈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뭐지? 이 깜찍한 아침인사는.]
“아, 저.”


대답은 얼른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대꾸하는 목소리가 너무도 싸늘해서.


“그게요.”


그로부터도 한참을 더 미적거리다가, 지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렇게 해 줘야 된다고.”
[뭐?]
“그게, 그러니까, 어제, 그런 일이.”
[그런 일, 뭐.]


대꾸하는 음성은 그지없이 퉁명스러웠다.


[키스?]


순간 서운해졌다. 자신은 차마 꺼내기도 힘든 그 말이, 저 사람에게는 저토록이나 쉬운가 싶어서.


[그래서, 키스가 왜.]
“어제 그런 일도 있었는데.”


지훈은 한참이나 더 우물거리다가, 겨우 그렇게 대꾸했다.


“제…가 먼저 말을 걸어줘야, 상대가 편하다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박지훈 씨.]


낮게 가라앉은 그 목소리 끝으로는 어렴풋한 짜증마저 배어 있었다.


[그 말은, 박지훈 씨가 먼저 연락을 안 하면, 내가 연락도 못하고 끙끙 앓기라도 할 거라서, 친히 먼저 연락을 하셨다 뭐 그런 의민가? 맞아요?]
“그런 건 아닌데요. 아무래도, 저 좋아하는 거 맞다고.”
[누가.]
“실장님이요.”


지훈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안 좋아하면 그럴 수가 없는 거라고.”


순간 더럭 두려워졌다. 아무리 아빠가 한 말이라지만, 그 말을, 이렇게 대책 없이 믿어도 괜찮은 것이었을까.


[사람 말을 어디로 들어처먹는 거야, 박지훈 씨. 내가 어제 분명히 말한 거 같은데. 나는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런 짓 안 한다고.]


다니엘은 내뱉듯이 말했다.


[못 믿는 모양인데, 주소 하나 줄 테니까 저녁 여섯 시까지 그리로 와. 믿게 해주지. 내가 박지훈 씨를, 아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도대체, 뭘, 어쩌려고요.

그러나 결국 지훈은 그 말을 물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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