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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Z

-진짜 다 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아무도 몰랐다. 다만 쌔근거리는 숨을 몰아쉬는 지훈을 끌어안고 흘끗 넘겨다 본 창 밖으로는 이미 희뿌옇게 날이 새고 있었다. 걷어 차낸 이불을 끌어다 등을 덮으며, 너나 나나 오늘 나가기는 틀렸다는 말을 하며 웃었다. 나 오늘 결석하면 F인데. 난 오늘 결석하면 나흘째거든.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지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다니엘은 몸을 옆으로 돌려 지훈을 끌어안고 그 얼굴을 부러 품 속에 묻었다. 지훈아. 형이 지금부터, 막장 드라마 같은 얘기를 하나 해 줄게.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는 지훈의 머리칼을 손 끝에 휘감으며, 다니엘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가진 게 돈밖에 없는 할머니가 있었어. 이 할머니의 평생소원은, 자식들이 사채꾼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는 거였어. 뭐 그렇게 시작되는, 길고 지루한 이야기였다. 지훈은 다니엘의 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그 지루한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몇몇 부분에서는 숨을 멈추었고, 몇몇 부분에서는 입술을 깨물었고, 몇몇 부분에서는 고개를 들고 다니엘을 한참이나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아마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니엘은 입을 다물고 지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지훈의 대답은 더디게 울려나왔다.


“아빠…는.”
“….”
“형의 아빠였던 거네.”
“아니, 아까 말했잖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어쨌든.”


그러나 딱 잘라 말을 끊는 지훈의 음성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형은,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큰 거잖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자신의 인생은, 실은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들로 점철되어 왔으므로.


“그럼.”


지훈은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형이 아니라.”
“….”
“내가 사과해야 되는 거네.”


지훈의 대답은 짐짓 엉뚱해서,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올려다보는 지훈의 눈을 쳐다보았다.


“내가 형한테서, 형의 아빠를 뺏어 갔으니까.”
“지훈아.”
“미안.”


그러나 다니엘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지훈은 먼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나를 미워할까, 그 생각만 했어요.”
“….”
“그런데, 그랬구나. 그래서.”


촉촉하게 땀이 밴 작은 손바닥이 가만히 다니엘의 뺨을 덮었다. 그 손등 위에, 아까 현관에서 지훈이 했듯 제 손을 덮었다. 다니엘의 손보다 한참이 작은 지훈의 손은, 그 손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미안해.”
“뭐가.”
“한 번도, 형이 왜 그러는지 생각해 보려고 안했어.”


깜빡이지도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눈은, 창을 타고 들어오는 어스름한 햇빛을 받아 말갛게 빛났다.


“아버지,는.”


대놓고 아버지에게 뻗대기 시작한 것은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까, 그래도 제법 몇 년이 지났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라는 그 말은 너무나 낯설고 어색해 입 속이 서걱거렸다.


“아마 다음 주 쯤, 캐나다로 가실 거야.”
“캐나다?”
“가진 돈을 곱게 못 쓰고, 그걸로 사고를 좀 쳤어. 그 얘기가 할아버지 귀에 들어갔고. 그것 때문에.”


제법 흔한 일이었다. 내게 싸늘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인 일은. 내게 좋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개새끼인 일은. 자신에게는 이토록이나 원망스럽고 서러운 이름이지만, 그는 최소한 지훈에게는 살 곳을 마련해주고 온갖 것에 마음을 써 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것까지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말은.”


다니엘은 잠시 머뭇거렸다.


“너도 앞으로는, 아버지 못 볼지도 몰라.”
“….”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만큼이나 지훈에게는 충격적인 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지훈은 제법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나한테도 말씀하시겠죠. 그럼 그 때 인사할게요. 그동안 감사했다고.”


그냥, 그걸로 다인가.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한참이나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말, 안 하냐?”
“무슨?”
“화해하라고. 아버지랑.”


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던 점은, 기실 거기에도 있었다. 누구에게서 무슨 말을 듣든, 그날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가 캐나다로 나가게 된 것은,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먼저 외국 지사 발령을 신청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리고 그 화해의 강요가 지훈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를 그는 내심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들이 무색하게도 지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할 건데.”
“왜?”
“화해는 형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바라보는 눈은 감감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느 봄의 하루, 새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 나무 아래 드러누워 바라보는 한낮의 햇살처럼.


“형이 아무리 화해를 하고 싶어도, 아빠가 형이랑 화해하고 싶어하지 않으면, 형이 아무리 매달려 봐야 소용없는 거잖아.”
“….”


그 대답은 너무나 예상 밖의 방향에서 날아와 다니엘의 뒤통수를 툭 때리고 사라졌다.


“혼자 애써서 안 되는 일이면, 하지 마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훈은, 이미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그렇잖아.”


멍해진 다니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난 형이 처음 카페 왔던 그날부터 쭉 형을 좋아했는데.”
“….”
“형은 이제야 내가 좋아졌으니까.”
“….”
“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좋아하는 거잖아요.”


아니, 그건 그런 게 아니고.

헤먹은 변명의 말이 입속을 맴돌다가 스러졌다. 그러고 보면, 그게 아니라는 말을 도대체 무슨 이유를 가지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니엘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랑도 아니고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었던 그 때의 그 뒤틀린 마음들은, 그건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맞는 것일까. 감정의 주인인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그 마음들을, 지훈에게 설명하는 것은 새삼스레 무리인 것 같았다.


“뭐 할까.”


지나치게 무거워져버린 화제도 돌릴 겸, 다니엘은 지훈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하고 싶었던 거, 뭐 있어? 하자. 하나씩.”
“음.”


한참이나 치뜬 눈으로 머리 위를 쳐다보다가, 지훈은 그렇게 말했다.


“벚꽃 보러 가요. 벚꽃 노래 틀어놓고.”
“벚꽃 노래는 또 뭐냐.”
“있잖아요. 요맘때 많이 나오는 노래들. 벚꽃엔딩이랑, 봄 사랑 벚꽃 말고 같은 노래들. 그런 거 들으면서.”
“지난 주말에 비 오고 바람 불어서 벚꽃 다 졌을 건데.”
“그래도, 어디 조금은 피어 있겠지.”


그러고 보면 벚꽃은, 언제가 절정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벚꽃 그 자신조차도. 지나고 나서야 그 때가 가장 좋을 때였다는 걸 알게 된다는 건, 그건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었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니까.
돌아서는 그 순간, 지금 이 시간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재고 따지고 머뭇거리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사실은 아까우니까.


“보러 가자. 벚꽃. 진짜 다 지기 전에.”










난반사亂反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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