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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h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속이 멍해졌다.

위인전에 오를 만큼 잘 살고 있는 인생은 아니었다. 애초에,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자신의 처지에서, 그런 건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조금 전 다니엘이 한 그 말은 그런 지훈의 ‘믿음’을 잔인하게 무너뜨렸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왜요?”


그래서, 그렇게 물었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도 그럴 거였다. 많지도 않아 보이는 나이에 대기업의 임원직까지나 올라간 사람과, 아르바이트 한 군데가 날아가면 그 즉시로 학비며 생활비 계획에 구멍이 생기는 자신 같은 사람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맞닥뜨릴 일이 있었기에 이 사람이 내게 이렇게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인지, 지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물었다. 왜냐고.


“왜, 왜 저 같은 걸.”
“글쎄. 왤까.”


대꾸하는 눈빛은 차가웠고 말투는 싸늘했다.


“곰곰히 생각해 봐요. 그 이유.”


그 후로 수 초간, 좁은 편의점 카운터 매대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지훈은 제 눈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일부러 쫓아다니며 괴롭히기나 할 만큼 나를 미워한다는 것일까.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기는 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럼, 힌트는 여기까지 하죠.”


그러나 다니엘은 그 쯤에서 그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답 정도는 스스로 찾도록 하고.”


매대 위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고, 다니엘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편의점에서 나갔다. 이미 내 할 말은 다 했고, 이제는 너도 내가 너를 치가 떨리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테니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니, 아닌데. 하나도 충분하지 않은데.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당신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저기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불렀다. 그러나 다니엘은 돌아보지 않았다. 오기가 났다. 자기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실컷 떠들어 놓고, 너야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듯한 그 태도에.


“저기요!”


언성이 높아졌다. 급기야 지훈은 매대를 열고 나가 다니엘을 따라갔다. 그는 지훈보다 보폭이 넓었고,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뛰어야 했다. 안간힘을 다 해 따라가, 지훈은 그 소매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는 더없이 야멸치게 소매를 잡아채며 몸을 틀었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만 말하고 가면, 어떡해요?”
“뭐?”
“그렇게만 말하고 가버리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쨍 하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제야 다니엘은 지훈을 돌아보았다.

어째서일까. 마음이 면도칼 같은 아주 얇고 날카로운 것에 베이는 느낌이었다. 쳐다보는 눈빛이, 그 무심한 싸늘함이 마음을 난도질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은, 그린 게이블스에서 처음 보던 그 순간부터 그랬다는 것을.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 건, 싫다고.


“왜.”


되묻는 지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왜 날 괴롭히는 건데요?”


그러나 그렇게 말할 용기는 없었다.


“왜 쫓아다니기까지나 하면서, 나 같은 걸.”


그냥 혼자서 미워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쫓아다니면서 괴롭혀야만 직성이 풀릴 만큼―
내가 그렇게 밉고 싫은 건가요.


“답은 스스로 찾으랬지.”
“….”
“남이 떠먹여주는 거 기다리는 건 좀 작작 하고.”


뭔가가, 얽혀 있다. 지훈의 머리 속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이 위화감은, 실은 지금 처음으로 느낀 것은 아니었다. 방금 한 다니엘의 그 말은 인생을 왜 그렇게 쉽게 살려고 하느냐던 예전의 그 빈정거림과 필경 맥이 닿아 있었다. 이 사람은, 뭔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아는 뭔가를 모르고 있거나.

그러나 그 이전에, 억울했다.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억울했다.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는 내 인생에 대해, 당신은 도대체 뭘 그렇게 다 알고서 그렇게 말하느냐고.


“그 문제, 내가 맞출 수 있기는 한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물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 그런 식이잖아요.”
“….”
“나 같은 사람은 알 수도 없는 룰을 마음대로 만들어놓고, 그거 다 피해서 여기까지 와보라고. 그게 당신들 식이잖아요. 아니에요?”


지훈을 내려다보는 다니엘의 눈매가 힐끗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훈은 자신이 뭔가 매우 건방진 말을 해 버렸음을 깨달았다.


“그 답.”


그러나 그렇다 해도,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내가 찾으면.”
“….”
“찾아지기는 하는 거예요?”


내가 그 대답을 찾으면,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건가요?

실은, 그 말이야말로 지훈이 물어보고 싶은 말이었다. 그 답이라는 걸 내가 찾으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않을 건지를.

다니엘은 지훈의 손목을 잡았다. 살집이 별로 없는 손목은 별로 어렵지도 않게 다니엘의 손 안에 가뿐히 들어와 잡혔다. 지훈은 움찔 놀라 손을 잡아챘지만, 다니엘은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지도록 그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이거 놔요.”
“먼저 잡은 건 그쪽인데.”
“이거 놓으라고요.”
“잡으면 잡혀주고, 놓으라면 놓고, 내가, 그래야 되나?”


누군가에게 손목을 잡히거나 끌려가 본 기억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지훈은 다니엘에게 어떠한 종류의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직감할 수 있었다. 손목을 감은 손가락은 하얗게 질리도록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을 뿌리치는 것은 지훈에게는 무리였다.


“이것 좀 놔요…!”


다니엘은 지훈의 손목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기를 쓰고 뻗대는 몸을 끌어당겨 벽으로 떠밀고, 그 몸을 제 체중으로 눌렀다. 숨이 밀려나오는 소리가 났다. 제법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는 있었지만, 손목을 붙든 악력만으로도 지훈은 제 힘으로 이 상황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니엘은 몸부림을 치는 지훈을 몸으로 누르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입을 꽉 다문 것은 일종의 척수반사 같은 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은 입을 벌려 지훈의 입술을 통째로 입 속에 머금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경악에 굳어진 입술을 물어 씹는 그 숨결에서는 어째서인지 새벽에 내리는 비의 냄새 같은 것이 나는 것도 같았다. 온 몸이 아프도록 힘을 주고 버티던 중에, 지훈은 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제멋대로 지훈의 입술을 깨물고 빨다가, 다니엘은 잠시 후에야 팽개치듯 지훈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지훈은 제가 눈꺼풀이 시리도록 눈을 꼭 감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


그리고 한참 후에야 지훈은 눈을 떴다. 떨리는 눈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방금 그건, ‘키스’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입술이 주체조차 되지 않을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입술에 묻은 흔적은, 더없이 수치스러웠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술에 묻은 타액을 닦았다.


“이거 뭔데요.”


조금 전까지 나를 미워한다고 말해놓고, 왜.


“왜 이런 걸, 나한테.”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고 했으면서.


“설마, 날 좋아해요?”


그 말은, 실은 그렇게까지 대놓고 물어볼 생각은 아니었다.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지훈의 코끝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훈의 온 몸은, 이제는 차마 부정할 수도 없을 만큼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지그시 짓눌린 가슴에서 가쁜 숨이 새어나왔다.


“아니.”


다니엘은 이를 갈 듯, 치를 떨 듯 대답했다.


“난 당신 안 좋아해, 박지훈 씨.”
“….”
“내가 당신을 좋아하면 방금 같은 짓은 안 했어.”


아.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엉망으로 망쳐버린 시험의 성적표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그 순간처럼.


“그러면 왜.”


지훈은 떨리는 입술을 열어, 겨우 물었다.


“그러면서, 왜요.”
“….”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하고나 하는 거잖아요.”


차라리 때린 거였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건. 이직도 물기가 남은 입술은 가냘프게 떨렸다. 방금 전 그 순간은, 자신에게만 남은 게 아니라 그에게도 남았을 터였다. 미운데, 싫은데 왜 그런 짓을.


“잘 들어.”


그러나 내뱉듯 대답하는 그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감히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난 너를 안 좋아하지만, 아니, 싫어하지만.”
“….”
“넌 나하고 키스하게 될 거고.”
“….”
“나하고 자게 될 거야.”


나를 미워한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요.

그 해결되지 못한 물음은 애처롭게 입 속을 맴돌았다.


“알겠어요, 박지훈 씨?”


아니, 난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나를 미워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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